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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국내산행서 시속 4㎞로 걷다 킬리만자로서 1㎞로 가다… 느림의 미학 배워 - 마운틴
국내산행서 시속 4㎞로 걷다 킬리만자로서 1㎞로 가다… 느림의 미학 배워

‘킬리만자로가 왜 탄자니아령이 됐을까’에 이어 계속됩니다.

다행히 이튿날 아침에 날씨는 개었다. 이날은 3,780m 높이의 호롬보산장(HOROMBO HUT)까지 가야 한다. 길은 순탄했다. 키 큰 교목들은 사라지고 관목과 초본식물들이 평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허브향을 내는 들국화 같은 식물들도 여기저기 만발했다. 등산로는 허브향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상큼한 분위기는 잠시 어찔한 순간을 느끼면서 신체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참 걷는 와중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면서 비틀했던 것이다. 순간 ‘아, 고소증세인가’ 싶어 GPS를 꺼내 고도를 확인하니 3,196m였다.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평소 습관대로 조금 빨리 걸은 결과였다. 그 때까지도 탄자니아 말인 뽈레뽈레(Pole Pole, 천천히 천천히)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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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m를 지나면 우리 들국화 비슷한 관목들이 초원에 널려 있다. 허브향을 내는 꽃들도 많다.

‘조심조심 걸어야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무사히 호롬보산장에 도착했다. 만다라에서 호롬보까지 GPS 거리로는 11.9㎞였다. 호롬보는 킬리만자로를 찾는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는 중간 기착지였다.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했고, 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음성다중 스트레오 방송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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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목들이 등산로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모시에서 출발할 때 잠시 만났던 미국인 여자(Meghan 메간)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남한인지 북한인지 다시 물었다. “북한 사람을 여기서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전혀 없다고 했다. “아마 이런 곳에서 북한 사람들이 보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젊은 여자가 이렇게 높은 산에 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Because there(거기 있기 때문에)” 서로 한바탕 웃고 성공적인 등산을 기원하며 각자 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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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힘든 곳을 오르느냐고 물으니 "Because there"라고 답한 미국 처자 메간. 사진 찍자고 하니 당돌하게 바로 어깨동무를 했다.그녀의 왼손이 나의 왼쪽 어깨가 올라있다.

셋째 날은 호롬보 주변에 있는 마웬지산장 중간쯤 자브라록(ZEBRA ROCK, 얼룩말 바위)까지 고도를 4,000m까지 높여 고도적응 시간을 가졌다. 등산 내내 비가 오락가락, 안개가 잔뜩 끼었다가 순식간에 개는 상황을 반복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우뚝 솟은 봉우리라 지나가는 구름이 쉬었다 가는지 일기변화가 더욱 심한 듯했다. 10㎞ 남짓 걸어 고도적응훈련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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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롬보 산장은 세계 각국에서 온 등산객들로 가득했다.

오후엔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저녁때쯤 뜻하지 않은 등산객 한명이 우리 숙소의 빈 자리를 찾았다. 거의 사색을 띤 얼굴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처음에 그 정도로 심각한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동료들이랑 같이 왔다가 고도적응 시간 없이 그대로 올랐다가 심한 구토와 두통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이키, 이게 아니구나’ 싶어 일단 자리에 눕히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침낭과 짐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였다. 따뜻한 침낭을 내주며 한숨 자라고 권했다. 약도 먹였다.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리며 잠을 청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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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통상대로 하면 건기인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비 오고 구름끼는 날이 잦았다.

넷째 날인 다음날 조금 안정을 되찾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안 사실은 그녀의 이름은 토모미 타카다(Tomomi Takata), 일본 도쿄 인근의 가나가와현 중학교 지리교사였다. 케냐의 국립공원에 올 기회가 있어 멀리서 바라 본 킬리만자로를 동경하고 있다가, <내셔널 지오그라피>를 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실제 경험한 뒤 이론과 실제를 전달하는 게 훨씬 교육적일 것 같아 킬리만자로를 찾게 됐다고 했다. 매우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칭찬했더니 더없이 고마워했다.

그녀는 동료를 기다리다 두바이로 갈 거라고 했다. 덕담을 주고받은 후 마지막 산장인 키보(KIBO HUT)로 향했다. 길은 순탄했고 주위는 황무지와 같은 대평원이었다. 만나는 등산객들은 서로 “헬로우” “잠보(탄자니아 인사말)” 등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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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4,000m 남짓 고도적응 훈련 중인 일행들.주변은 관목도 서서히 없어지고 있다.

