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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시원(始原) 알타이’를 찾아 10년째 누비는 고구려연대

‘한민족의 시원지(始原地), 알타이를 찾아서’ 10년째 알타이산맥과 평원을 헤매는 원정답사대가 있다. 아마추어라기엔 조금은 식견 있는 전문가가 무장해 있고, 전문가라고 하기엔 2%가 부족한 그런 모임이다. 아무튼 초보는 아니고 완전한 전문가도 아닌 그런 부류다.

엄익성 명지대 박물관 학예팀장,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춘식 한남대 교수, 전용호 플로린젠코스메틱스 대표, 권혁재 학연문화사 대표, 서선호씨, 오성룡 웹파이더 대표, 박용일 변호사,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이강현 현인코스메틱 대표, 백영희씨, 최수용 삼성증권 부장, 정병례 고암전각연구소 소장 등이 회원으로 있고, 사회문화연구 정진현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고구려연대’가 바로 그들이다. 실무는 권혁재 학연문화사 대표가 맡아서 꾸려간다. 이들 면면을 봐도 아마추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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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고구려연대 회원들이 처음으로 떠난 알타이답사 현장에서.

이들이 ‘한민족의 시원지’ 알타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구려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학회 성격을 띠며 고구려연구회를 발족,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때 후원인 성격으로 일반인들이 모여 뜻을 같이 했다. 학자들만의 딱딱한 모임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같이 모이니 분위기는 훨씬 자유롭고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던 1990년대 후반 어느 날 “우리도 고구려를 널리 알리자”며 ‘우리끼리의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 모임이 바로 고구려연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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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하린고린 교외에 있는 위그루 고성지서.

고구려연대 초기엔 고구려연구회 따라서 국내외 답사에 동행했다. 성격이 고구려이다 보니, 고구려 관련 산성부터 열심히 찾아다녔다. 남한에 있는 대표적인 고구려 산성은 파주와 연천에 걸쳐 있는 호로고루성, 아차산성, 온달산성과 왕검성, 포천 청성산 반월산성 등 중부지방에 있는 고구려 산성은 죄다 답사했다. 임진강 북쪽에 있는 호로고루산성은 고구려의 금동불상을 비롯한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어 주목받았던 곳이다. 특히 이 성은 말을 타고 바로 임진강을 도하할 수 있는 여울목에 자리 잡고 있어 평양~개성~한양을 잇는 최단거리상의 중요한 관문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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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발견한 러시아 낙타암각화.

산성답사엔 보통 8시간은 기본이다. 왕복으로 걸리는 시간이 아니고 순수 현장 답사시간만 그 정도다. 산성이다 보니 산에서 하루 종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매월 둘째 일요일을 정기 답사일로 정하고, 답사 후엔 토론회도 가지며 모임의 격조를 높여갔다.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점차 우리 민족의 원류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졌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영토는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원 대륙에 펼쳐져 있다. 이들은 “결국 고구려를 연구하고, 한민족을 연구하려면 알타이로 가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몇 년간의 논의와 준비과정을 거친 후 지난 2005년 알타이산맥으로 첫 해외답사를 떠났다. 산성을 둘러보고, 암각화를 탁본하고, 사진도 찍고, 고분도 분석하고 각자 자기 할 일에 매진했다. 한 번 가면 보통 20명 내외가 한 지역에서 전형적으로 ‘따로 또 같이’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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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알타이에 있는 사슴돌.

2005년에 시작된 해외답사는 점점 가속이 붙어 매년 알타이를 집중 탐구해갔다. 2006년엔 바이칼호수가 있는 알타이산맥, 2007년엔 몽골 알타이, 2008년엔 중국 알타이, 그리고 지난 2009년 7월엔 카자흐스탄에 있는 알타이 서쪽을 답사했다.

그 사이 새로운 멤버도 추가됐다. 박용일 변호사와 손호철 교수 등이 2006년부터 합류했다. 박용일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시절부터 산악활동을 했고,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매년 수차례 해외 트레킹을 다녀오는 등 산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박용일 변호사는 “내게 여행은 미지의 세계에서 무한과 자유를 느껴보고 영적 성숙을 위한 터전이다”고 할 정도다. 지난 6월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테에 갔을 땐 우뚝우뚝 솟은 암봉을 보고 암벽 등반본능이 살아나 몸을 근질거렸다고도 했다. 손호철 교수는 전문가 수준 버금가는 사진애호가다. 아름다운 자연을 렌즈에 담기 위해 이 팀에 합류한 경우다. 그는 렌즈 장비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몇 배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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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알타이에 있는 투르크 석인상.

