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등산리더십’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기업문화 바꾸려 山을 선택… 협동․야성 길러 대성공“ - 마운틴
‘등산리더십’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기업문화 바꾸려 山을 선택… 협동․야성 길러 대성공“

IMF 때 파산위기의 회사를 불과 10여년 만에 아시아 1위이자 세계 11위의 재보험사로 도약시켰고, 그 도약의 원동력으로 산을 선택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럴 리가” “산이 어떻게”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천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어 화제다.


코리안리 재보험사의 박종원(朴鐘元, 65) 사장이 그 당사자다.

“등산리더십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뭘 한 게 있나요. 불수사도북 종주하고 매달 산행하는 사장들도 많던데요.”

“그런데 그 분들에게는 등산리더십을 발휘한다고 하지 않지만 유달리 사장님에게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던데요.”

“아마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 산을 선택했기 때문이지 않나 합니다.”

기업문화가 무엇이고, 어떤 기업문화를 바꿨을까?

참고용.jpg

박종원 사장이 북한산에 올랐다.

코리안리 재보험사는 IMF 때 보증보험 영업에서 3,818억원 손실과 그로 인한 그해 2,800억원의 당기손실로 거의 파산상태에 이른 회사였다. 오너로서는 특단의 자구책이 필요했다. 일단 사장을 외부에서 물색했다. 재경부 공보관(부이사관)으로서 불철주야 일하던 박종원 공보관이 떠올랐다. 박종원 공보관은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1998년 6월 이사관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그의 의사를 타진했다. 박종원 이사관으로서도 공직에서 배운 훌륭한 경험들을 민간에서 활용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던 터였다. 흔쾌히 자리를 옮겼다. 이 결단은 코리안리 재보험 회사를 이후 5배 이상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 운명의 순간이었다.

10.jpg

박종원 사장이사장실에서 등산과 기업문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박종원 사장은 1998년 7월 코리안리 재보험 사장으로 취임했다. 업무를 어느 정도 파악한 뒤 그해 연말 신년 업무보고를 받았다. 지난해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었고 내년도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니 전부서가 ‘성장률 0’를 보고했다. 직원들의 부정적, 소극적, 폐쇄적 태도에 나약한 자세까지 갑자기 미래가 암담해졌다.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성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 과연 떳떳하게 말할 직원이 있느냐’고 다그쳤다. 무사안일하고 나약한 기업문화에 일침을 가했다. “전 부서가 10%이상 성장목표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에 맞춰 보고를 다시 받았다. 목표를 정하고 구체적 업무까지 세워 밀어붙인 덕분에 그 해 13% 성장을 이룩했다. 모두가 놀랐다.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성장률을 달성했다. 직원들도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8-1.JPG

백두대간 종주 연례행사 중 안개 낀 소백산 구간을 직원들과 함께오르고 있다.

박종원 사장은 이때 백두대간 종주 카드를 꺼냈다. 야성(野性)을 더욱 키우기 위해서였다. 잃었던 자신감을 찾게 해주고 나약한 정신상태를 바꾸기 위해 백 마디 말보다 바로 실천, 즉 등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등산만큼 야성을 키우는 운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등산은 야성뿐 아니라 모험, 근성, 도전정신 모두를 키워줍니다.”

2003년부터 매년 2박3일, 회사 정기행사 일환으로 백두대간 종주 계획을 세웠다. 매년 40~50㎞씩 모든 직원들이 3개조로 나눠 종주에 참가토록 했다. 그해 유명산에서 야간행군을 포함 총50㎞의 강행군을 했다. 모두들 말이 많았다.

“내려올 걸 왜 올라가느냐” “이상한 사장이 와서 이상한 일을 벌인다” “가까 진단서 내고 빠졌다” 마치 불참한 게 자랑인 양 각종 뒷말들이 무성했다.

7[1].JPG

백두대간 덕유산 구간을 직원들과 함께 종주하고 있는 박종원 사장.

