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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사산 20㎞를 걸으면 한양 600년 역사가 보인다

600여 년 전 서울성곽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누가, 왜 축성했으며, 무너지고 없어진 구간은 또 언제, 왜 그렇게 됐을까? 아마 머지않아 완성된 성곽을 따라 도심을 걸으며 서울성곽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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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은 지금 보수 공사 중이라 덕수궁 대한문에서 출발했다.

서울시에서 지난 6월부터 서울 내사산(內四山) 역사문화탐방로를 본격 조성하기 시작했다. 숭례문(남대문)~돈의문터(서대문)~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북문)~낙산~흥인지문(동대문)~광희문~남산을 거쳐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오는 서울성곽 18.2㎞(도상거리) 트레킹코스를 2011년까지 완공키로 했다. 등산로 12㎞와 그린웨이 8㎞로 소요시간은 약 13시간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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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등산로에 진입하자마자 바로 이정표가 나온다.

기존 성곽코스는 그대로 사용하고 없어진 구간은 가급적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할 방침이다. 이미 복원된 구간 10.4㎞와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어 복원이 가능한 구간 2.5㎞ 등은 걷는 코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소실되어 복원이 불가능한 구간 5.1㎞는 서울성곽자리라는 표시를 할 예정이다. 북악산을 완전개방한 지 꼭 4년 만에 600년 전의 서울성곽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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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엔 지금 성벽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서울시청 문화재담당 곽석권씨는 숭례문에서 출발지를 원래의 길보다 사람 통행이 수월한 태평로와 정동극장 앞으로 우회한다고 했다. 서울시에서 소개한 코스는 숭례문~태평로~삼성서울병원(돈의문터)~사직터널~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와룡공원~서울과학고 앞 경신고 뒷담 골목~혜화문~가톨릭대 낙산방향~성곽따라 동대문~광희문~장충체육관 위 성곽따라~신라호텔~타워호텔~장충단 고개~남산~성곽 탐방로~N타워~식물원~백범광장~숭례문으로 회귀한다. 이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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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축성했던 성벽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다. 아직 복원안된 구간이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출발했다. 사적 제124호로 지정된 덕수궁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경희궁 등 왕궁이 전소되자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큰 덕수궁에서 선조가 기거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선조가 서거하고 광해군이 이곳에서 왕위에 즉위했다. 그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돌담길은 역사의 유적이라기보다는 연인들의 운치 있는 데이트 코스로 더 이름났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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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성벽이 완성된구간이다.

횡단보도를 지나 삼성서울병원 앞에 도착했다. 서대문은 온데간데없고, 있었다는 이정표만 보일 듯 말 듯 병원 앞에 붙어있다. 서울교육청을 지나 사직터널 쪽으로 향했다. 사직공원을 스쳐 지나갔다. 인왕산(338m) 들머리이기도 하며 서울의 역사와 함께 해온 곳이다. 인왕산은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와 함께 도읍을 정할 때 우백호로 삼았던 산이다. 사직공원 뒤에는 황학정이 있다. 조선시대 궁술을 연습하던 터였다. 경희궁 안에 있던 시설을 일제 때 이곳으로 옮겼다. 숲으로 둘러싸여 가까스로 보였다.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호랑이굴과 범바위 방향으로는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이라 연말까지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기존의 등산로를 따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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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방면 성곽.

이윽고 능선에 올랐다. 남쪽으로 성곽 보수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도 한때는 군사통제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됐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일반에 출입이 허용됐다.

능선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데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젊은 남녀 한 쌍이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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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여대생.

“무슨 생각으로 산에서 낚싯대를 들고 있어요?”

“산에서 낚시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싶어 이러고 있습니다.”

“그래, 무슨 생각이 들고, 뭘 낚았어요?”

“많은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가 한번 낚여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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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동 위 자하문 입구에 있는 청계천 발원지 비석.

시각디자인과 대학생들이 창의적 수업과정 중의 과제수행이라고 했다. 신선한 감각으로 와 닿았지만 낚이고 싶지는 않았다. 많은 걸 낚아보라 전하고 뒤돌아섰다.

능선 따라 오르는 길은 사방이 확 트여 서울 전체 조망이 가능했다. 능선 바로 옆으로 거무스름한 이끼 낀 섬돌들이 여기저기 보여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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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성곽.

이제 정상이다. 사방이 완전히 확 트인 정상 삿갓바위에 올라 빽빽이 들어선 서울의 빌딩숲을 내려다 봤다. 갑자기 숨이 팍 막히는 느낌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성곽은 간데없고 빌딩숲만….

정상을 지나 청운동으로 내려가는 길의 성곽은 그나마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성벽 원형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하산길 끝이 북악산과 바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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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성곽이 이렇게 잘 정돈돼 있다.