이 때부터 ‘고도를 조심하라’는 말을 빼먹고 지리산 종주나 설악산 오색코스보다 순탄하다는 그 말만 기억에 담았던 죄값을 톡톡히 치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나아가다 서서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과 온몸이 쑤셔오는 고통을 겪었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수차례 반복했지만 낫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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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m 남짓 고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킬리만자로 세네시아. 이곳에서 있는 관목이다.

등산 중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맞았지만 풍광을 즐길 여력도 별로 없었다. 고도를 확인하니 4,092m. 마지막 식수 공급처인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에서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엔 아직 초본식물들로 가득했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길은 말 안장 같은 대평원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길 이름도 안장길(THE SADDLE)이라고 이정표를 붙여놓았다.

고도 4,326m를 확인하자 이젠 초본식물도 사라지고 황량한 들판의 연속이다. 중간에 조그만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화장실이다. 남자야 상관없지만 여자들에겐 요긴할 것 같았다. 하기야 여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대충 눈에 띄어도 상관없이 볼일을 보곤 했다. 보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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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2m에 있는 마지막 식수처인 라스트워터포인트. 식물의 변화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4,492m의 높이에 키보산장이 보이는 곳에 마지막 쉼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아예 누워버렸다. 하늘이 빙빙 돌았다. 포터가 주는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겨우 견뎌 1시간30분가량을 쉬었는데도 현재까지 온 거리를 시속으로 계산해보니 약 1.4㎞가 나왔다. ‘이러니 이런 고통을 받는 거구나’하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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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막 식수처를 지나면 그야말로 황량한 대평원이 계속된다. 쉽게 오르다 정말 큰코 다친다.

호롬보에서 키보산장까지 불과 10㎞정도 되는 거리를 거의 7시간 이상 걸려 겨우 도착했다. 너무 힘들었다. 문득 ‘왜 내가 산에 올라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 때문에? 산이 거기 있어서? 헤밍웨이의 존재와 죽음의 의미를 찾아서? 아님 헤밍웨이의 표범을 찾기 위해서? 온갖 상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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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지대라 비나 안개가 내리면 바로 지면에서 수증기나 아지랑이 같이 솔솔 피어 오른다.

다섯째 날 정상 등반 시도는 밤 12시로 예정돼 있다. 키보 도착 후 3시간가량 쉬면서 식사를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하지만 깨어질 것 같은 머리는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여기서 포기할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몸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숨 못 자고 일어날 때까지 심호흡을 시도했다. 밤 11시에 깼을 때 조금 나은 듯했다. 대충 누룽지를 챙겨 먹고 예정된 밤 12시에 킬리만자로 정상을 마침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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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산장인 키보. 키보산장 바로 뒤에 킬리만자로 최정상 봉우리인 눈 덮인키보가 있다.

심야에 등정을 시도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키보 정상에서 마웬지 봉우리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심야의 언 상태의 화산흙은 걷기에 편하다. 셋째로 정상의 기상은 오후로 갈수록 나빠질 가능성이 크고, 마지막으로 점심때쯤 늦지 않은 시간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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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맞은 편에 있는 또 다른 봉우리 마웬지. 키보와 달리 만년설이 녹은 게 눈에 확 띤다.

일행들은 일제히 헤드랜턴으로 컴컴한 킬리만자로의 밤길을 밝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은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려 한숨도 못 잔 관계로 잠이 쏟아졌다. 발걸음이 늦어지고 조금 휘청거리자 불안한 지 포터가 한명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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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밤 12시 헤드랜턴을 켜고 정상을 향해 일제히 출발했다.

일행과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길은 전날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전혀 달랐다. 경사도 급했고, 완전한 눈길이었다. 호흡은 더욱 가팔라졌다. 이제는 절실히 깨달았다. 처지더라도 절대 따라붙지 말자고. 심호흡을 계속했다. 정신 차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포터에게 자고 가자고 했다. 영하의 날씨에 컴컴한 킬리만자로 만년설 바로 아래서 잠시 쪼그려 앉아 얼굴을 팔에 기댔다. 5분이나 흘렀을까, 포터가 흔들어 깨웠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주저앉았지만 그때마다 포터는 깨웠다. 그는 너무 고마운 포터였다. 그의 이름은 리보(Libo). 혹시 킬리만자로를 찾는 등산객은 꼭 그를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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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올라가는 길에 유일한 휴식처인 한스마이어 동굴. 일행들이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한스 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밤이라 보이지도 않았고, 정신도 없어 지나칠 뻔 한 걸 포터 리보가 가르쳐 줘서 알았다. 등산객들의 쉼터다. 조그만 동굴에 50㎝가량 길이의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틈만 나면 잠을 청했다. 이보다 더한 고통도 없지 싶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었다. 오직 ‘포터 이 녀석이 너무 고맙다’라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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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 리보와 함께 길만스 정상에 섰다. 무척 고마운 친구였다. 여러모로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점점 동이 터고 날이 밝을 무렵 포터 리보 덕분에 마침내 길만스포인트에 올라섰다. ‘당신은 지금 5,681m의 길만스포인트에 있습니다’란 탄자니아 이정표가 반겼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외국인이 반갑게 맞이하더니 캔디 반쪽은 먹고 반쪽을 건넸다. 입에 넣고는 서로 성공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포옹으로 자축했다. 포터도 매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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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엔 빙하가 아직 조금은 남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 같았다.

