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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북한산 등산로와 북한산성 따라 열네 대문을 들여다보다 - 마운틴
북한산 등산로와 북한산성 따라 열네 대문을 들여다보다


북한산성엔 축성 당시 모두 14개의 성문이 있었다. 수문 1개소와 북문․대동문․보국문(소동문)․대서문․대동문․대남문(소남문) 등 성문 6개소, 서암문․백운봉암문(위문)․용암봉암문․가사동암문․부왕동암문․청수동암문(국녕문) 등 암문 6개소와 중성문 등 14개 성문이 북한산성을 둘러싸고 있다.


대개의 성문들은 등산로를 따라 있어 등산객들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그러나 북한산성 축성 당시의 성문들은 각각의 역할과 기능이 있었다. 방향을 가리키는 동, 서, 남, 북문에 방어를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중간 중간에 다시 성문을 만들었다. 북문은 시구문으로, 시체를 나르던 문이었고, 수문은 물이 흘러나가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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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대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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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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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대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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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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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북문인 시구문.

중성문은 노적봉과 중봉 사이에 있는 협곡을 차단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지형이 평탄하여 취약한 대서문 방면이 적에게 뚫리더라도 병목과 같은 이 일대 계곡을 차단하면 행궁을 비롯한 주요 시설과 인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쌓은 것이다. 숙종 37년(1711)에 착공하여 1년 여 만에 준공했다.


북한산성은 도성을 내려다볼 수 있는 험준한 지역에 있고, 비상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과 부대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서울의 방어시설이었다. 행궁은 무신들이 방어해야 할 시설도 같이 필요로 했다. 이른바 장대가 있어야 했다. 북한산성의 장대는 장수들의 지휘소로, 전망이 좋은 봉성암 뒤 봉우리인 시단봉 위의 동장대, 나한봉 동북의 동장대, 중성문 서북의 북장대 등 3개소가 있다. 이 가운데 동장대는 북한산성의 총 지휘소 역할을 했으며, 금위영 관할구역의 대동문과 용암문 사이에 있다. 남장대는 어영청 관할, 북장대는 훈련도감 관할구역으로 각각 관할이 나누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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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중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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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중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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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전경.

북한산성을 쌓을 때에는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어 승군대장 성능의 감독아래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성이 완공된 후에도 승군으로 하여금 성을 수비하도록 했다. 그만큼 조선시대에도 승군의 역할이 꽤 중요했다. 승군이 수비하는 관아를 치영(緇營)이라고 했다. 치영의 승군들은 낮에는 무술을 익히고, 아침․저녁으로 불경을 공부하면서 유사시 대비했다.


당시 병영으로 사용하던 사찰이 지금 북한산에 가면 있는 그 절들이다. 승군대장이 머물던 중흥사를 비롯하여 태고사․서암사․용암사․보국사․보광사․부왕사․원각사․국녕사․진국사․상운사 등 11개 사찰과 원효암․봉성암 등 2개의 암자 등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들 사찰들은 대부분 성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함으로써 산성 수비가 주된 건립 목적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산성 수비와 무술을 닦는 생활로 도성의 북쪽 요지를 지켜오던 승도들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강제 해산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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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동 암문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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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동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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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향에서 본 청수동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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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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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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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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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동 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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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당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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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바로 아래 있는 위문.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3 Comments

  1. 海雲

    06.14,2010 at 11:00 오전

    박기자님 포스트를 자주 봅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몇가지 성문 자료에 오류가 있는 것 같아 의견 드립니다

    사진 설명 중에 "북문인 시구문"은 시구문(서암문)은 맞는데
    북문은 원효봉과 영취(염초)봉 사이 안부에 별도로 있고
    시구문은 서암문인데 오기 인 것 같습니다.
    효지원에서 원효봉 쪼긍로 올라가다가 180미터 지점에 서암문이
    있고 예전 산성에서 나오는 시체를 성밖으로 내보내던 문이라
    시구문이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문은 원효봉 정상에서 내려서면 염초봉과 만나는 안부에 설치되어
    있고 지붕은 없지만 홍예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 한가지 위문은 일제시대부터 쓰여지던 이름이라던데
    그래서 위문이라는 팻말도 떼어버렸더군요
    아직도 통상적으로 위문으로 사용하고 지도에도
    그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이제는 원 이름인 백운봉암문으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2. 海雲

    06.14,2010 at 11:01 오전

    에구 오타가, ‘효자원에서 원효봉 쪽으로~’   

  3. 박정원

    06.14,2010 at 11:03 오전

    해운님의 격조있으신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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