북악산(342m)은 서울의 주산이다. 옛이름은 백악(白岳)산이다. 정상에 가면 백악산이란 비석이 지금도 세워져 있다. 지난 2007년 문화재청에 의해 부아암, 대은암 등 북악산 일대를 문화재로 지정됐다. 아직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 때 신분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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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성벽에 가끔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자하문터널 위 창의문(자하문)으로 향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입구에 들어서니, 청계천 발원지라는 비석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 북동쪽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지점에 항상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약수터가 있으므로 이를 청계천 발원지로 정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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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울내사산 성곽을 왜 만들었을까?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창의문이 보인다. 창의문은 도성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다른 문의 원형을 복원하는데 고증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오른(동)쪽으로 북악산 방문 신청서를 작성하는 관리사무소가 있다.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행 준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제 북악산으로 출발이다. 북악산은 40년 가까이 인적을 통제했던 터라 서울에 남은 유일한 생태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곽의 모습도 비교적 잘 보존돼 있고, 울창한 소나무숲도 엿볼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나무데크로 잘 정돈된 급경사다. 경사가 45도 이상 될 듯싶었다. 오르막길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백악마루와 청운대를 거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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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조된 성곽도 시대마다 조금씩 양식이 달랐다.

성곽을 따라 가다보면 외부로 튀어나온 성곽이 가끔 있다. 이는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었다. ‘곡장’이라 부른다. 거무스름하게 이끼 긴 성벽에 간혹 새겨진 글자들이 보였다. ‘성벽 축조 당시 공사구역 표시, 공사 담당 군현, 공사 일자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들이다’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전국에서 수십만 명을 동원한 대역사였으니 책임소재가 필요했을 리라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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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내내 닫혀 있었던 북문인 숙정문.

드디어 도성 북문인 숙정문에 다다랐다. 좌청룡 지맥을 보존해야 한다는 풍수지리에 의해 태종 이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특별히 기우제를 지내는 시기에만 개방했다. 오랜 시간 닫혀 있어 그런지 숙연함이 느껴졌다. 북쪽으로는 삼청각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고, 성북동도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는 종로 전경도 희뿌연 날씨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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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산에 왜 성곽이 필요했을까?

와룡공원을 거쳐 혜화동 쪽으로 향했다. 서울과학고 앞에서 방향이 모호했다. 잠시 도로로 내려가다 ‘아니다’ 싶어 주민들에게 길을 물었다. 바로 경신고 뒷벽 골목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뒷벽은 원래 성벽담을 그대로 사용한 듯 고풍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주춧돌은 섬돌이고, 그 위로는 석축담벼락이었다. 골목 따라 20여분을 내려가니 혜화문이 나왔다. 90년대 초반에 복원된 지금의 혜화문은 원래 터에서 서북쪽으로 약 30m 옮겼다고 한다. 혜화문은 확장된 8차선 도로 중앙에 있어, 도로를 원 지반보다 약 5~6m 낮추어 조성하다보니 완전히 훼손돼 지금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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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성곽로다.

이제부터 도심 속을 누비는 트레킹이다. 도심 속 성곽의 흔적을 찾아 가야 한다. 혜화문을 나와 한성대 쪽으로 지하도로 건넜다. 성곽이 가물가물했다. 행인과 주민에게 물으니 방향이 엇갈렸다. 성곽이 연결됐음직한 방향을 추리했다. 한성대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대로 찾았다. 1㎞쯤 가니 성곽 탐방로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었다. 원래 좁은 길이었으나 차가 한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확장하고 주변 정비도 하고 있었다. 도심 속에서 성벽 따라 걸었다. 그 맛도 새로웠다. 산 속에서 숱하게 걸었지만 성벽 따라 걷기는 처음이었다.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125m)은 낙타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명인사들이 주거를 마련하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은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정상 부근엔 서민주택이 운집해 있다. 그나마 정상에 노인정과 낙산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서울 도성 안을 전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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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에 대한 안내판.

낙산지역은 1975년부터 1989년까지 성곽 복원사업이 이뤄져 거의 연결된 상태다. 도성의 남쪽 끝 흥인지문(동대문)과 북쪽 끝 혜화문이 낙산지역의 시작과 끝이다. 중간 중간에 암문과 쉼터가 마련돼 성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잠깐 쉬어갈 수 있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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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 안내판.

드디어 흥인지문이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흔적이 얼핏 보이는 듯했다. 흥인지문은 서울성곽에서 유일하게 성문 외부에 옹성을 둘렀다. 옹성은 반달 모양으로 북쪽만 개방하여 출입하도록 했고, 3면을 막아 취약한 성문의 방어력을 보강했다. 낙산 줄기가 내려온 방향으로 옹성이 열려 지형조건을 잘 이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문은 옹성 시설을 갖췄으면서도 임진왜란 때 왜적이 가장 먼저 입성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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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

동대문과 청계천 오간수교를 지나 동대문운동장 앞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저히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광희문을 찾아야 했다. 방향을 잡았다. 지하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내려가서 3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앞에 광희문이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광희문 앞에 섰다. 도성의 남소문인 광희문, 이곳이 그 옛날 수구문(水口門)과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렸다. 청계천이 흘러나오는 곳에 세워졌다 해서 수구문이라 불렸고,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 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으로 사용됐다고 해서 시구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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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뒤편 낙산 성곽은 지금 탐방로를 마련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다.