반면 고생한 사람들의 무용담도 만만찮았다.

“올라갈 땐 힘들었지만 갔다 오니 너무 좋더라” “한달 에너지 얻어왔다” “산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다” 예찬론 일색이었다. 보통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만 회사 행사에 참석한 보람과 개인 체력 다지고 자연을 느낀다는 긍정 분위기가 확산됐다.

처음엔 절반 남짓 참석하던 인원이 해가 갈수록 늘었다. 240명 전 직원 중에 200명 내외가 참석할 정도가 됐다. 의례히 가는 분위기다. 운동 안하던 사람이 갑자기 2박3일 동안 50㎞ 산행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뭉친 다리로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전 직원이 매주 등산을 하던지, 점심시간과 퇴근 후 시간 날 때 회사 헬스장에서 체력 단련하는 모습도 눈에 띄게 늘었다.

2[1].JPG

백두대간 종주 태백산 구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점차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바뀌어갔다. 도전과 모험정신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박종원 사장은 “이야, 불과 몇 년 새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라고 감탄했다.

2009년, 올해가 백두대간 종주 마지막 해다. 8월 마지막 주 수, 목, 금 2박3일 동안 지리산에서 시작한 종주를 설악산에서 끝낸다. 직원들 모두 가슴 벅찬 순간만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변한 것들도 많다. 기업 외형은 첫 취임당시인 99년 총매출 1조 남짓에서 현재 4조2천억 원으로, 당기순익은 연200억 남짓에서 600억 이상으로 늘렸다. 1인당 생산성은 37억원에서 161억원으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수직 상승했다. 그 결과 세계 11위이자 아시아 1위로 올라섰고, 90년대까지 벤치마킹 회사였던 일본의 토아리(Toa Re)가 이제는 코리안리를 벤치마킹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순위도 한참 역전됐음은 물론이다. 금융기관으로 아시아 1위는 코리안리 재보험이 한국에서 유일하다.


그는 산을 선택했지만 사실은 기업문화를 바꾼 것이었다.

“사람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듯 기업도 문화가 지배합니다. 정신은 보이지 않는 부분인 문화를 말합니다. 기업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게 기업의 정신, 즉 문화입니다. 기업문화가 부정적, 소극적, 폐쇄적이면 아무리 좋은 인재를 가지고 있다한들 발전할 수 없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코리안리에 왔을 때 이런 부정적 기업문화가 팽배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를 바꿀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기업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산, 등산을 택했고, 이게 주효했습니다. 문화를 바꾸고 그 다음 조직과 인재와 교육을 챙겼습니다. 이러한 기업문화혁신이 코리안리의 성장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사장님_북한산_산행_(39).jpg

북한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게 그를 지칭하는 등산리더십이다. 산을 통해서 강한 추진력을 얻고, 도전과 모험, 야성, 근성을 찾아내 키우고, 자신감을 갖게 한다는 거다.

그의 이런 교훈은 많은 산행 경험에서 얻어졌다. 대학교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산은 행시 합격 후 재무부에 근무하면서 아예 산악부에 가입했다. 재무부 산악부장도 하며 전국의 1300고지이상 되는 산은 전부 섭렵했다.

“등산은 육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홀로 할 수 있다는 말은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의미와 통합니다. 부단한 자기와의 싸움이 바로 극기이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인 것입니다.”


여러 산을 다니는 동안 위험한 고비도 수차례 있었다. 70년대 중반 10월쯤 혼자서 설악산을 찾았다. 마등령~공룡능선~천불동계곡을 등산하기로 계획 세웠다. 공룡능선 3분의 1쯤 왔을 때였다. 갑자기 안개가 짙게 깔리더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지리 왔다 갔다 하며 더욱 당황했다. 지나온 길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순간 이래서 등산객이 조난당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 하나 들고 오지 않은 자신을 자책했고, ‘그 자만심 때문에 이런 고비를 만났다’고 후회했다. 길이 보이지 않아 뒤로 갈 수도 없었다.


