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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계곡 끼고 능선·유적 두루 즐기는 북한산 진관사~사모바위~삼천사~진관사 원점회귀 산행 - 마운틴
계곡 끼고 능선·유적 두루 즐기는 북한산 진관사~사모바위~삼천사~진관사 원점회귀 산행

등산 수칙 중에 ‘겨울엔 능선 타고 여름엔 계곡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겨울엔 눈 쌓인 계곡을 피하고, 여름엔 햇빛 내리쬐는 능선을 피해 시원한 계곡으로 가라는 것이다. 북한산의 많은 등산로 중에 진관사에서 출발해서 비봉~사모바위~삼천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딱 그에 해당한다. 이 코스는 응봉능선을 끼고 양쪽 계곡으로 원점회귀 할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진관사와 삼천사를 둘러볼 수도 있다. 특히 진관사는 최근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백초월 스님이 간직한 태극기와 유품이 발견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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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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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연혁

진관사는 신라 진덕왕 때 원효대사가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면서 신혈사(神穴寺)로 이름붙인 것으로 전하나,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이를 진관사라 개칭했다고 한다. 이름이 바뀌었을 때에는 그에 따른 사연도 있기 마련이다.

고려 현종은 즉위하기 전 목종에게 왕자가 없자 태조의 아들 욱(郁)의 직손으로 왕위 계승자 대량원군으로 있었다. 그런데 경종의 태후였던 천추태후가 그를 없애고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옹립하고자 호시탐탐 죽일 틈을 엿보았다. 이에 진관대사가 신혈사 수미단 아래 지하굴을 마련하여 대량원군을 숨겨주어 천추태후가 보낸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에 3년 뒤 개경에 돌아와 목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현종은 1011년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진관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부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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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을 중심으로 진관사계곡과 삼천사계곡으로 나뉜 계곡이다.

진관사는 왕을 구한 사찰로서 이름을 드높여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꼽힌다. 일제시대에는 백초월 스님이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덧그린 매우 가치 있는 독립운동 유물이 발견됐다. 백초월 스님은 만해 한용운 선생과 또 다른 방식으로 일제에 강한 저항의식을 표출한 독립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이기도 한 진관사는 또한 매년 수륙제를 지내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죽어간 고려왕실의 영혼을 기리고, 불안정한 국민정서의 동요를 막아 조선왕실의 안정을 꾀할 목적으로 태조 6년(1397년)에 진관사에 59칸의 수륙사를 건립하고 매년 수륙제를 거행토록 했다. 수륙제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餓鬼)들에게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풀어 그들을 구제하는 불교의식이다. 매 윤년·윤달에 크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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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위로는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아있고 그 위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절을 한바퀴 둘러보고 절 옆에 있는 계곡을 따라 북한산 주능선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나 있다. 그 길 따라 주능선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봄소식을 재촉하는 듯했다. 추운 듯 춥지 않고 춥지 않은 듯 추운 그런 날씨였다. 계곡 따라 올라가는 길은 등산객도 별로 없어 호젓했다. 가끔씩 나오는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등산로는 초행자를 다소 힘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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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파른 등산로를 철밧줄을 잡고 오르고 있다.

진관사에서 출발한 지 어느 덧 1시간 가까이 지나자 진관사계곡도 이젠 끝이다. 계속 오르막길만 걸어서 그런지 숨도 찼다. 마지막 밧줄을 잡고 올라서니 조그만 능선이다. 갑자기 하늘이 가까워진 듯했고 이곳에선 햇빛이 그대로 비쳤다. 모처럼 청명한 날씨다. 구름도 별로 없다.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바로 옆 오른(남서)쪽 방향으로 향로봉이 우뚝 솟아 위엄을 드러냈다. 주변에 다른 높은 봉우리가 조망이 안돼 더욱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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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있는 이름없는 봉우리가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 조금은 인수봉과 닮았다.

약 600m 가량 지나 북한산 주능선에 도착했다. 등산객들이 부쩍 눈에 띈다. 역시 북한산이다. 평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이정표에는 ‘←1.2㎞ 향로봉, 대남문 1.6㎞ →’라고 적혀 있다. 일단 대남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바로 앞에는 비봉이다.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그 비봉이다. 1,400여 년 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 진흥왕이 북한산과 한강 일대를 점령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신라의 비석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역사적인 유물이다. 진흥왕순수비가 우리나라 국보 제3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그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 일대는 사적 제228호로 지정돼 일반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고, 현재 있는 비석은 복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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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은 출입금지구역이다. 정상에 진흥왕순수비 복제비가 어렴풋이 보인다.