광희문에서 잠시 성벽 따라 탐방로가 있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전부 주택이다.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갔다. 30m쯤 내려가다 GS25 편의점에서 성벽이 있었던 방향, 남(오른)쪽으로 틀었다. 성곽은 없지만 주택에서 섬돌의 형체는 있었다. 섬돌의 형체를 따라 계속 갔다. 장충체육관 앞 도로가 나왔다. 바로 위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듯했다. 따라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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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성벽

서울성곽 안내판과 함께 다시 성벽이 이어졌다. 서울성곽의 시대별 축조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었다. 태조 땐 비교적 잔 석재로, 세종 땐 하부는 대형석재로 상부는 잔석재로, 숙종 때는 정방형으로 벽돌 쌓듯이 다소 경직된 분위기로 축성했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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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은 성벽이 거의 이어져 있다.

성을 따라 남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성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성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자유총연맹으로 내려갔다. 자칫 길을 잘못 들어 계속 가다보면 남산터널 방향으로 잘못 내려갈 수도 있다. 여기도 성곽은 없지만 자유총연맹 앞을 거쳐 남산으로 진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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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이젠 마지막 코스인 남산(265m)이다. 국립중앙극장을 거쳐 300m쯤 오르니 성곽탐방로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남산도 이미 정비가 된 상태였다. 남산산악회 옆으로 숲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은 순환로와 연결됐다. 순환로를 따라 오르기도 잠시, 마침내 남산 팔각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목멱산은 곧 도성의 남산인데, 인경산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남산은 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일반화된 이름이고, 고유명은 목멱산, 인경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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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안내판.

봉수대도 바로 옆에 있다. 태종 6년(1406) 12월부터 갑오개혁 때까지 500년간 국방의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어 성곽 따라 서울시 과학교육원과 맞은편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거쳐 백범광장을 지나 숭례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꼬박 이틀 걸렸다. 백두대간에서 뻗은 한북정맥의 보현봉으로부터 북악에 이른 산줄기는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는 응봉과 낙산을 솟구치고 동대문에 이른다. 또 서쪽으로는 우백호 인왕산을 거쳐 남대문의 낮은 구릉을 지나 남산을 솟구치며 동대문 쪽으로 나아간다. 그 둘레를 쌓은 서울성곽은 약 18㎞ 남짓 되는 역사적인 거리다. 그 길 따라 한양 600년의 역사를 떠올리며 숨결을 느껴보는 것만큼 좋은 트레킹도 없을 것 같다. 힘들지만 전혀 힘들지 않은 걷기였다.

첨부파일로 서울성곽 안내지도를 올렸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참고하세요.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6 Comments

  1. 김명근

    09.22,2009 at 8:01 오전

    정치하시는분들 인왕산 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대 드리워보고 뭐가 물고 올라올까 생각해보심이여하 민심이라는 월척이 낚일지도 모를일아닙니까 한번해보셔요   

  2. 자이너

    09.22,2009 at 9:16 오전

    서울이 많이 좋아지네요. 친절한 글을 읽으며 사진을 보니 실감이 납니다. 언젠가 꼭 그 길을 걷고 싶어집니다. 약도까지 첨부해 주셔서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해상도가 조금 떨어져서 잘 보이지 않는 군요. 색이 비교적 단조롭고 글씨가 많은 경우에는 jpg 보다는 gif 형식이 파일사이즈도 적으면서도 명료하게 나오는데… 그냥 참고말씀이고…그래도 감사히 다운받아 보관하겠습니다.   

  3. 같이가자

    09.22,2009 at 9:31 오전

    좋은글 잘보고 담아갑니다.    

  4. 박광신

    09.22,2009 at 10:52 오후

    서울 살면서
    성곽 한번 돌아보지 못한분들
    지침서 같아서 너무 귀한 정보 감사드려요.
    성북동 살때 성곽 주위서 놀던 생각이 나서
    한참을 자세히 봤어요.
    월탄 박종화선생님 자택모습도
    생각 나고요
    거기서 "용의 눈물"과 많은 다른 사극으로
    방송된 연속극으로
    그분의 작품이 원작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후 방송작가분들이
    사극을 많이 쓰시기도 했겠지만
    70~80년대만 해도…
    역사극은 월탄 선생님의 작품이
    많은걸로 알고 있어요.

    하여튼 좋은글 사진
    즐감 하고
    스크랩 해 갑니다 !

    마운팀님 !
    늘 건필 하소서~
       

  5. Lin xian gao

    04.29,2010 at 10:37 오전

    서울 이사온지 1 개월, 지난주엔 아차산과 용마산에 첫등정. 금주에 산을 찾다가 좋은글과, 사진을 보고 담아 갑니다,
    [참조] 일본에가니 사찰에 들어가기전에 사찰에 대한 역사를 기록해 걸어가면서 읽고 들어 갔을때 절에대한 내용을 알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홍보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6. 규선(奎禪)

    05.12,2010 at 4:52 오후

    124군 관련 소나무는 못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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