“사람 살려”라고 고함쳤다. 바람결에 들릴락 말락 “어디냐”라는 말이 들여오는 듯했다. 마치 하느님의 미세한 소리마냥 “뒤로, 뒤로”라는 말이 얼핏 들렸다. 뒤로 돌아 바위틈을 보는 순간 세찬 바람이 1~2초간 불어 짙게 깔린 안개를 거짓말 같이 걷어버렸다. 그 짧은 시간 길이 보였다. ‘하느님이 나에게 겸손하게 살라고 기회를 다시 한번 더 준 것’이라 생각하며 바위틈 길로 무사히 능선을 지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에도 치악산에서도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상황에서의 산행 또한 조난당할 뻔한 사건이었다. 이런 등산 경험은 그를 더욱 크게 성숙시키는 계기로 만들었다. 자만심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만하고 교만하면 꼭 벌칙이 따른다는 교훈으로 다가왔다. 다 산에서 얻은 자산들이다.

9[1].JPG

오대산 정상 비로봉에서.

그는 스키, 축구, 골프, 등산 등 모든 운동을 좋아한다. 흔히들 ‘골프는 세컨드, 등산은 조강지처’라고 한다.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등산이 으뜸”이라고 바로 돌아왔다. “등산은 만병통치 치료약”이라고 덧붙였다. 육체적 건강 다져줘서 좋고, 스트레스 없애줘 정신건강에도 제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평소 산을 이용하고 선택한 결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평소 지닌 격언은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거다. 조그만 일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행복을 느끼고 남한테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절대 남한테 잘 할 수 없어요. 직원들도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나도 직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는 직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매년 등산행사, 신입사원 면접 때 등산테스트와 더불어 퇴계의 도산서원에서 효(孝)교육도 받고 있다. ‘인성이 잘 돼 있어야 회사 충성도가 높고 부모에게 잘 한다’는 철칙 때문이다. 효교육 실시 초기에 직원이 부모에 안부전화를 하니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솔직히 말해라”며 부모님이 되묻는 일도 자주 생겨 한바탕 웃고 넘어가곤 했다. 정례화 되자 부모님들이 “그 회사 참 좋은 회사다”며 격려전화도 걸려온다는 후문이다.

5.jpg

한마음 결의대회를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기독교적 격언이라면 불교적으로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도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변화는 일체유심조예요. 자기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결론도 긍정적으로 납니다. 이른바 씨 뿌린 대로 거두는 이치죠. 혁신을 추구하고 변화를 꾀하면 분명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부하면 부정적, 폐쇄적,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죠. 사람들은, 아니 직원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6-1.jpg

북한산 산행을 마친 후 직원들과 뒤풀이 행사를 하고 있다.

이젠 코리안리 CEO로 재임한지도 벌써 10년을 넘겼다. 4번이나 재신임 받았다.

“아마 지금은 옛날 같은 구조조정을 못할 겁니다. 이젠 CEO 이전에 부모로서, 직원들의 멘토로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회사도 일정 궤도에 올랐고요. 그 일환으로 매주 신입사원 및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합니다. 사심 없이 허심탄회하게 그들의 고민과 인생관을 들으며 부모입장에서 얘기해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색약으로 어릴 적 의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박종원 사장. 법대 진학한 뒤 행시 합격으로 공무원 생활한지도 십수 년, CEO 생활도 10여년, 무척 많은 산을 다녔고, 산을 통해 무척 많은 교훈도 얻었다. 은퇴해서도 계속 산에 다니겠다는 그다. 왜 계속 산에 가고 싶을까? 그의 생활에서 얼핏 엿볼 수 있지만 정확한 답은 표현하지 못한 그의 가슴속에 있을 것이다.

사진 코리안리 재보험 제공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지해범

    08.06,2009 at 3:49 오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