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오른쪽 길이현재 3번 국도고 바로왼쪽이 구 3번 국도, 그 옆이 왕복 2차선이 채 안되는 구길. 조금 떨어져 탄광철로.
영남대로를 왜 이렇게 가파르고 위험한 절벽에 길을 내고 사람들을 다니게 했을까?
여기저기 책을 뒤져봤다.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의 책을 쓴 옛길 전문가 신정일씨가 그 답을 줬다. "옛길을 보면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동래에서 한양까지 가장 빠른 길을 닦은 게 영남대로이고 옛길"이라고 말했다. 지금 경부고속도로는 450㎞정도 되지만 영남대로는 직접 걸어본 결과 얼추 360㎞ 된다고 했다. 거의 90㎞ 차이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닦은 길과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걷는 길과의 차이다. 새삼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졌다.
진남교반의 병풍바위 바로 위로 영남대로 중의 토끼비리길이 있다.
태극모양의 잔도를 지나니 조그만 묘가 나왔다. 묘 바로 옆으로 토끼비리 마지막 구간인 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저히 사람 손으로 다듬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는, 두 사람이 다닐만한 길이 바위 위에 나 있었다. "야, 이런 길이 있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왼쪽으로는 오정산 정상 2.5㎞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 둘러보기로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 석현성에서 고모산성 방향으로 한바퀴 돌았다.
토끼비리 천도의 진수를 보여주는 길이다. 암벽을 깎아 두사람 다닐 만한 길을 만들었다.
둘째날인 6월 6일. 문경 진남휴게소를 기점으로 진남팔경 중 으뜸이라는 진남교반의 비석을 보고 고모산성→석현성→토끼비리→영강→진남역→진남휴게소→신현리 고분군→진남휴게소로 회귀하기로 했다.
토끼비리의 암벽을 깎아만든 천도길이다.
진남휴게소 바로 위쪽 숲속을 헤치고 조금 지나자 숲속에 묻혀있던 비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전면은 ‘慶北八景之一'(경북팔경지일, 경북팔경 중 제일)이라 새겨져 있었다. 뒷면은 ‘소화(昭和) 8년 10월에 대구일보사 주최로 경북 주민대상 명승지 투표를 한 결과, 진남교반이 으뜸으로 1경을 차지했다’고 전하고 있다.
석현성, 왼쪽으로 가면 영남대로 토끼비리고 오른쪽은 고모산성이다.
비석은 소화 13년 가을에 마성면장이 세운 것으로 돼 있다. 소화 1년은 1926년이다. 따라서 1933년에 진남교반이 경북팔경 중 1경으로 꼽혔으며, 그로부터 5년 뒤인 1938년에 1경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운 것이다. 교반이라는 말은 다리 주변을 뜻하며, 진남교반은 진남교 다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말한다.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문경새재가 제2경이다. 진남교반이 그만큼 더 아름다웠다는 얘기다.
아직 이 길은 제대로 닦여져 있지 않았다. 문경시청에서도 고모산성과 토끼비리길을 연계시켜 관광코스로 개발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남휴게소 주변 땅을 매입하지 못해 제대로 정비를 못하고 있다 한다.
토끼비리 바로 옆에 삼국시대에 축성했다는 고모산성과 안내판.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신라시대 때 축성한 고모산성(姑母山城) 방향으로 올라갔다. 고모산성은 일명 할매, 할미산성이라고도 한다. 고모산성은 2000년부터 시작된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정비가 시작됐다.
석현성에서 바라 본 고모산성.
서문에 다다랐다. 성의 높이만 10m 이상이었다. 높이가 10m 이상이 되려면 하단부의 폭도 그 정도는 충분히 될 것 같았다. 서문은 아직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모습이다. 바로 그 옆으로 새로 축성한 성벽이 웅장한 위용을 뽐내는 듯했다. 성벽 위로 올라서자 발아래 진남교반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으로는 병풍바위, 발아래는 절벽을 휘돌아가는 영강 물줄기, 탄광철도, 신작로, 2차선 국도, 4차선 국도, 고속도로가 이어지고, 병풍바위 위로는 영남대로 옛길이다. 한마디로 여기는‘길 박물관’이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전통과 근대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석현성 정문인 진남문.
조금 나쁘게 보자면 길들의 전쟁이었다. 근대도로는 자연의 길, 인간의 길, 역사의 길을 배려하지 않는다. 오직 통로의 논리만 관철시키려 할뿐 전통도로가 지녀온 도리, 즉 길의 이치를 압살시킨다. 산이 막히면 터널을 뚫고, 물이 막히면 콘크리트 교량을 놓는다. 근대도로는 마치 일사불란한 명령체계의 권력구조와 흡사하다.
고모산성. 한창 새롭게 축성하고 있다.
만남은 상생할 수 있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새로 닦은 4차선 3번 국도는 병풍바위를 관통하며 작살냈고,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오정산을 관통했다. 전통과 근대의 부조화의 한 단면이다. 그 옆으로 일제 때부터 있었던 탄광철로와, 왕복 2차선이 채 안되는 구도로가 영강을 건너 마주 달리고 있었다. 바로 인근엔 3번국도 구도로인 왕복 2차선도 엉켜 있었다. 문경이 교통의 요충지임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한편으론 교통 요충지이고, 다른 한편으로 길들의 전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장면이다.
남문으로 내려와 다시 석현성으로 갔다. 어제 갔던 토끼비리 그 길이다. 한번 더 가보자. 마지막 천도구간을 지나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졌다. 영남대로는 영강 따라 계속 가지만 진남휴게소로 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북쪽으로 틀었다. 영강따라 거슬러 조금 올라가다 대교를 지나 진남역으로 갔다. 진남역에선 철로바이크 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토끼비리의 호젓한 길.
식당에 예약을 해놓고 잠시 문경 신현리 고분군에 다녀오기로 했다. 신현리 고분군은 2000년부터 시작된 유교문화권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고모산성과 신라시대 고분을 집중 발굴했다. 금동제귀걸이, 화살촉, 낫 등의 신라시대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유물은 곧 대구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했다.
고모산성에서 바라 본 석현성. 보이지 않지만 토끼비리가 바로 그 옆으로 있다.
고분군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시 길에 대한 상념이 떠올랐다. 인간에게 걷는다는 것은 확실히 단순한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나는 걷는다>를 쓴 베르나르 모리비에르는 "홀로 걸으며 생각을 하는 동안 근본적인 것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걷는다"고 했다. 걷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요, 곧 철학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루소도 "산보를 즐기는 동안에는 그 날 중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는 자아 속으로 되돌아가 나만을 위하여 즐길 수 있고, 빈틈없이 인간의 진실과 자연이 소망하는 그대로의 존재로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했다.
불세출의 시인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을 생각하며 3시간 남짓 되는 토끼비리 순환길을 끝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