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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장성 편백림 일군 한국의 조림왕 임종국 - 마운틴
장성 편백림 일군 한국의 조림왕 임종국

‘한국의 조림왕’ 고(故) 춘원(春園) 임종국. 그의 일생은 숲으로 점철돼 있다.

그는 한국 조림의 효시다. 그가 가꾼 전남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은 한국 최고 밀도를 자랑한다. 1㏊당(약 3,000평) 700~2,500 그루정도다. 나무의 평균 높이는 18m로 성인 키의 10배 이상이다. 수령도 대부분 30년을 넘는다. 가히 숲 천국을 방불케 한다. 2005년 말 기준 입목축적(단위면적당 산림 밀도)을 보면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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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임종국 선생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무 살피기에 여념없었다고 한다.

축령산 산림은 천연림 75㏊(29%)와 인공림 183㏊(71%)로 이루어져 있으며, 입목축적은 천연림이 101㎥, 인공림이 250㎥로 나무를 심고 가꾼 임지가 천연림보다 2배 이상 잘 보존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전국의 숲 현황과 비교해보자. 전국 평균 축적은 79.2㎥/㏊이며, 국유림은 103.4㎥, 공유림은 82.1㎥ 사유림은 70.7㎥이다. 축령산 인공림의 축적 250㎥는 다른 어떤 산림보다 촘촘하게 잘 가꾸어져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수치는 전국 평균 축적의 3배 이상에 달하며, 세계 유수의 숲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평균 입목축적은 캐나다 120㎥, 미국 136㎥, 일본 145㎥, 독일 268㎥, 스위스 337㎥, 북한 41㎥ 등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나라의 숲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축령산 편백․삼나무 숲은 불가능하게 보였을 법한 일을 그의 손으로 직접 일군 성과였다. 아마 그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축령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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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편백림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꼽힌다.

임종국 선생은 1915년 전북 순창군 복흥면 조동에서 나주 임영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순창중학교 3년 중퇴 후 농촌 일을 돕다가 25세 때인 1940년 전남 장성군 장재마을로 이주, 양잠과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제법 짭짤한 농가소득을 올려 어렵지 않게 생활했다. 당시의 양잠과 특용작물 재배는 일종의 부농들의 농사일 이었다. 그는 농사일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돈도 벌면서 영농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종국 선생은 우연히 장성군 덕진리의 인촌 김성수 선생 소유 야산에 쭉쭉 뻗어 자라고 있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보고 ‘아! 우리 강산에도 이런 나무가 성장할 수 있구나’를 느끼며 한눈에 반해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드리 편백-삼나무를 보고선 조림지를 만들 의욕에 넘쳤고, 대경목 생산이 가능하다는 확신도 생겼다. 조림을 해야 한다는 열정이 용솟음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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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나무 살피던 임종국 선생.

그 해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6년이었다. 임종국 선생은 그 해 봄부터 본격 조림을 시작했다. 양잠업에서 양묘업으로 전환이었다. 일단 사재를 털어 자기소유 임야 1㏊에 삼나무 5,000주를 시험조성하여 성공하자, 용기와 자신감을 더욱 얻게 된다.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는 임종국식(式) 적지적수 조림을 개발하여 거침없이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어나갔다.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서삼면 모암리, 북하면 월성리 일대 등 100㏊를 추가 매입하고 대단위 조림을 실시했다. 먹을거리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조림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한 것을 본 주위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기도 했으나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68년엔 전국에 몰아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밭작물뿐만 아니라 그가 조림한 나무들이 전부 말라죽을 위기에 처했다. 하나 둘씩 말라비틀어져갔다.

그러나 그는 물지개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다. 물을 구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물을 구하러 다닌다는 자체부터가 고통인데, 인간이 그 물을 지고 산으로 옮기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어느 정도 효과 있으며, 또한 고통은 얼마나 따랐겠나? 그래도 그는 계속했다. 그의 어깨는 피투성이였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나섰고, 마을 주민들도 하나 둘씩 감동했다. 급기야 온 마을 주민들이 산으로 물을 지다 나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민들 모두 어깨가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 했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려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그들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임종국 선생의 장남 임지택씨(56)의 증언이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림면적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의 조림사업은 76년까지 계속됐다. 꼬박 20여 년간을 헐벗은 산 570㏊에 28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가꾼 것이다. 72년 그가 5․16 민족상을 받을 때 자료에 따르면 71년까지 그의 투자비용은 총 7,370만원으로 평가돼 있다. 10년 자란 나무 한그루가 1,000원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투자를 한 것이다.

