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가을 단풍으로 전국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피아골과 뱀사골의 겨울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신년벽두부터 전국을 하얗게 덮은 서설은 아직 산을 덮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이 하얀 도화지 같이 변해 버렸다. 예년에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양을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놓았다. 분명 서설(瑞雪)이리라. 겨울 산의 진미는 눈 덮인 등산로를 걸으며 다른 계절에 느끼지 못했던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다.
삼도봉 조금 못 미쳐서 설경을 배경으로.
그 풍광을 감상하기 위해 가보자. 지리산에 내린 폭설은 이제 얼어붙은 상태다. 계곡 바위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 눈도 얼음이 돼 있다. 바람이 불면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살짝 날아간 간 눈들이 이제 얼음이 돼 바람이 불어도 꿈쩍 않는다.
반야봉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피아골 등산로 양쪽은 불무장등(오른쪽, 동쪽)과 왕시리봉(왼쪽, 서쪽)이 좌우로 감싸고 있다. 욍시리봉은 노고단에서, 불무장등은 삼도봉에서 뻗어내려온 능선이다. 그 사이로 난 계곡이 바로 피아골이다. 자연휴식년제로 통제되고 있는 두 계곡 사이로 난 능선은 자연히 원시림의 모습을 그대로 띨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산림생태계 조사를 위해 지정한 서울대 남부학술림이 등산로 바로 위쪽을 통제하고 있어 식생이 다양하고 건강하게 보존되어 있다. 곰이 이곳에 한번씩 출몰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들도 겨울잠을 자고 있겠지만.
마침 얼지 않은 피아골 삼홍소를 배경으로.
피아골은 이름에서부터 뭔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피아골의 이름은 바로 그 아래 등산 출입구인 직전마을과 관련 있다. 직(稷)은 오곡 중에 하나인 기장 혹은 피를 말하며, 직전(稷田)은 그 피를 일군 밭을 뜻한다. 피는 산지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뎌 이 외진 곳에서 사람들이 피밭을 일궈 주식으로 삼았던 데서 유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피밭골’이 부르기 쉽게 피아골로 변이된 것이다.
피아골은 사계절 내내 절경이다. 봄이면 진달래, 여름이면 원시림의 짙은 녹음, 가을이면 단풍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겨울 설경도 빼놓을 수 없다. 계곡은 온통 눈으로 덮여 어디가 계곡인지 등산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눈꽃이 완전히 덮인 지리산 종주길을 걸어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골의 명소 삼홍소(三紅沼)에 도달했다. 가을의 그 아름다운 ‘색(色)의 향연’를 벌였던 삼홍소다. 말 그래도 세 가지 붉은 것을 말한다. 첫째는 짙은 단풍으로 산이 붉게 탄다고 해서 산홍(山紅)이요, 둘째 붉은 단풍이 물에 비치어 물까지 붉게 물드는 수홍(水紅)이요, 셋째는 산홍과 수홍으로 사람의 얼굴마저 붉어 보이는 인홍(人紅)이 바로 그것이다.
피아골 단풍의 현란한 풍광에 감탄한 남명 조식 선생이 글을 한편 남겼다.
흰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 가을바람에 물든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 천공이 나를 위하여 뫼빛을 꾸몄으니 /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감탄이 절로 넘쳐흐르는 시이며, 삼홍이라는 말도 남명 선생의 시에서 유래했다. 지리산 10경 중 2경이 피아골 단풍이다. 그만큼 아름답다.
등산객 발자국이 몇 개 없는 종주능선길을 눈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색의 축제를 성대히 끝낸 지금, 피아골은 또 다른 볼거리인 겨울 설경을 뽐내고 있다. 눈 덮인 피아골 바위틈 사이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만 들릴 뿐 어디서 물이 흐르는 지 볼 수가 없다. 간혹 모습을 살짝 보여주고 다시 감추곤 한다. 흐르는 물을 이렇게 귀하고 드물게 보기도 새삼스럽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널찍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하산한 피아골 산장지기 함태식씨가 거주 당시 피아골 산신제를 지내던 바위”라고 했다.
피아골 계곡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피아골의 계곡은 계속 됐다. 동물 흔적조차 없다. 등산로 따라 등산객 발자국만 몇 개 있을 뿐이다. 남매폭포, 와폭 등 크고 작은 폭포들도 눈과 얼음에 덮여 지금은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아홉 개의 계단처럼 굽이굽이 내려오는 구계포계곡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설경보고 마음껏 뽐내보라는 듯 숨죽이고 있는 듯하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 쌓인 겨울의 피아골은 상당히 추웠다. 장갑을 꼈지만 손이 얼어 글을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볼펜도 잘 나오질 않았다. 겨울은 겨울이다. 그것도 지리산의 겨울이다.
