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하나 없는 명승 30호 죽령, 왜 죽령이라 불렀을까?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은 죽령옛길을 영주문화연구회 황재혁 사무국장과 함께 충북 단양 중앙고속도로 단양사무소 부근에서 출발했다.

오른쪽으로는 죽령계곡이다. 숲이 우거지고 험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물소리만 들렸다. 아래쪽으로 철도휴양소가 있다고 했다. 철도휴양소로 접근금지 시키느라 커다란 보호철망이 쳐졌다. 철망을 우회했다. 울창한 숲길이 계속 됐다. 발밑으로는 중앙고속도로 터널이다. 그러고 보니 중앙고속도로 터널위로 걸어가고 있다. 중앙선 철도와 중앙고속도로는 나란히 소백산을 관통해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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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문화연구회 황재혁 국장이 죽령고개에서 영주방향 죽령엣길로 내려가고 있다.

죽령이란 길 이름을 떠올리면 대나무가 많을 법하지만 어디에도 대나무는 볼 수 없다. 자생 대나무의 북방한계선도 원래 죽령 부근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휴전선을 넘어갔다고 한다.

죽령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에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죽죽 장군을 시켜 길을 개척했다고 해서 죽령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설과 지리적 생물학적으로 자생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이라고 해서 죽령이라고 불려졌다는 설이 있다. 퇴계 선생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에 죽계천에 왕대가 무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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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이 다소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조선시대 월천 조목선생은 죽령을 넘으며 ‘長林 無長林 竹嶺 無竹嶺 大抵 不在 人間幾林嶺(장림 무장림 죽령 무죽령 대저 부재 인간기림령, 장림에 숲이 자라지 않고 죽령에 대나무가 없는데, 실제로 없는 것들을 어찌 인간들이 장림과 죽령이라 했나)이라고 시를 지었다. 그 장림은 죽령옛길이 거의 끝나는 단양 방향에 있는 마을이다. 장소는 조금 차이가 있으나 어느 글이 사실인지 확인할 바는 없다.

영주로 넘어가는 단양의 마지막 마을인 용부원리에 이르렀다. 숲길도 끝나고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다. 원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종의 여관이다. 장림역에 딸린 원이 용부원이었다. 장림역에서 내려 죽령고개를 넘기 전에 용부원에서 하룻밤 묶고 간 지역이다. 과거엔 번창했을 법하지만 지금은 겨우 그 형체만 유지할 정도로 마을주민조차 보기 힘들다. 영주문화연구회에서 길목마다 장승 하나씩 전체 두개가 눈에 띄었다. 단양시에서 철거하라고 하면 다시 가져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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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꽤나 시원할 것 같은 넝클나무들이 죽령옛길을 덮고 있다.

보국사지터가 나왔다. ‘보국사지가 위치한 죽령은 신라의 북진정책에 있어 영남에서 원주와 한강이남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러한 중요 거점에 세워진 보국사지는 당시 교통과 관계되는 사찰로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사지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보국사지에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목과 팔이 부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문화재로 지정할 법도 하지만 다니는 사람이 없어 황량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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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옛길에 유달리 많은 일본잎갈나무, 일명 낙엽송. 낙엽송 이파리들이 길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시멘트길따라 계속 오르막이다. 몇 가구 되지 않은 마을은 드문드문 했다. 용부원1리, 2리, 3리까지 있다고 했다. 시멘트길 가는 중간에 죽령산신당이 나왔다. 최근에 지은 듯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맞은편에는 공단에서 생태공원을 한창 조성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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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죽 뻗은 낙엽송 숲이다.

이젠 단양 방향 죽령옛길의 끝이다. 나무계단위로 올라서니 5번국도와 연결됐다. 죽령휴게소와 각종 약초를 늘어놓은 죽령특산물판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5번국도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여기서부터는 영주입니다’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도로 옆에 붙어 있다. 바로 옆엔 죽령표지석도 있다. 한때는 매우 번성했을 것 같은 분위기다. 가을이라 그런지 조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해발 696m 죽령정상이다. 일부에서는 689m라고 표기하고 있으나 영주시에서 세워놓은 비석에 696m로 돼 있어 이에 따랐다. 영주로 넘어서자마자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장승공원이 있고, 바로 그 옆 죽령주막에선 죽령과 관련된 노래가 쉼 없이 떠들썩하게 흘러나왔다. 장승은 다양한 표정으로 객들을 반기는 듯했다. 주막에서 걸쭉한 막걸리를 한잔 했다. 정말 진한 맛이다. 안주인 안정자씨는 “우리 집은 소백산에서 채취한 약초로 손님이 원하는 메뉴는 다 해준다”며 “그 중에서도 산채비빕밥이 일미”라고 자랑했다. 주막이라는 이름답게 분위기도 운치 있게 초가집으로 꾸며놓았다. 과거 이 주변에 죽령길을 개척하다 지쳐 죽은 죽죽을 기리는 사당인 죽죽사(竹竹祠)가 있었다고 전하나 정확한 위치를 못 찾아 아직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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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군수로 있던 퇴계가 충청감사로 가던 그의 형 온계를 배웅하면서 쉬던 그 바위돌이라 한다.

