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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히말라야… 네팔 화가 11명 전시회 가져


보기 드문 네팔 히말라야 그림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네팔 직항로 개설 이후 히말라야 트레킹족의 증가로 히말라야 설산에 대한 다양한 사진은 전문작가들의 전시회를 통해 여러 차례 선을 보였으나 그림으로는 손에 꼽을 정도여서 이색적이었다.

유화로 그린 알록 구룽(Alok Gurung)의 ‘구농족의 건강 미인’ ‘마낭의 전경’, 잔마니 레이(Gyanmani Ray)의 ‘푸우의 막장 히말’, 이슈 람 카이주(A. R. Khayu)의 ‘푸우콜라의 하늘벽’(사진 참조) 등 11명의 네팔 화가들이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그린 10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장면의 그림들을 관객들에게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갔다. 그 속엔 히말라야 설경이 있었고, 그들의 삶의 모습이 녹아 있었고, 천길 낭떠러지 같은 산이 있었고, 히말라야의 구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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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 구룽(Alok Gurung)의 ‘구농족의 건강 미인’

이번 네팔 그림 전시회는 안암산우회의 원용덕(72) 회원이 그동안 보관했던 그림과 후원한 네팔 작가들의 그림을 모아 지난 1월27~2월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제1실에서 개최했다. 서울전을 마친 뒤 네팔에서 오는 3~4월쯤 개최할 예정.

원씨는 이번 전시회를 ‘드림 프로젝트’로 이름 붙였다. 드림 프로젝트는 2008년 4월 네팔 화가들에게 좀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40여일 간 하도록 후원하면서 작품 활동을 할 기회를 제공했다. 모든 경비는 원씨가 지원하고, 그들이 그린 그림을 이번에 전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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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그림 전시회를 연 원용덕씨.

원씨가 네팔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순전히 산 때문이다. 그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건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고려대 안암산우회 창립 멤버인 원씨는 고교 졸업시절인 1956년과 1957년 겨울을 용문산에서 보냈다. 공부하다 한번씩 쳐다본 용문산의 능선과 계곡은 그를 산에 홀딱 반하게 했다. 법대에 진학한 그는 산악반에 들었으나 그해 7월에 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바로 입대했다. 제대 후 대학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교수, 교직원, 사동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안암산우회를 창립했다. 당시 주축 멤버가 현승종 고려대 이사장, 차낙훈 전 고려대 총장, 한국 과학철학의 선구자격인 박희성 선생 등이었다.


이들과 함께 산에 다니면서 그가 가진 ‘끼’를 재발견했다. 그림에 대한 소질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 발휘했지만 그동안 공부와 사회생활로 잊고 지낸 터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어느 선배가 “젊은 작가 그림에 관심을 가져봐라. 혹시 나중에 돈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아차, 내가 그림을 잊고 살았구나’하고 깨치는 계기가 됐다. 돈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원래의 관심을 살리고 안목을 넓히는 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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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 구룽(Alok Gurung)의 ‘마낭의 전경’

그는 이후부터 전시관이나 그림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면 구매했다. ‘작품을 사는 게 가난한 작가들을 돕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작품을 먼저 보고 난 뒤 나중에 화가를 소개받아 만났다. 작품을 사 주는 게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 작가들이 많았다. 그렇게 모은 작품이 지금까지 총 1,000여점 가량 된다. 재산 가치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치를 인정받아 고가에 팔리는 작품도 있다. 이번 전시회 개최 비용도 고가의 작품을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개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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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네팔 그림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그가 산에 다니면서 인연을 맺은 화가와 그림들은 점점 쌓여갔고, 급기야 국내 산에서 해외 산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1998년부터 해외 트레킹을 다니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맺은 화가와 그림에 대한 인연의 끈은 네팔에 가서도 변하지 않았다. 길거리 화가에서부터 유망한 화가까지 마음에 들면 그림을 구매했다. 그들도 고마워했다.

원씨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번 맺은 인연으로 가난한 작가에게 다양한 그림으로 더욱 많은 작품 활동을 할 기회를 계속적으로 제공했다. 그가 사 들인 그림을 팔아서 그들을 돕기도 하고, 그들이 그린 그림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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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기획한 네팔 그림전은 그가 가진 그림에 대한 ‘끼’와 네팔 화가들의 이름을 알릴 장을 동시에 발휘할 좋은 기회였다. 그는 그가 가진 그림을 팔아 그와 인연을 맺은 네팔 화가 11명에게 40일간의 트레킹 기회를 제공했다. 그의 그림에 대한 끼는 여기서 발휘됐다. 네팔 사람들이 그린 히말라야 그림과 국내 화가들이 그린 그림은 질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다르다는 걸 느꼈다. 다르게 표현하면, 제주도 출신 화가들이 그린 제주도 그림과 외국 화가가 그린 그림은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마디로 하면 그림에 녹아있는 ‘혼의 차이’였다. 기교는 외국 화가가 뛰어날지 몰라도 본인이 사는 지역, 즉 제주도와 히말라야에 대한 속살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웬만한 안목이 없으면 느낄 수 없는 대목이다.


젊고 유망한 11명의 네팔 화가들은 원씨의 ‘드림 프로젝트’를 통해 실력을 발휘하고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그들이 사는 지역, 히말라야를 그림으로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화폭에 담았다. 원씨도 그들에게 “히말라야는 당신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서양화가 흉내 내지 말고, 너희 네들의 방식대로 소신껏 그려봐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마치 히말라야 자연을 옆에서 보는 것 같은 유화 그림들이 쏟아졌다. 한국화 같은 그림이 많아 원씨도 그냥 두기엔 아까워 이번에 한국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 그림을 보고 갔다.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신선한 느낌과 감각을 받았다.” “마치 히말라야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히말라야 자연사 박물관에 와있는 듯했다.”

미술 전문가들도 이 그림들을 보고 “한 폭에 평균 500만원 정도 매기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더 나가는 그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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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원씨는 “돈 욕심은 전혀 없다. 히말라야의 자연과 그 속에 살고 있는 화가들을 그냥 두기엔 아까워 국내에 소개하고 싶어서 전시회를 기획했을 뿐”이라며 “만약 그들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산악미술 전용 전시관이 생긴다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모든 작품들을 기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흩어지면 아까운 네팔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 두고두고 보도록 하겠다는 거다.

원씨는 이번 네팔 그림전을 시작으로 다음엔 그들의 문화를 그리고, 그 다음엔 건축과 꽃, 사람 등 다양한 기획을 시도할 계획이다. 이번엔 전부 자연을 담았지만 다음 전시 땐 꽃, 인물, 사람 등 각자의 전공을 살릴 예정이다. 이번에 참가한 네팔 화가 중엔 독일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하는 실력파도 있다고 귀띔했다.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씩 네팔에 트레킹을 다녀온다는 원씨는 세계적인 산악인 한왕용과 히말라야 클린마운틴의 주 멤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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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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