비봉에 오르면 동쪽과 북쪽으로 북한산의 준령이 굽이쳐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의 도도한 물줄기가 서해바다로 향해 흐르고, 서쪽으로는 한강 하구와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올라서 보면 삼국통일의 대망을 가질만한 그런 봉우리임을 직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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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로는 북한산의 준령들이 굽이쳐 있다.

비봉에서 대남문 방향 주능선으로 500m도 채 못 가서 눈길을 끄는 바위가 우뚝 서 있다. 떨어질 듯 누군가 기다리는 듯한 그런 모습의 바위가 항상 등산객을 맞고 있다. 바로 사모바위다. 사모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청년이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다. 어떤 여인이기에 한 청년을 저렇게 숱한 세월 기다리게 하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행복한 여인과 끈기의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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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바위와 그 전설을 전하는 안내판.

올라온 진관사계곡과 내려갈 삼천사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응봉능선 봉우리에 올라섰다. 능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쫙 갈라진 모습이 미끈하게 보인다. 저 멀리 동북쪽으로는 삼각산으로 유래한 백운대, 만경대 등의 봉우리가 보인다. 그 주변으로는 염초봉, 노적봉 등 여러 봉우리가 마치 키 경쟁이라도 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다시 한번 느끼는 명산 북한산이다.

대남문 방향으로 조금 더 가다 승가봉 조금 못 미쳐 삼천사계곡으로 하산이다. 한적한 등산로의 연속이다. 이곳은 계곡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별로 없다. 아마 곳곳에 햇빛이 잘 드는가보다.

커다란 참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천연쉼터가 나왔다. 누가 조성한 것도 아닌데 널찍한 바위와 공간이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조용한 숲속이다. 마음이 이미 봄의 문턱에 들어서서 그런지 숲속에서도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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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로 내려오는 등산로 중앙에 쉬기 좋은 장소가 한 곳 있다.

삼천사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문득 다시 들렸다.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마치 봄이 흐르는 소리 같았다. 물은 아직 차지만 얼었던 계곡은 벌써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삼천사가 가까이 오자 누군가 계곡에 조그만 돌탑들을 무수히 쌓아 놓았다. 굉장한 정성과 손길로 한두 사람이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이것도 자연을 즐기는 한 요소이다.

이젠 삼천사에 도착했다. 신라 문무왕 1년(661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하였다 하여 사찰이름도 그렇게 지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한 명망 깊은 절이다. 대웅전 위쪽 30m 지점에 있는 3.02m 높이의 병풍바위에 2.6m 크기의 마애여래입상이 선각으로 새겨져, 이곳을 찾는 많은 불자들이 참배를 올리고 있다. 보물 제657호인 마애상은 양각과 음각의 수법을 겸용한 특이한 조각이다. 고려초의 대표적인 마애불 형태를 띠고 있어 11C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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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 들어가기 직전 계곡엔 수많은 돌탑을 쌓아 놓았다.

마애불로부터 약 1.5km 가량 삼천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증취봉 자락의 울창한 숲속에서 방대하게 흩어져 있는 삼천사의 옛터를 만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절터에는 지금도 거대한 석축이 여러 곳에 남아 있고, 그 위에는 주춧돌과 기단석·석등받침 등 석조물이 사방에 널려 웅장하던 자취를 말해 준다. 그 가운데 대지국사탑비(大智國師塔碑)의 귀부가 두드러진다.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과 운룡문으로 가득 찬 탑머리는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형 동종은 보물로 지정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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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인 삼천사 마애불 앞에서 불자가 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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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마애불에 대한 설명.

하산길은 다시 진관사로 돌아가야 한다. 삼천사를 지나 500m쯤 가다 진미집 주차장으로 방향을 왼쪽으로 틀면 계곡 옆에 청솔집이 나온다. 여기서 계곡을 건너 오솔길 같은 등산로를 가면 진관사로 바로 나온다. 불과 700m밖에 되지 않은 거리에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호젓한 등산로다.

진관사에서 비봉으로 올라가 삼천사에서 진관사로 원점회귀하는 등산코스는 전체 길이가 10㎞가 채 안돼, 조금 긴 산행을 원하는 등산객에게는 다소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으나 계곡을 즐기면서 능선과 유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한나절 코스를 원하는 등산객에게는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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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 정문과 바로 앞에 있는 오층석탑.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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