큰나무들은 눈꽃을 피웠지만관목들은 완전히 눈에 파묻혀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피아골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한 지 1시간 40분 만에 피아골대피소에 도착했다. 직전마을에서 4㎞ 거리다. 탐방지원센터에서는 6㎞ 된다. 피아골대피소는 현재 지리산대피소 중에서 가장 낙후된 시설에 속한다. 내부 난방이 안돼 이용객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용료도 1박에 5,000원으로 다른 대피소보다 싸다. 대피소 벽에 붙은 온도계를 슬쩍 보니 바로 붙은 옆 텐트에서 장작난로를 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하 10℃를 가리키고 있다. 피아골대피소에서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일출과 일몰을 기준으로 등산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오전 8시, 오후 4시 전후해서 등산 출입문을 열고 닫는다.
피아골삼거리로 올라서자마자 등산로는 눈으로 완전히 덮여 있다.
대피소 오른(동)쪽 등산로 입구는 철조망으로 만든 여닫이문이었다. 문 열면 주능선으로 연결되는 약 2㎞의 좁은 등산로가 계속된다. 철망 여닫이문 바로 뒤에는 바위에 지리산 등산로를 약식으로 그려놓았다. 이것도 눈이 덮고 있어 반쯤 보였다. 누구 작품인지 몰라도 그럴 듯했다.
여기서 주능선인 피아골 삼거리까지는 불과 2㎞밖에 안 되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피아골의 계곡 설경을 즐겼다면 이제부터 거친 호흡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다. 가파른 등산로 좌우로는 신갈나무와 졸참나무 등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눈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욱이 눈 덮인 등산로엔 발자국 몇 개 없는 상태였다.
노루목에서 주변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힘들여 주능선으로 올라섰다. 사방 천지가 눈으로 펼쳐졌다. 한마디로 ‘눈의 천국’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경>이 떠올랐다. 설경과 죽음과 사랑과 여행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그 스스로 자살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 소설 속의 설경과 지리산의 설경이 오버랩 됐다. 설경은 언제 봐도 감동이지만 지리산의 설경은 더더욱 그렇다.
주능선의 서북쪽으로는 바람의 영향인지 그나마 눈이 조금 덜 쌓였다. 나무에 쌓인 눈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 나무들은 눈꽃이 아니고 솜방망이 같은 눈우모복을 덮어쓰고 있는 듯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등산로를러셀하고 있다.
이젠 임걸령이다. 동서로 확 트여 더운 날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등산로 10m 아래엔 옹달샘도 있어 안성맞춤이다. 혹시나 싶어 임걸령샘물을 마시러 갔다. 사방 천지가 눈으로 덮였고, 영야 10℃가 훨씬 떨어진 날씨에, 바로 그 옆엔 고드름까지 있는데도 샘물이 얼지도 않고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런 물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옆에 있는 두레박에 받아 마셨다. 의외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참, 신기한 샘이다. 그 추운 영하의 겨울에 지리산 종주능선에서 솟는 샘물을 마시는 감격은 설경감상에 덤을 얻어가는 기분이었다.
머리보다 두 배가 더 되는 솔잎의 고드름.
뱀사골로 가려면 노루목, 삼도봉, 화개재를 거쳐야 한다. 능선길은 정말 장관이다. 솔잎 끝에서 50㎝정도 되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은 마치 한겨울 처마 밑을 연상케 했다. 눈솜뭉치들은 모든 나뭇가지에 걸려 바람이 불 때마다 눈발을 조금씩 날렸다.
더운 날 쉬기 좋은 임걸령과 달리 노루가 물을 먹기 위해 고개 숙인 것 같은 노루목은 추운 날 바람을 막아 쉬기 좋은 곳이다. 노루목에서 잠시 멈췄다. 정말 바람이 전혀 없다. 서북쪽으로 반야봉을 바라봤다. 온통 눈 천지다. 등산객 발자국도 전혀 없다. 어느 정도인지 발걸음을 옮겼다. 10m쯤 가자 그나마 몇 개 있던 발자국은 완전히 없어지고 등산로가 어디로 가는지도 종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갑자기 허벅지 위로까지 눈이 올라왔다.
오른쪽으로는 반양봉, 왼쪽은 노고단을 배경으로 계속 종주를 하고 있다.
그대로 종주능선길로 직진했다. 삼도봉 조금 못 미쳐 완전히 눈에 덮인 묘가 하나 있었다. “누구 묘인지는 모르지만 소금장수묘라고 부르고 있다”고 전한다. 화개재가 저 앞에 있으니 그럴 듯했다.
삼도봉은 한때 낫의 날을 닮았다고 해서 낫날봉이라 부르다, 부르기 편하게 날라리봉 등으로 불리다 공단 청설(1987년)이후 공단에서 삼개도의 경계선이라고 해서 삼도봉이라 개칭, 지금에 이르고 있다. 디카로 사진 찍느라 장갑을 벗으면 바로 어는 것 같다. 디카 밧데리도 날씨가 추워 어제 충전한 게 벌써 방전됐다. 삼도봉에서는 저 멀리 천왕봉과 바로 그 옆의 중봉, 천왕봉 앞에 있는 토끼봉, 옆에는 반야봉 등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은 뱀사골 간장소.