이들이 답사를 떠나는 현지에서 고생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사서 고생하는’ 그 자체였다. 한번 가면 차로 이동하는 거리만 5,000㎞이상 됐다. 5,000㎞면 10일 동안 하루 500㎞를 다녀야 한다. 하루 종일 차를 타기도 했고, 하루 종일 답사하기도 했다. 40℃ 이상의 날씨에 온 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5~6시간씩 걷는 경우도 있었다. 낮에 그렇게 덥다가 또 새벽에 왜 그렇게도 추운지. 침낭 없이 가벼운 이불로 자다가 새벽에 너무 추워 잠을 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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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 있는 고구려 고선지 장군의 격전지였던 탈라스성.

지난 7월 카자흐스탄 알타이에 갔을 때 헬기로 산맥을 넘어갔다. 설산에서 강풍으로 눈발이 날리면서, 헬기가 바람에 못 이겨 기우뚱하는 위기의 순간을 맞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헬기 안에서 “죽을 때 죽더라도 사진은 남기자”며 모두가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는 진풍경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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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알타이에 있는 아프라시앞 궁전벽화의 고구려 사절도.

2002년엔 ‘누드 사건’도 있었다. 실크로드 답사를 위해 타클라마칸 사막 420㎞를 횡단하고 있을 때였다. 휴게소에서 라면 끊여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 순간 눈앞에 너무 멋진 모습의 모래언덕이 펼쳐졌다. 누군가 제안했다. “우리 전부 누드로 모래를 즐겨보자”고. 다행히 남자뿐이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옷을 벗어 젖혔다. 부끄러움도 순간 잊었다. 약 1시간가량 소리 지르며 원시의 상태로 돌아갔다. 덜렁거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보는 사람은 하나 없는 오직 광활한 사막과 하늘과 땅뿐이었다. 한민족의 원류를 찾아 떠난 길이 실제로 수만 년 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격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들이 한민족의 시조가 돼 있었다. 이 외에도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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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발견한 운석의 크기를 재고 있는 엄익성 박사.

답사지에서 처음엔 볼 일도 문제였다. 남녀가 쑥스러운 듯 서먹하며 차를 기준으로 한쪽은 남자가, 반대편은 여자가 사용했지만 나중엔 자연스럽게 알아서 사용하는 분위기가 됐다. 이른바 널린 게 천연화장실. 산에서 특별히 화장실 찾는 사람이 없듯이 광활한 평원과 알타이 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바위라도 하나 있으면 으레 바로 그 뒤나 옆은 남녀 불문 볼일 보는 장소였다.

깨끗이 씻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연지곤지 찍듯이 대충 눈과 일부만 쓱싹하는 게 세수였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다 모기가 들어와서 잡느라 천장을 쳤다. 갑자기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아 고스란히 덮어쓰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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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알타이에서 고구려가 새겨진 돌궐의 퀄테킨 비석 앞에서.

이런 고생을 거친 끝에 ‘한민족의 원류, 알타이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왕릉 98호 고분인 경주 천마총은 고구려와 백제의 형태와는 조금 다르며, 오히려 알타이 파지리크문화(BC 600~AD 300년)의 고분과 외형상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됐다. 시기적으로도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 알타이의 문화가 어떻게 고구려와 백제를 거치지 않고 신라로 흘러갈 수 있었을까? 모두들 새로운 화두를 가지게 됐다.

고구려의 산성 특징도 파악했다. 다른 나라의 산성보다 치성이 특히 발달했다는 것이다. 치성은 적이 성벽을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측면에서 적을 타격하도록 둥근 모양으로 돌출되게 만든 성이다. 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더 많은 화두를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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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북쪽, 러시아에 있는 우스트칸의 신석기시대 동굴유적.