이제부터 영주문화연구회와 영주시에서 조성한 죽령옛길의 출발지점이다. 국가문화재 명승 제30호로 지정된 길이다. 도솔봉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남쪽)으로 나 있다.

낙엽송 우거진 죽령옛길로 내려갔다. 가만히 보니 죽령옛길은 온통 낙엽송(일본잎갈나무) 천지다. 낙엽송의 솔잎 같은 이파리가 노란 낙엽으로 물들어 거리를 죽 덮고 있다. 길이 노란색으로 물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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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옛길 위쪽 5번 국도 중간 지점에서조금 위로 가면 신라시대 창건한 희방사가 있다.

죽죽 뻗은 나무들이 바람에 서로 몸을 비비는 듯했다. “끼익”하고 소리까지 냈다. 바람과 나무의 공생소리다. 노란 낙엽송이 깔린 무난한 오솔길의 연속이다. 가끔 넝쿨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여름이면 꽤나 시원할 것 같다. 물오리나무, 으름덩굴나무, 다래나무, 산뽕나무, 물푸레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산 어디가나 보이는 참나무도 예외 없이 모습을 보였다. 다양한 수종에 건강한 생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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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막이 있었다고 전하는 안내판.

한참 내려가는 길에 낙엽송 나무에 희한한 게 걸려 있다. ‘뽀뽀 쪽~♡. 입술과 입술로 사랑을 전해주세요. 푸짐하고 맛난 선물이 기다리고 있어요.’라고만 적혀 있다. 무슨 행사인지, 누가 장난으로 걸어놓았는지 알 길이 없다. ‘재미있을 것 같은 게임인데, 사람만 있으면야…’라는 생각을 하며 눈길을 돌렸다.

옛 주막거리터 이정표가 나왔다. 과거 객들이 지나가는 길에 들린 주막이다. 돌을 쌓은 집터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옛날 죽령옛길에 3개의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가장 작은 곳이 ‘주점’이라는 곳이고, 다음이 느터정 주막거리, 제일 큰 곳이 지금의 소백산역 근처에 무쇠다리 주막거리였다. 전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정표로 그 사연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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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옛길 끝지점에서 저 멀리소백산 능선이보인다..

즉령옛길엔 빠뜨릴 수 없는 게 퇴계 선생의 흔적이다. 풍기는 퇴계가 군수로 있었던 지역이다. 퇴계가 충청감사로 있는 그의 형 온계가 고향인 안동 예안을 다녀가는 길에 죽령계곡까지 와서 배웅했다고 전한다. 퇴계는 형제의 우애를 즐길 자리로 동, 서 두 대(臺)를 쌓았다. 동쪽을 잔운대, 서쪽을 촉령대라고 이름 붙였다. 형제가 마주앉아 물과 바위와 나무를 벗 삼아 회포를 풀었음직한 바위가 조그만 계곡 옆에 덩그러니 있다. 앉아 보기엔 날씨가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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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전국에서 장승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길을 가다가 장승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길 바로 옆에 먹음직스런 사과가 뻘겋게 달려 있다. 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하는 영주사과다. 일교차가 많이 나는 지역일수록 맛이 좋고 품질도 높다고 한다. 그래서 영주사과가 잘 팔린다는 황 국장의 말이다. 사과나무밭 바닥엔 은박지를 깔아놓았다. 은박지에서 반사된 햇빛이 사과 밑 부분을 비춰 전체가 고루 고운 색깔을 띠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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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옛길 끝지점이자 영주 출발지점이다.

죽령옛길 산길은 이제 끝이다. 조그만 주차장 같은 공간이 있다. 두 개의 장승이 험악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맞고 있다. 희방사역 →1.4㎞, 소백산 풍기온천 →2.9㎞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다.

때마침 혼자 걷는 중년의 여자(류희정, 52)와 마주쳤다. “죽령옛길 가는 길이 이 쪽으로 가면 되죠?”라고 먼저 물었다.

“예 맞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일산에서 왔습니다. 기차 타고 희방사역에서 내려 소수서원 갔다가 죽령옛길 둘러보고 가려고요.”

“어떻게 혼자 오셨어요?”

“애들 다 키우고 나이 들어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어서요.”

“…. 아, 그러셔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흙길과 시멘트길을 따라 희방사역까지 투덜투덜 내려왔다. 갑자기 중년의 여자가 말한 ‘혼자만의 여행’과 ‘길’에 대한 화두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한비야씨는 ‘여행은 길 위의 학교’라고 했다. 길에서 돈이 없어도 당당하게 사는 삶을 배우고, 한번 배우면 평생 쓸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그 소중한 걸 죽령옛길에서 그 중년의 여인을 통해 배웠다. 지금 돈이 없어도 당당하게 사는 삶을 배우는 그 ’길‘을 걷고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2 Comments

  1. 이학면

    12.17,2009 at 4:27 오후

    옛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네요… 그리고 죽령 고개에서 도솔봉으로 올라가면 키가 낮은 산죽이 즐비합니다…. 아마 그래서 죽령 ???    

  2. 박광신

    12.20,2009 at 9:13 오전

    정말 나이드신분들도
    갈수 있는 좋은 등산로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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