중국 태산을 다녀와서<5.끝>-도교 집결지 태산

태산에 올라가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 마애석각이다. 그 다음에 눈에 띄는 게 아마 이상한(?) 사원들일 것이다. 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집 같기도 하고…. 대부분 외국 등산객이나 관관객들은 ‘저게 뭘까’ 궁금해 한다. 가까이 가서 보면 바로 중국 민족종교인 도교 사원이다. 태산 정상에 있는 옥황정도 도교 사원의 일종이다.옥황상제가 도교의 최고 신(神)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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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도교 사원들이 눈에 띈다.

도교(道敎․Taoism)의 원뜻은 ‘도를 설명하는 가르침’이다. 도란 유교나 도교를 비롯하여 중국의 모든 사상과 철학을 설명하는 학설의 중심으로 중국인의 의식 기초에 존재한다. 샤머니즘과도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도교는 중국 3대 종교의 하나다. 3대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다. 도교를 일명 도학이라고 한다. 도교는 중국민족의 고유한 문화 속에 생활신조, 종교적 신앙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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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 사이로 바라 본 안개 낀 태산 전경.

유교도 중국의 민족종교다. 차이가 뭘까? 중국문화의 양대 축 중의 하나인 유교는 중국의 사회, 국가의 질서, 학문․기술을 통치자의 입장에서 규명하고자 한 반면, 도교는 종교적 요소를 중심으로 서민, 민중의 입장에서 밝히고자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도교는 유교에서 배격한 미신이나 도깨비, 귀신신앙까지도 신앙대상으로 포함한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국가나 왕조라는 관료, 지성인의 입장에서 나온 교학이고, 도교는 ‘민(民)’ 즉 농민과 일반 민중의 신앙으로서, 신(神) 신앙에 따라 세워진 농민, 민중의 집단결사나 왕조에 의해 인정된 교단을 지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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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북한산의 인수봉과 닮은 천촉봉.

또한 유교가 유(有)를 중심으로 현상계를 설명하려 했고, 불교는 유(有)와 무(無)사이의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려 했다면, 도교는 무(無)사상을 확립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도교의 경전격인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도의 근원성과 원천성을 무라 했다. ‘도가 一(일)을 낳고, 一이 二(이)를 낳고, 二가 三(삼)을 낳고, 三이 만물을 낳는다’고 하며 도는 만물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름할 수 없고 형체가 없는, 도가 가진 형이상학적 성격을 가리켜 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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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에 돌을 하나올려 놓으면 딸, 둘을 놓으면 아들을 얻는다고 한다.

중국도교사에서는 도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도교는 도를 최고 신앙으로 삼아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이 일정한 수련을 거치면 장생불사하여 도를 얻고 신선이 된다. 도교는 이렇게 수도하여 신선이 되는 사상을 핵심으로 삼고, 노자 및 그의 도에 관한 학설을 신화시켰다. 노자를 높이어 교주로 삼고 신명으로 떠받든다. 아울러 노자의 ’도덕경‘을 주요 경전으로 삼는다. 도교사상은 도교의 사상적 근원의 하나다. 이와 동시에 유가 및 음양가, 묵가, 참위학의 사상까지도 흡수하고, 중국고대의 신앙 위에서 방선도, 황노도 등의 사상들과 그 수지방법에 따라서 점차로 형성됐다. 도교는 한나라 중엽에 생겨났으며, 봉건사회의 긴 흐름에 따라서 발전했다.’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삼은 도교와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한 도가사상과는 엄격한 의미에서 구별된다. 노장사상이라 불리는 도가는 제자백가의 하나로서 전국시대에는 유가․법가․묵가 및 신선 등과의 교류가 있었고, 진에서 한대까지 도가의 개념 안에 종교적 요소도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교는 오늘날 말하는 노자․장자의 사상과 철학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도가뿐만 아니라 도술, 방술까지를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현재의 도교는 후한시대에 장도릉이 세웠다고 전한다. 장도릉은 초기에 오경(五經) 공부를 하다, 만년에 장생도와 금단법을 터득한 뒤 곡명산에 들어가 도서 24편을 짓고 신자를 모았다. 이때 그의 문하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5두(斗)의 쌀을 바쳤기 때문에 오두미도 또는 미적이라고도 불렀다. 장도릉이 죽자 아들 형(衡)과 손자 노(魯)가 그의 도술을 이어 닦았다. 3대에 걸쳐 중국 사천성과 섬서성 남부 일대에 이르기까지 큰 종교왕국을 건설했다. 교단의 중심경전은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다. 중심 내용은 ‘도계를 성실히 지킬 것과 세상의 사악한 설이나 주의에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진도(眞道)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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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서 가장 기가 세다는 태극봉이다.