이들의 알타이 유적답사 활동을 모은 사진전시회를 지난 해 11월25~30일까지 단국대 천안캠퍼스 율곡기념도서관에서 열었다. 그동안 땀의 흔적을 하나씩 모은 것이다. 암벽화, 석인상, 고분, 설산, 평원, 비석 등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다양한 장면들을 담았다.

이들이 국내외 답사를 떠난 지도 2010년이면 벌써 10년째다. 올해는 고구려 발해 유적을 찾아서 중국 동북아 지역으로 답사할 계획이다. 10년의 활동을 종합정리해서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

권혁재 학연문화사 대표는 “고구려연대는 구성원이 다양해서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 잘 어울리는 그런 모임입니다”며 “거친 만주 벌판을 누비던 고구려가 바로 한민족의 조상이었고 원류였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입증할 때까지 우리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고 각오를 다졌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4 Comments

  1. 별가람

    01.17,2010 at 9:47 오후

    뜻 깊고 좋은 모임이네요. 서길수 박사님도 그런 뜻 깊은 고구려 관련 일을 하셨더랬지요. 아무튼 기상이 크고 바랍직합니다. 알찬 성과 있기를 빌겠습니다.   

  2. 권영호

    01.18,2010 at 1:20 오후

    한민족 자체가 다양한 시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알타이 지역 또한 다양한 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한민족의 시원중 하나가 알타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정이 될수 있으나, 증명되지 않은 연구상태에서 이미 기정사실로 여기는 것은 비과학적이지 않을까요?   

  3. 보통사람9

    01.18,2010 at 3:19 오후

    유전자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종은 동남아에서 와서 그 일부가 만주를 거쳐 알타이로 갔다던데, 고구려연대에서 하시는 일은 그 반대를 가정하시고 하시는 것인지???   

  4. 조이독

    01.18,2010 at 4:08 오후

    알타이는 고구려의 기원이 아니라 흉노족 기원으로 흉노족인 신라의 기원이 되는 땅이다.. 고구려와 알타이의 연관은 크지 않다.. 그리고, 고구려의 후손은 발해고 고구려와 발해는 말갈,여진족이 주구성원으로 여진족, 금나라, 청나라의 조상국가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구려후손이 되려면 청나라와 동족국가란 소리고 청나라역사도 우리나라에 포함해야 한다.. 물론, 난 찬성이지만 이걸 받아들이지 않고 고구려후손이라고 하는 것은 여진족조상을 도둑질 것이다..   

  5. 조이독

    01.18,2010 at 4:18 오후

    한국인의 유전자 검사결과 60%가 북방계고 남방계는 30-40%로 알려져 있다. 즉 한반도에 먼저 자리잡고 살던 사람이 남방계이고 기원 전후부터 북방계가 한반도에 남하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개개인의 피에 대충 어림잡아서 북방계피 60%고 남방계피가 30-40%된다는 것이고 이것도 북쪽으로 갈수록 북방계피농도가 짙어진다..남해쪽은 일본 규슈와 비슷해지고..우리민족은 나쁜 말로 하면 잡종.. 좋은 말로 하면 개량종?   

  6. 조이독

    01.18,2010 at 4:33 오후

    지금 대한민국에 고구려사람들이 유입된 역사적증거는 거의 없다.. 신라가 삼국통일할때 대동감이남의 고구려땅을 통합했지만, 원래 대동강유역아래땅은 단군조선의 땅이라기 보다 단군 1대로 끝났고 중국 은나라 후손인 기자조선이 역사의 부분 차지했었고 기자조선은 연나라 유민인 위만에게 망했다. 그리고, 그후엔 한사군.. 그후에 북방에서 내려온 부여계인 고구려에 통합되었고 고구려가 망하면서 고구려지배층은 모두 당나라에 끌려갔고 서역에 배치되었다가 그곳 귀신이 되었다.즉, 고구려유민은 말갈과 여진족이 되었고 이들이 발해를 건국하고, 금나라, 청나라로 이어진 거다.. 신라왕족 궁예일파가 신라에 봉기하면서 후고구려라 칭하고 이들이 고려를 건국하고 고구려 후손이라 우긴 것은 북방영토 욕심때문이었지, 고구려 후손이기 때문 전혀 아니다..고구려 후손은 여진족이다..   

