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산신(山神)이 됐을까?… 김유신 등 호국인물이 주로 대상

오늘날 한국에서 500건 이상의 전통 집단의식이 행해지고 있는데, 그 중 114건은 산신을 대상으로, 109건은 마을의 수호신을, 68건은 기타 수호신을, 23건은 산과 강의 신을, 23건은 조상신을, 11건은 나무의 신을 대상으로 하며, 164건은 기타 군소 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집단의식 중에서 산신을 모시는 행사가 단연 으뜸으로 조사됐다. 그러면 누가 산신이 됐을까? 단군과 같이 보편적 인물이 여러 산에서 산신으로 모셔진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특정 산과 관련된 인물이 그 산의 산신이 된 경우가 많다.

초기 우리나라 고대의 산신들은 남녀산신이 있었으며, 여산신은 모권사회의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여산신은 죽은 후에 산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산신이었으며, 남산신은 죽은 후에 비로소 신격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통일신라부터 산신을 모신 중요한 명산인 오악은 대체적으로 동 토함산, 서 계룡산, 남 지리산, 북 태백산, 중 부악(지금의 대구 팔공산)으로, 이곳에서 산신에게 호국의 기원을 비는 의식을 국가행사로 올렸다. 시대마다 조금씩 산이 달라지긴 했으나 묘향산과 지리산은 절대 빠지지 않았으며, 오대산, 계룡산, 태백산, 치악산, 북한산, 백두산, 칠보산, 금강산도 자주 언급됐다.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시조와 고대시대 초기의 왕들 가운데 산신으로 관념되는 존재들이 있다. 즉 가락의 시조모로 전해지는 정현모주(正見母主)와 토함산신(吐含山神)으로 신봉되는 탈해왕이 그들이다. 정현모주는 신라 왕조의 시조인 여산신이며, 탈해왕은 왕성의 시조인 남산신이다. 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를 낳은 후 서산(후에 선도산)의 산신이 되었다. 이 선도산신이 신라 초기엔 가장 중요한 산신이었고, 가장 융숭하게 제사를 모셨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후 선도성모는 불교를 포교하는 여산신으로 변했다. 선도성모를 지리산의 천왕봉 성모와 동일한 존재로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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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에서 직접 관리하는 월악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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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신의 유래에 대한 안내

지리산의 산신은 성모(聖母) 또는 천왕 할머니로 불려오면서 많은 조화를 부려 국가에 도움을 줬다. 고려 태조 왕건은 어머니 위숙왕후의 기도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게 했다하여 성모로 모셔졌다. 이성계가 등극 전에 지리산 깊이 쳐들어온 왜구와 싸울 때 대첩을 거둔 것이 이 성모가 구름을 조작한 신조(神助) 때문이라 하여 호국백이라는 벼슬을 내린 것으로 전한다. 이에 왜적은 성모의 신체에 칼질을 하여 보복을 했다고 한다.

최치원이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던가, 김유신 장군이 산신이 되어 강릉지역을 보호했다는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단종도 함백산에서 산신으로 모셔져 있다.

이들 인물의 공통점은 전부 호국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국가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웠거나, 국가가 어려운 위기에 처했을 때 어김없이 나타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한 내용으로 그려졌다.

충북 제천시에서 월악산 자락에 산신각을 모시고 있는 내용도 호국적 성격 그대로다. 몽고군이 월악산성에 물밀듯 쳐들어왔다. 그런데 별안간 안개가 끼고 천둥과 번개가 요란스럽게 일어나더니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공격하던 몽고군은 앞을 분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여 세찬 번개와 천둥에 넔을 잃고 공포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필시 월악산신이 노한 것이라고 생각한 몽고군은 겁을 먹고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문경 쪽으로 물러났다.

이 외에도 앞의 블로그에서 언급했듯이 독성각에는 부처 이전에 홀로 깨친 인물을 산신으로 모신 경우도 있다. 독성 산신도 마을의 수호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국가를 보호하고 마을을 지킨 수호신으로서 산신은 야사(野史)에, 때로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며 우리와 함께 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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