장도릉이 도교를 일으킨 초기에는 그 신도들이 대부분 어리석었던 탓으로 종교라기보다는 일종의 사교적 성격을 면치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도교가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상류 지식층 사이에도 널리 전파되자, 체계적인 교리와 합리적인 학설․교양의 뒷받침이 필요했다. 도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이론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다. 그 무렵이 3~4세기 위백양과 갈홍이 학술적인 기초를 제공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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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봉 바로 옆에 등소평이 친필로 쓴 비석이 있다.

장도릉이 도교를 일으킨 시기부터 경전을 갖고 출발했다. 이는 도교가 전통종교로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의 전통신앙은 많은 민간신앙까지 아우르고 있다. 민간신앙은 무수한 신령체계를 갖추고 있다. 도교의 만신전도 수없는 신과 영혼들로 뒤섞인 집단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옥황이다. 옥황 또는 옥황상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최고신이다. 이 옥황상제라는 칭호가 민간신앙의 혼합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옥황은 도교로부터 빌려온 것이고, 상제는 국가 종교로부터 차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옥황전에 모셔있는 옥황상제는 중국 민간신앙의 여러 신(神) 중에서 가장 높지만 송의 진종(998~1022) 때 최고로 받들어졌다고 전한다. 이전까지는 삼교합일의 민중적 신앙으로 추앙받았다.

옥황은 지상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여러 관리신들을 임명하여 도움을 받는다. 지상의 관리들이 계급조직을 이루듯이 신들도 완전한 위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관리신과 그들의 행정구역이 있었던 것이다. 매년 옥황에게 자신의 직무에 대해서 보고하고, 그 업적에 따라 상과 벌을 받고, 승진하거나 강등된다.

그 예로 오악(오악 ․ 태산, 형산, 화산, 항산, 숭산)의 신이 있고, 동악대제도 있다. 또 성황신과 토지신이 있고, 집과 그곳에 사는 가족을 담당하는 재신(財神)이 있다. 침대의 신, 뒷간의 신, 집안의 조상신, 불교에 영향을 받은 신도 있다. 직업의 신과 상업의 신과 조합의 신도 있으며, 개인을 보호하는 관제(關帝)와 같은 신도 있다.

낭랑은 도교 여신의 총칭이다. 여성들의 일반적인 일을 담당하는 낭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계통적으로 구별하면 세 종류다. 서왕모(西王母)의 왕모낭랑, 벽하원군의 태산낭랑, 천비의 천후낭랑이다. 그 밑에 자식을 주는 송자낭랑, 자손이 번영하게 하는 자손낭랑, 천연두를 고쳐주는 두진낭랑, 출산을 촉진시켜주는 최생낭랑, 눈병을 고쳐주는 안광낭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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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악산 모습을 띤 태산.

태산 정상 옥황정에 들어서면 정중앙에 옥황상제가 모셔져 있다. 오른쪽으로 재물신이, 왼쪽으로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보인다. 민간신앙과 불교의 영향을 받은 모습 그대로다.