화개재로 내려가는 520여개 나무계단으로 접어들었다. 연하천에서 노고단 가는 방향에 있는 계단과 견줄 정도로 악명 높은 계단이다. 특히 오르는 등산객들에게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설국(雪國)의 지리산’이다. 설경을 내려다보게 만드는 전망 좋은 계단이다. 내려온 등산로에도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 쌓인 눈이 안쪽 다리 허벅지까지 닿을 정도였다.
눈 덮인 뱀사골 겨울의 전경. 사진 조선영상미디어 이상선 위원
마침내 뱀사골로 접어드는 화개재삼거리에 도착했다. ‘지리산 능선에 있었던 장터 중 하나로,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배나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 하던 장소였습니다.’라고 지리산북부사무소에서 설치한 안내판에서 설명하고 있다.
200여m가량 내려와 지금은 뱀사골탐방지원센터로 바뀐 이전의 뱀사골대피소 자리에서 요기를 했다. 뱀사골 방향은 등산객이 거의 다니지 않아 발자국 흔적이 아예 없는 등산로가 많았다. 평소의 뱀사골 등산로는 너덜지역이었으나 이날 눈으로 덮인 등산로에선 그냥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뱀사골은 특히 소(沼)로 유명한 계곡이다. 소가 많으면 자연히 물도 많다는 얘기다. 지리산에서 가장 물이 맑은 지역으로 꼽힌다. 뱀사골과 계곡 아래에 있는 반선마을과의 관계는 피아골이 직전마을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그 옛날 소가 많은 뱀사골에서 매년 도량 높은 스님 한분을 선발해 정성껏 기도하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했다. 어느 날 그 절에 서산대사가 방문하여 그 얘기를 듣게 됐다. 서산대사는 선발된 스님의 장삼의 명주에 몰래 독을 묻혔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용이 못된 이무기가 한 마리 죽어있었다. 법 높은 스님은 이무기가 먹다 서산대사가 묻혀놓은 독에 중독돼 죽은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 이 골짜기를 뱀이 죽었다고 해서 뱀사골이라 불렀고, 스님의 넋을 기려 아랫마을을 반선(半仙)마을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뱀사골에 있는 큰 소만 하더라도 간장소, 병풍소, 병소, 뱀소, 탁용소, 요룡소 등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이름 없는 것들도 많다.
눈 내린 뱀사골은 설경, 그 자체만으로 신선세계 같이 보였다. 아랫마을이 반선이라면 지리산은 신선마을이다. 계곡 설경은 피아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뱀사골에는 계곡 위 백색의 눈 위로 유독 동물 자국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무슨 동물 발자국인지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멧돼지, 고라니 등과 이름 모를 동물들의 흔적이란다.
하산길에 첫 소인 간장소가 나왔다. 간장소는 3가지 유래를 가지고 있다. 물색깔이 간장 같다고 해서 이름 붙였다는 설과 화개재에서 소금을 사서 가다가 너무 무거워 이곳에 소금을 빠트렸다는 설, 원래 물이 너무 짜서 그렇다는 설 등이다. 원래 짠물이라 그런지 이곳에만 물이 얼지 않고 있다. 고여 있는 물도 실제로 간장같이 진했다.
이어 1,300여 년 전 당시 이곳에 있었던 송림사 정진스님이 불자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祭)를 올렸다는 제승대, 소의 모양이 병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병소, 큰 뱀이 목욕을 한 후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 암반 위에 떨어져 100여m나 되는 자국이 생겨나고 그 자국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의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은 탁용소 등을 거쳐 와운교 삼거리에 다다랐다. 지금은 뱀사골의 용과 뱀을 닮았다는 수많은 소들도 설경에 빠져 전혀 확인할 수가 없다.
와운삼거리는 계곡 위에서 와운체험마을로 올라가는 길과 뱀사골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로 나눠진다. 당연히 하산길이다. 10m쯤 아래에 와운교 아래 와운마을 방향으로 정말 용머리 같은 바위가 우뚝 서 있다. 바위 모습이 마치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요룡대(搖龍臺)라 붙였다고 전한다.
직전마을~피아골~피아골삼거리~임걸령~화개재~뱀사골~반선마을까지의 약 20㎞산행을 좀처럼 보기 힘든 설경의 지리산과 함께 감상하고 종주까지 끝내니, 올 여름을 무사히 날 것 같다.
한국의 美
02.21,2010 at 7:49 오전
역시 겨울 설산이 멋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고 싶어지네요.
LINK4U
02.23,2010 at 10:46 오후
멋진 여행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