  7. 한국의 美

    01.18,2010 at 11:34 오후

    종은 단체입니다. 막연한 국수주의보다는 냉정한 사실 주의 역사 주의가 필요합니다.
    좋은 발견과 성과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8. 권영호

    01.19,2010 at 7:55 오전

    조이독씨가 좀 더 알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고구려 인구의 밀집지역이 대동강 유역이고 신라가 통일하며 대동강 라인까지 흡수했으므로 상당수 고구려 유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제의 지배층 역시 고구려와 같은 부여계 종족이며, 신라에도 안동지역에 고구려 군이 장기주둔하며 많은 군인들이 현지화 하였을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고구려 계통의 한민족 유전자 기여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9. 권영호

    01.19,2010 at 7:57 오전

    그리고 고구려를 여진족의 조상으로 보는것은 얼토당토 않습니다. 중국 사서의 동이전을 읽어보시면 알일입니다.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는 항상 같은 계통으로 묘사하고 읍루 숙신 말갈은 이와 전혀 다른 계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0. 디딤돌

    01.19,2010 at 11:54 오전

    1) 유전자 분석이 여러개 있겠지만 대부분 7~80 %가 북방계이고, 2~30%가 남방계로 나타나있고
    2) 고구려, 백제, 가야등은 다 부여계통이라고 보기에 고구려는 한민족으로 볼수밖에 없다.
    3) 알타이는 언어 분류가 주이고, 흉로는 민족이기에 알타이와 구분은 좀 어색한 것 같다.
    4) 한국어는 언어구분 상 흉로어의 초기에 분화됐다는게 대세로 3국이 거의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기에 동일 민족은 맞는 것 같다.
    5) 언어로 보아 흉로 초기에 분화되었다고 본다면 흉로의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6) 온돌문화가 고구려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한민족임은 또하나의 뚜렸한 증거가 된다.
    7) 한나라 이전의 문헌에도 기자조선 언급은 여러번 있섰지만 중국 출신이라는 기록은 하나도 없고, 한나라 이후 나온 것으로 보아 고조선을 멸하고 조선통치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기자를 중국출신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7) 신라의 김씨 왕조가 흉로족인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구성원 전체가 흉로라 보기는 어렵다.   

  11. 박정원

    01.19,2010 at 1:46 오후

    디딤돌님의 대단히 격조있는 해석에 존경을 표합니다. 종종 좋은 의견 부탁합니다.    

  12. 권영호

    01.19,2010 at 4:12 오후

    한국인들 사이에 알타이에 대한 어떤 맹목적 신비화가 있는데 그 출발은 람스테트의 알타이 어족설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가설이었는데 그의 만년에 스스로 부정한 죽은 학설입니다. 마치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가 비과학적임에도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리듯 람스테트 자신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알타이제어와 동계로 단정하고 심지어 한국인이란 인종을 알타이제어를 사용하는 민족과 동원시하고 있습니다만,   

  13. 권영호

    01.19,2010 at 4:23 오후

    한국어란 언어는 경주지역의 지배부족이 사용하던 말을 기초로 많은 한반도 제어의 요소를 흡수한 언어라고 봅니다. 즉 오늘의 한국인을 구성한 모든 고대의 인종집단이 원시한국어를 같이 사용한것은 아니라는 뜻이며 비록 언어는 경주어가 지배어로 수렴되었지만 인종적으로는 다른 계통 즉 부여계 혹은 삼한계가 우세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멕시코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멕시칸 모두가 스페인에서 온것이 아니고 다수는 마야인들이듯 말입니다. 따라서 한국어가 알타이어와 같은 계통이라는 람스테트의 죽은 이론에서 출발해서 한국인은 알타이에서 왔다는 결론을 내는 것은 인종과 언어를 혼동한 비약으로 봅니다. 부여어나 삼한어가 어떠하였는가는 그리 깊이 연구되지 않은걸로 알고있습니다만 물론 크게는 동계일 개연성이 높겠죠. 일본어, 아이누어등이 힌트가 될수도 있을듯.   

  14. LINK4U

    01.24,2010 at 6:57 오전

    갑자기 고향 산야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드네요.
    우리 민족의 고향.. 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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