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걷기 <3> 남산… 국가 제사 지내던 목멱신사 있어 목멱산이라 불러

남산은 조선시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궁궐 남쪽에 있는 산으로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목멱산은 곧 도성의 남산인데, 인경산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남산의 고유명은 목멱산, 인경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을 목멱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산 위에 목멱신사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태조 4년(1395) 12월에 북산인 백악산신을 진국백, 남산의 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작하여 국가에서 제사를 받들게 하고 목멱대왕을 봉사하는 사당을 목멱신사, 이 신사가 있는 산을 목멱산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남산 꼭대기에 자리한 목멱신사를 나라에서 제사지내는 사당이라 하여 일명 ‘국사당’이라고도 했다. 이 국사당 건물은 지금의 서울타워가 있는 언저리 성벽 안에 자리했다.

남산은 그 모습이 달리는 말이 안장을 벗은 것 같다(走馬脫鞍形)고 하고, 남산의 서쪽 봉우리를 누에머리라고 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누에는 뽕 잎을 먹고 살기 때문에 남산의 지덕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뽕잎을 대어 줄 필요가 있으므로 남산이 맞바로 보이는 한강 건너 사평리에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의 지명은 잠실로 바뀌어 잠원동이 되었다.

남산은 중구와 용산구 경계로, 북쪽의 북악,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 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 중의 하나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였을 때 남산은 풍수지리상 안산 겸 주작(朱雀)에 해당되는 중요한 산이었다.

1394년 한양천도 이전까지만 해도 남산은 한갓 작고 평범한 뫼에 지나지 않아 인경산이라고 불렸지만, 조선의 도읍지로 되면서 역사의 중심무대에 올려졌다. 조선 정부는 남산을 남쪽의 외적을 막는 자연의 방패로 삼아 태조 5년(1396) 1월에 1차로 18km의 도성을 쌓고, 다시 2차로 그해 8월에 보수했다.

남산은 조선초 태종 6년(1406) 12월부터 갑오개혁 때까지 500년간 국방의 중요한 시설인 5개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전국의 봉수를 받아 국경이나 해안의 이상 유무를 병조(兵曹)에 보고했다. 조선 후기에는 어영청의 분영인 남소영과 금위영의 분영인 남별영이 남산 기슭에 자리하여 남산 일대를 무예훈련장으로 삼았다.

정부는 1955년 7월 11일 남산공원과 장충단공원을 확장했고, 1959년 3월 12일에는 내무부에서 ‘남산대공원’으로 명칭을 고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남산 성곽 따라 한번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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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에서 올라와 남산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고, 서울의 우수조망소이기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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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조망소 바로 옆에는 숲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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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총연맹을 거쳐 남산 순환길 진입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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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올라가면 남산성곽 탐방로가 잘 정돈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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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탐방로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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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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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성곽 옆으로 나무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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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옆으로 순환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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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사이에 거대한 나무가 뿌리를 내려 기묘한 형태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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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팔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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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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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봉수대지 안패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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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기념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낭만귀족

    09.18,2009 at 11:19 오전

    옛전보단 많이 좋아지고, 많은 노고에 감사드린다.제가 몇일전에 버스타고 올라갓다가, 북쪽 계단을 밟고 내려오면서 느낀점. 계단에 높이가 높다는것을 느끼며, 관절에 무리가 걱정이되.직접 현장에서 느껴보시고, 잘 생각과 검토 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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