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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백두대간, 누가 언제 처음 썼나?… 신경준의 산수고(山水考)와 관련해서 - 마운틴
백두대간, 누가 언제 처음 썼나?… 신경준의 산수고(山水考)와 관련해서

요즘 백두대간 종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일종의 ‘등산붐’으로 일기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이제 어느덧 종주등산객들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큰 줄기를 의미한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은 도선국사로 알려져 있다. 도선국사는 9세기 중반 한반도 풍수지리학의 시조격인 인물이다. 도선국사는 ‘한반도 산세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그친다며, 그 산세는 뿌리에 품은 나무줄기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두대간이란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는 정확히 짚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18세기 전후 백두대간이란 용어가 지리서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약용은 <대동수경>에서 ‘팔도의 모든 산이 이 산에서 일어났으니, 이 산은 곧 우리나라 산악의 조종(祖宗)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8세기 중엽 성호 이익도 <백두정간>이란 제목의 글에서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이다. 철령으로부터 그 서쪽의 모든 가지들은 서남쪽으로 달렸다. 철령으로부터 태백산, 소백산에 이르기까지 하늘에 닿도록 우뚝 솟았으니, 이것이 곧 정간이다.’라고 남기고 있다. 이익은 대간과 정간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8세기의 지리학자 이중환도 <택리지>에 ‘백두대맥’ ‘백두남맥’ ‘대간’ 등의 표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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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팔도총도.

조선 후기 가장 뛰어난 지리학자였던 신경준은 <산수고(山水考)>에서 국토의 뼈대와 핏줄을 이루고 있는 산과 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리서로서 한국 산천에 대한 인식방식을 보여준다.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 우리나라 산수는 열 둘로 나타낼 수 있으니, 산은 백두산으로부터 12산으로 나누어지며, 12산은 나뉘어 팔도가 된다. 팔도의 여러 물은 합하여 12수가 되고, 그 12수는 합하여 바다가 된다. 흐름과 솟음의 형세가 나누어지고 합함의 묘함을 여기에서 가히 볼 수 있다.’

산수고에 나온 12개의 산과 강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12산은 삼각산, 백두산, 원산(圓山), 낭림산, 두류산,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육십치, 지리산 등이다. 12수는 한강, 예성강, 대진강, 금강, 사호, 섬강, 낙동강, 용흥강, 두만강,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등이다. 삼각산과 한강을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수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산수고는 이와같이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강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조망하여 전체적인 체계를 파악하고, 촌락과 도시가 위치한 지역을 산과 강의 측면에서 파악했다. 산수고 이후엔 산수를 함께 엮은 지리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을 중심한 지리서와 하천을 중심으로 한 지리서가 독립적으로 분화되어 편찬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된다. 산을 중심으로 산줄기의 체계를 정리한 책이 <산경표(山徑表)>이며, 강을 중심으로 강줄기와 그와 관려된 지역의 모습을 서술한 대표적인 책이 다산 정약용의 <대동수경(大東水經)>이다.

산경표는 신경준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증명할만한 아무 구체적 자료는 없다. 학계에서는 정확한 저자를 알 수 없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 산경표와 대동수경에 대해서 바로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자.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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