최정상 우후루피크까지는 2㎞ 남짓. 길만스포인트 바로 맞은편에 있다. 중앙이 빙하가 있는 ‘킬리만자로의 눈(eye)’이다. 옆에서는 보이질 않고, 상공에서만 보일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만년설 위로 걷는 무난한 길이다.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 시원하게 느껴졌다. 잠은 여전했고, 더욱이 이젠 허기까지 왔다. 어느 덧 해는 바로 머리 위에 떠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팀에게 간식을 얻어 요기하고 몸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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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 위로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 일행들.

드디어 아프리카의 최정상 우후루피크에 우뚝 섰다. 길만스포인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정표에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지금 5895m의 우후루피크 정상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고봉이며,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세계 최정상 봉우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마주 친 외국인들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축하했다. 키보에서 킬리만자로의 정상 우후루 피크까지 약 6㎞를 무려 7시간이 걸렸다. 하산은 올랐던 길로 되돌아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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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standing으로 갈 수 있는 세계 최정상 킬리만자로 우후루피크에 우뚝 섰다.

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준다. 도전의식과 성취감, 아름다운 풍광. 느림의 미학, 인내 등등.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에게 무심코 가르쳐준다. 그게 바로 산이다. 특히 고산일수록 더욱 그렇다. 고산에서의 느림의 미학과 인내를 이번 등산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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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만년설로 하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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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목으로 난 등산로로 포터와 일행들이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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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목을 지나면 황량한 사막과 같은 high desert 또는 alpine desert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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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 일행들이 랜턴을 켜고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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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곧 일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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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 위로 아프리카의 해가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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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뒤로 하고 만년설 사이로 하산하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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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랑고 게이트로 내려와 포터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7 Comments

  1. 이철민

    02.05,2010 at 9:08 오후

    아, 멋있다. 글도 좋고 사진도 좋고…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엔 저도 데려가세요. 짱이네!
       

  2. ojima

    02.06,2010 at 9:59 오전

    모시에 일 때문에 수차례 갔었지만 그때마다 킬리만자로의 자태는 보여주지 않더니만 드디어 지난 11월 초 kilemakyaro mountain lodge에서 저녁은 환상적인 킬리만자로의 모습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저녁이었다.카메라의 셧더가 정신없이 눌러지고 있음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같은 급박함이 있었다. 앞으로 정확히 12년후에는 만년설이 사라질 것이라는 현지 신문을 보면서 바라보는기분이란….   

  3. 無影塔

    02.06,2010 at 10:17 오전

    처음보는 아름답고
    멋진 작품들 감사합니다.

    늘 건승하시고
    경인년 새해 다복하십시요. _()_   

  4. 풀잎피리

    02.06,2010 at 1:35 오후

    느림의 미학, 경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5. 디딤돌

    02.07,2010 at 6:58 오전

    ‘뽈레 뽈레’ 라는 소리를 들으면 ‘빨리 빨리’ 인 줄 알겠다. 천천히 천천히가 아니라…    

  6. 와암(臥岩)

    02.07,2010 at 10:27 오전

    힘드신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비행기로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설을 보았지요.
    ‘언젠가는~’이라는 늙은이의 꿈은 이젠 일장춘몽으로 끝이난 것 같답니다. ㅠㅠㅠ

    지난 해 ‘차마고도’여행을 함께 한 한 지인의 아드님이 비슷한 시기에 이 산 등행을 했더군요.
    연세대 경영대학원생이었는데,
    ‘무척 고생했다’는 글 읽은 적 있습니다.

    티베트의 ‘아리’지구에서 신강성을 넘는 ‘계산대판’이라는 고개가 해발 6.700m라 했으니, 킬리만자로를 오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이곳을 차량으로 지나치는 것으로 대리만족할까 합니다. ^^*

    추천 올립니다.   

  7. 이재진

    02.07,2010 at 11:48 오후

    정말 멋집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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