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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제일 많이 찾는 북한산의 경승과 명소, 얼마나 아시나요?

매주나 가끔 북한산에 등산하는 사람들도 북한산이 왜 유명한 산인지, 어떤 경승과 명소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산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는 없을 지라도 지금 등산하는 장소가 어떤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가면 훨씬 더 산과 가깝게 느껴지고, 우리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다.

북한산은 한반도의 중심이 경주에서 평양과 개성으로 바뀐 고려시대부터 역사의 현장으로 전면 부각한다. 고려시대 산신을 모시던 오악으로 숭배받기 시작했다. 또 몽고의 침입을 대비해 북한산에 삼국시대 쌓아놓은 산성에 제대로 된 산성의 모습을 갖춘 중흥산성을 쌓았다. 중흥산성은 고려시대 때 별로 사용되지 않고 강화도의 강화산성이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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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동계곡은 옛날부터 시인묵객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던 곳이다.

조선시대 들어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며 전국의 산에 일제히 산성 축성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이 때 북한산성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췄다. 조선 숙종 때인 1740년대 전후였다.

북한산은 조선시대 때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주요 장소이기도 했다. 북한산을 거쳐 간 시인묵객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선비들이 놀던 장소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몇 군데 흔적이 있다.

산영루와 민지암, 칠유암, 우이동구곡 등이다.

산영루는 북한산성을 쌓고 난 뒤 쓴 <북한지> 누관조에 보면 ‘산영루는 중흥사 앞에 옛날 작은 다리를 덮고 누각을 세웠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산영루가 있던 총융사 선정비가 서 있는 앞쪽 계곡 일대를 ‘무릉도원’으로 불렀으며, 옛날부터 이곳을 경치가 제일 좋은 곳으로 꼽았다. 지금은 장주형 초석 10개만 남아, 그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실학자 이덕무도 <북한산성유람기>에 산영루를 ‘중흥사에서 비스듬히 걸어 서쪽으로 가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시냇물이 콸콸 흐른다. 그 모습이 흡사 갓 같기도 하고 배 같기도 한 큰 돌이 쌓이고 쌓여 대를 이룬 것도 세검정과 비슷하나 더욱 그윽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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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영루가 있었던 흔적을 설명하는 안내판.

민지암은 북한산성 대서문에 들어서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내려가면 큰 계곡이 나온다. 이곳이 북한산성의 수구로 수문이 있던 곳이다. 여기서 산성쪽 1㎞에 이르는 지역의 경관은 예로부터 이름나 있었다고 한다. 수문에서 성 안쪽으로 100걸음 쯤 오르면 위쪽은 처마 같고 아래쪽은 평상 같이 묘하게 생간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바로 민지암이다. 고려 충숙왕 때 명재상 민지가 명산을 두루 노닐며 소요하던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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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계곡에서 등산객이 쉬고 있다. 민지암에서 칠류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민지암에서 100m쯤 올라가면 20~30명이 족히 앉을 법한 평평한 바위가 나온다. 그 바위의 양쪽에 구멍이 세 개 뚫려 있어 당시엔 차일을 걸쳤던 것으로 보인다. 바위 표면에 ‘七遊岩(칠유암)’이란 한자가 새겨져 있다.

12.꼭 칠류암-crop-crop.JPG

북한산성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옆 계곡에 나오는 민지암 바위.

마지막으로 우이동구곡이 있다. 북한산은 많은 봉우리와 계곡이 기암괴석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곳이 많다. 그 중에서도 우이동 계곡은 뛰어난 절경으로 많은 명사들의 누정이 자리잡고 있어 풍치를 더한다. 조선 영․정조 때의 문신이었던 이계 홍양호는 우이동계곡의 풍경을 구곡으로 나누어 극찬했다.

다음은 홍양호의 <우이동구곡기>에 나오는 글이다.

‘만경대의 높은 봉우리가 인수․백운봉과 함께 병풍을 둘러친 것 같은 앞에 온통 돌로 된 석벽이 열길은 되게 깎아 서고, 물이 그 위에서 비단필처럼 내려 떨어지며 소리가 진동하는데 이름 하기를 만경폭이라 하니 그것이 제1곡이다.

제1곡에서 조금 내려오면 큰 돌이 평평하게 깔리고 수십인이 앉을 만한데, 이름을 성석이라 한다. 여기서부터 산은 점점 낮아지고 골짜기는 다시 합하여 좌우 쪽에 푸른 석벽이 마주 서고 물이 쏟아져 내리니 이름을 적취병이라 하는데, 제2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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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산영루의 흔적만 남아 있다.

다시 물을 따라 내려오면 돌에 무늬가 있고, 물이 그 위로 흐르며 왼쪽 언덕에 층층한 바위가 봉우리를 이루어서 위에 올라가면 먼 들판이 보인다. 이름은 천운봉이라 하는데, 제3곡이다.

산을 돌아 내려오면 두어 길 되는 큰 돌이 물을 막아 높이 서고, 소나무 바람, 물소리가 요란한데, 이름을 진의강이라 한다. 앞에 둥근 돌이 있어 큰 종만한 것이 물에 부딪혀 울리는데 그 소리를 들을 만하니 제4곡이다.

시내를 따라 수백 보 내려오면 큰 돌이 대를 이루어 동구를 가로막는데, 구름도 물도 맑으니 옥경대라고 한다. 돌이 매끄럽고 넓적하여 큰 글자를 쓸만하고 가운데가 패여 들어가 구유 모양 같으며, 이름을 세묵지라 하니 제5곡이다.

우이동 계곡.jpg

우이동 계곡의 깊은 물.

여기서부터 조금 북쪽으로 가면 물이 땅속으로 흘러 수리는 내려가서 흰돌이 넓게 깔리고 깨끗하기가 거울 같으며 여러 봉우리가 둘러싼 가운데 둥근 못이 되었다. 앞으로 수락․도봉의 여러 산이 병풍처럼 보이는데, 달 아래 그림자를 볼 수 있으니 이름이 월영담으로 제6곡이다.

다시 수백 보를 내려오면 괴석이 나고 들고 한 가운데로 작은 폭포가 되고, 오른쪽으로 큰 바위가 집채 같이 높이 서서 여러 사람이 벌려 앉아 술잔을 들 만한데, 이름을 탁영암이라 한다. 여기가 제7곡이다.

또 시내를 따라 수백 보를 내려오면 골짜기는 더욱 넓어지고 물은 더욱 맑아지면서 에둘러 소리 없이 흐른다. 물이 높이 떨어지며 여울을 이루니 명옥탄이라 한다. 그 서쪽에 작은 시내가 천관봉 아래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나오니 이름하기를 연미천이라 한다. 시내 위의 작은 집은 소귀당이다. 명옥탄․연미천의 물이 정자 아래로 합류하여 맑은 못이 되니, 이것이 제8곡이다.

여기 와서는 양쪽 언덕이 밝고 넓으며 물은 맑고 모래는 희다. 두어 채의 집이 돌에 걸터 시내를 내려다보니 재간정이라 하는데, 이곳은 오래된 별장으로 제9곡이다. 이상을 합하여 우이동이라 부른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4 Comments

  1. 이덕만

    07.17,2010 at 10:26 오전

    계곡 출입 금지 물놀이 금지   

  2. 유머와 여행

    07.18,2010 at 10:38 오후

    물이 정말 맑고 청아하니 좋으네요~   

  3. 이이

    07.19,2010 at 5:53 오후

    좋은하루되세요.   

  4. 여윤동

    07.22,2010 at 9: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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