태산에 의례를 올리는 대묘엔 도교의 여신 벽하원군이 있다. 옥황상제 바로 아래의 여신이다. 동악대제도 있다. 유교의 예(禮)에서 오악은 제사의 대상이었다. 오악 중의 으뜸인 태산은 한나라 때에 와서 민간에서 태산부군이라 불리었다. 당나라 때에는 천제왕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태산부군은 천제의 손자이며, 사람의 마음과 육체, 즉 혼백을 가져오게 하는 생명의 장단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신앙되었다.

태산과 그 인근엔 도교의 신들을 모신 사원과 각종 흔적이 곳곳에 널려져 있다. 옥황정에 있는 옥황상제부터 각종 마애석각, 비석 등과정상 내려오는 길 천가엔 도교사원들이 있다. 꼭 사람 사는 집 같다. 이 사원들이 도교 사원이었다.

중국 태산까지 와서 등산로를 6개 코스나 개척한 황동호 사장과 함께 태산을 향해 출발한 지 1시간도 안돼 태산 속의 도교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올라가는 능선과는 다른 능선이다. 낮 12시30분쯤 옥황정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능선 봉우리에 자리 잡았다. 바로 앞에는 태극봉이 우뚝 솟아 있다. 태산에서 가장 기(氣)가 세다는 그 봉우리다. 중국에서 가장 기가 센 산이 태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으뜸 봉우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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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을 네번 올랐지만 등산객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태극봉 뒤로 며칠째 계속 보는 옥황정도 보였다. 조금 더 지나니 소나무 군락지 보호림이 나왔다. ‘태산 고수목 명품’이란 푯말이 나무 곳곳에 붙어 있다. 오히려 나무를 괴롭히고 있었다. 노송이 즐비했다. 악산이다 보니 제대로 관리는 안 되고 있었다. 수백 년 된 노송 수백 그루 사이로 인근 도교사원과 정상에 있는 호텔 등으로 보내기 위한 전깃줄이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경관도 엉망이다. 태산 고수목 명품 보호라고 해놓곤 오히려 노송과 풍광을 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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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촉봉을 옆에서 바라봤다.

오르는 길에 노송 위에 돌을 얹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국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나무위에 돌을 얹는다고 했다. 하나 놓으면 딸이고, 두개 얹으면 아들을 원한다고 한다. 중국 민간신앙도 우리와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이것도 도교의 영향이기도 했다.

잘 정돈된 계단길이 나왔다. 도교 사원과 정상에 짐을 나르기 위한 길인 듯했다. 나이 든 노인이 자기 몸무게 보다 더 나가는 짐을 지고 오르고 있었다. 마른 몸이었지만 전부 근육인 듯했다. ‘저 몸에 어떻게 저런 짐을 질수 있을까’ 싶었다. 계단 오르막길을 조금 지나니 평지 가까운 길이다. 옥황정 1.4㎞, 원군주(도교 사원) 0.55㎞ 이정표가 나왔다. 계단길 등산로 말고 처음 보는 이정표다.

태극봉도 바로 눈앞이다. 지리산이나 월출산의 통천문 같은 바위 사이로 빠져 태극봉에 도착했다. 오후 1시55분이다. 옥황정과는 불과 350m 거리다. 태극봉 바로 밑에 등소평이 79년엔 쓴 ‘태극봉호(太極奉好)’라는 비석이 눈에 띈다. 재미없게도 썼다. 단순히 ‘태극봉이 좋다’란 표현을 할 수 없이 쓴 듯한 느낌을 준다.

정상엔 사방이 확 트였다. 가장 기가 센 태극봉에서 지난 2000년 직전 세기말 밀레니엄 행사를 리얼타임으로 방송 생중계했다고 한다. 가장 센 기를 받기 위해 행사를 치른 태극무늬 봉우리에 앉아 점심을 펼쳤다.

오후 2시40분, 이젠 하산이다. 내려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태산이다. 모든 게 섭섭하다. 불교식 표현으로 회자정리고 생자필반이라고 했겠다. 만나면 헤어지고, 살아있으면 꼭 다시 만난다는 말이다. 언젠가 또 오겠지. 다시 와서 나의 흔적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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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 구름다리도 만날 수 있다.