그의 조림에 대한 열정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나무심기를 전국가적 운동으로 유발하는 촉매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66년 식산포장(殖産褒章), 70년 철탑산업훈장, 72년 5․16 민족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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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모습이다.

그의 조림사업은 가뭄․수해․돈 문제 등으로 몇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우직할 정도의 끈기와 검소한 생활로 잘 넘어갔다. 그러나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 소유의 산과 임야들은 그가 돈을 끌어다 쓴 사채업자와 채권자들에게 넘어가고 만다. 이 당시의 상황을 그의 장남 임지택씨의 말을 빌려 들어보자.

“초기엔 투자비용이 많아 여기저기서 돈을 빌어다 썼으나 60년대 이후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원으로 조림․조경사업이 날로 번창했다. 하지만 정부에 납품하던 물량이 때때로 줄거나 없어지면 자금순환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를 전해들은 박 전 대통령은 재벌 몇 명을 불러 산림보전을 위해 조림지 일부를 매입하라고 권유했다. 재벌 몇 명은 장성 축령산 일대를 직접 현지답사하기도 했다. 일부는 이미 지분을 약간 보유하고 있었다. 모든 결정이 난 후 최종적으로 청와대에 가서 보고하고 계약서만 받아오는 작업만 남겨두었다. 그러나 운명은 외면했다. 박 전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재벌들의 조림지 매입계획은 없었던 걸로 돼 버렸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몇 일만 더 계셨다면 지금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고, 더 많고 더 좋은 숲이 가꿔졌을 것이다.”

이 때가 79년 말 상황이고, 80년엔 임종국 선생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 후 임종국 선생은 7년간을 투병하다 세상을 하직했다. 병원비로 상당한 돈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채업자나 채권자들이 부채상환을 재촉했다. 이 때 가족들이 상당히 힘들었다고 장남 임지택씨는 말했다. 어떤 날은 작업장의 십장들까지 병원과 집에 나타나 돈 달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의 조림왕’은 그렇게 쓸쓸히 간 것이다. 장남 임씨가 전하는 그의 유언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게 나라사랑하는 길이다.” 역시 조림왕 다운 유언이었다.

조림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임종국 선생은 지금 그가 가꾼 전남 장성 축령산 자락에 묻혀있다. 선산에 있던 그의 묘를 지난 2005년 수목장으로 이장한 것이다. 산림청은 지난 2001년 그의 공로를 기려 국립수목원내 ‘숲의 명예전당’에 업적을 새겨 헌정했다. 故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 이 땅에 자라는 나무종자를 수집하고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국토의 구석구석을 누빈 故 김이만 할아버지(1911~1986),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조림수종 개발에 평생을 바친 故 현신규 박사(1911~1986), 미국인으로서 한국에 귀화해 7,200여종을 보유한, 아시아 처음이자 세계 12번째로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은 천리포수목원을 조성한 민병갈(미국명 Carl Ferris Mille) 원장 등뿐이다.

산림청은 지난 2000년 이 편백나무 숲을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했고, 앞으로 그 가치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또한 현재 ㏊당 200㎥ 남짓 되는 산림축적을 산림보존지역에 한해서 ㏊당 600㎥ 이상으로 육성할 계획으로 있다. 뿐만 아니라 사유림 매수를 통한 경영임지를 현재 258㏊에서 534㏊로 확대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머지않아 외국으로 수출되는 날도 기대해본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2 Comments

  1. 장희주

    07.07,2015 at 10:39 오전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산림청 사보 을 제작하고 있는 장희주라고 합니다. 이렇게 연락을 드린 이유는, 이번 매거진 숲 7+8월호에 임종국 선생님과 관련한 이야기를 진행 중에 있는데, 선생님게 원고를 좀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관련 자료를 서칭하던 중 선생님의 글을 보고 이렇게 댓글로 남깁니다. 선생님께서 가능하시다고 하시면, 이메일 주소로 더 자세한 내용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pichy91

      07.13,2015 at 9:29 오전

      제 메일주소는 jungwon@chosun.com 입니다. 휴대폰은 010-8915-2467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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