도교 사원을 오르내리는 사람을 위해 길은 잘 정돈돼 있었다. 그 길로 곧장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니 소천축봉(Little Tianzhu Peak) 0.23㎞, 원군주(Yuanjun Temple) 0.05㎞, 자매송(Sisters Pines) 0.5㎞ 이정표가 나왔다. 두 번째 이정표다. 원군주엔 태산원군, 동악지신을 모신 사원으로 표시돼 있다.

도교 사원 주위엔 온통 노송과 기암절벽으로 가득 차 있다. 기암 사이로 노송들이 강한 생명력을 뽐내는 듯했다. 소나무만큼 강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는 없다. 암벽 위로도 바위를 감싸듯 뿌리를 내린다. 이곳엔 죽죽 뻗은 나무는 별로 없다. 생명의 인고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준다. 굴곡의 삶을 보는 듯하다.

드디어 천촉봉(Heaven Candle)에 도착했다. 내려오기 시작한 지 1시간 남짓 만이다. 천촉봉은 하늘에서 내려온 촛대 같은 봉우리란 뜻이다. 천촉봉이 보이는 앞에 간단한 영문 설명이 소개돼 있다. 대충 25억 년 전 지질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는 얘기다.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옛날이다. 5,000년 이상 넘어가면 현실은 없고 머리 속 상상만 할 뿐이다.

천촉봉은 북한산 인수봉과 꼭 같이 생겼다. 실제 높이도 비슷하다고 한다. 천촉봉 바로 옆으로는 거대한 폭포가 있으나, 마침 비가 내린 지 오래라 물은 졸졸졸 흐르고 있다. 많은 비가 내리면 한꺼번에 물이 몰려 폭포가 장관이라 한다.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11.구름다리옆_계곡,_비오면_엄청난_폭포가_쏟아진다고_한다.JPG

구름다리 바로 옆 아주 긴 폭포다.

조금 더 내려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천촉봉을 잘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다. 전망대 바로 아래 하늘로 통하는 듯한 문이 있었다. 망천문(望天門)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문이었다.

하산한 지 2시간이 지났다. 길은 잘 정돈돼 있었다. 이 코스로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듯했다. 도교 사원에 있는 사람은 전부 이 곳을 이용했다. 매표소가 나왔다. 그러나 이곳도 케이블카가 오가는 계단 길에 비교하면 오가는 사람이 100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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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봉에서 주변 조망을 봤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오후 5시쯤 되어 성성정(聲聲亭)에 도착했다. 소리를 듣는 정자란 뜻인가? 성성정은 요지였다. 산의 정중앙쯤에 조금 솟아서 자리 잡은 명당같이 보였다. 사방은 탁 트여 모든 소리가 성성정을 거쳐 갈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름이 붙은 지 알 수 없다.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계단길이다. 돌계단길이 아닌 깔끔하게 정돈된 시멘트 계단길이다. 10여분 뒤 계단 끝이다. 태산 등산의 끝이다. 오전 10시 차를 주차하고 출발한 지 7시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집 떠난 지 일주일 만이다. 태산의 많은 부분을 보고 간다. 많은 궁금증이 풀렸고, 또 다른 궁금증도 생겼다. 이번 기회를 통해 태산을 조금 더 알게 됐고, 조금 더 친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태산의 속살을 조금은 들여다 본 듯도 했다. 그러나 과연 내가 알고 있는 태산은, 원래 태산이 지닌 수많은 사연과 지식에 비하면 ‘새발에 피’도 안 될 것이다. 항상 그런 자세로 살아가라는 교훈을 얻고 간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寒菊忍

    04.17,2009 at 4:37 오후

    저도 지난 주말 제남시 행사에 가는 길에 태산을 다녀왔습니다.
    정상에서 장엄한 일출도 보았고 기(氣)도 많이 받은 듯 합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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