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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백두산을 시로 표현하면…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 108곳, 詩로 노래하다 - 마운틴
백두산을 시로 표현하면…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 108곳, 詩로 노래하다


산과 들, 강 등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지역 108곳을 찾아, 그 지역의 역사적 의미에 맞게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시집이 있다.

한국 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서울대에서 2007년 정년퇴직한 오세영 교수가 전국의 이름난 산과 강과 명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실재성을 담아 <임을 부르는 물소리 그 물소리>에 노래했다. 국토의 일부를 노래한 기행적 형식의 시는 간혹 있었으나, 전 국토를 직접 답사하며 역사적 의미와 존재성을 담은 시집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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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백두산 천지에 올라 기념촬영 했다.

오 교수는 시집 서문에서 국토를 노래한 계기에 대해서 간단히 밝히고 있다. ‘나이 탓일까. 요즘 국가에 대해서, 그 국가를 가능케 한 국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를 이 지상에 태어나게 하고 내 생명을 영위케 해준 국토, 죽으면 다시 내 육신과 영혼이 돌아가야 할 이 땅의 성스러움이 새삼 외경의 마음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시를 쓰리라. 내 사랑하는 조국, 그 국토에 대해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라고

시집에 나와 있는 ‘백두산’을 살펴보자.

‘알타이에서 뻗어 내린 산맥이 동으로 치달아 / 땅 끝 반도의 북쪽에 우뚝 멈춰 / 대륙의 한축을 받들고 서 있는 / 백두 …(중략)… 그대 없이 이 땅 위에 / 역사도 생존도 없었거니, / 그대 없인 이 민족엔 / 영광도 자존도 없었거니, / 단군이 그곳에서 열어주신 그 보석 같은 / 한국어로….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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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소백산에서.

한라산은 또 이렇게 노래했다.

‘출가한 남자처럼 / 이 풍진 세상을 등지고 홀로 / 의연히 순결을 지키는 삶이여…(중략)… 너는 일찍이 / 번뇌와 욕망의 불덩이들을 스스로 말끔히 / 밖으로 토해내지 않았던가. / 그 텅빈 마음이 천년을 두고 / 하루같이 하나같이 쌓아올린 오름을 / 일겉어 한라라 하거니 / 한라는 차라리 / 성스런 국토를 지키는 남쪽 바다 끝 / 해수 관음탑. (중략)’

금강산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차라리 성스러운 산’으로, 태백산은 ‘하늘 아래 태백이 있거늘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보랴. 일찍이 단군이 말문을 여셨고 해와 달이 잠시 쉬었다 가신 곳.’으로 표현했다. 소백산은 ‘가까이는 태백이 있고, 멀리 또 백두가 있거니, 풍기, 단양, 영월, 제천 국토의 허리에 자리해서 스스로 소백이라 일컫는 그 겸손함이여.’라고 기리고 있다. 덕유산은 ‘남 덕유, 북 묘향이라 하거늘, 다만 어찌 그 빼어난 경관만을 칭송할 수 있겠느냐.’로, 설악산은 ‘천상에서 갓 내린 선녀인 듯, 곱고 튀고 야하고 순결하고 예쁘고 고결하고 준수하고 발랄하고 매혹적인 처녀하나 동해 푸른 바닷가에서 철없이 물장난을 치고 있다’고 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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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태백산에서 국토사랑 시낭송대회를 하면서.

계룡산은 ‘백두대간을 외로 두고, 홀로 명상에 든 산이여. 천년을 한 자세로 결가부좌 중이구나’라고, 내장산은 ‘기쁨도 슬픔도 안으로만 삭여, 미움도 사랑도 가슴에만 묻어, 참으로 아름답도소이다.’로, 마니산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문, 그 마니산’이라고 노래했다. 화왕산은 ‘그대 세상사 슬픈 일로 마음이 괴로우면, 늦가을 해질 무렵 하얗게 하늘대는 화왕산 억새꽃밭에 가보아라’라고 사실적 표현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시인은 이와 같이 산을 이 땅의 변함없는 정신적 줏대로서의 웅장한 기운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장소로 나타내고 있다. 산이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인 것이다.

시인은 이외에도 강과 하천 15곳, 섬 15곳, 명소 63곳 등 총 108개 지역을 시로 담아냈다. 오 교수는 삶에 대한 자각과 깨달음을 주는 의미로 108이라는 숫자를 택했다고 한다.

오 교수가 우리의 산하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시상을 떠올리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5년 미국 버클리 대학 교환교수로 있을 즈음, 미 전역에 여행을 자주 다녔다. 당시 느낀 소회를 귀국해서 시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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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성인봉에 부부가 함께 올라.

또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받은 충격과 감동을 그대로 시로 담았다. 외국의 자연을 담아 시로 발표한 뒤 갑자기 ‘한국인이 한국의 자연은 왜 시로 노래하지 않느냐’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때부터 우리 자연을 시로 써보자 라는 의지를 갖게 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되돌아보는 60대 중반이 되니 내가 사는 이 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라는 거였다. 이때부터 국토를 예찬하는 시를 남겨야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언어는 민족의 영혼이고, 국토는 민족의 육신이다. 더욱이 오 교수는 언어의 마술사이자 조탁자인 시인이다. 민족의 육신을 민족의 영혼으로 담아내는 작업이 시작됐다.

국토 108곳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지역을 하나의 대상이나 사물로 보고, 그 의미를 담아냈다. 느낀 감정이나 소회를 쓰는 게 아니었다. 기행문이 아니고, 수천 년 역사의 실존적 철학적 존재론적으로 접근했다. 2005년부터 월간 현대 시에 답사하고 쓴 시부터 발표했다. 2년여 동안 계속됐다. 2007년 10월 연재를 끝냈다. 이번에 그 시리즈를 모은 단행본 시집 「임을 부르는 물소리 그 물소리」가 그래서 세상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 시집은 우리를 낳고 키운 산과 들과 강의 혼, 그 물소리를 들으며 도시의 소음에 방치된 현대인을 일깨우고 있다. 오 교수의 전형적인 시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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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의 시집.

오 교수는 “자연을 노래하면 음풍농월이라 하고, 사랑을 쓰면 사랑타령이라 비판하는 문학을 권력화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문학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시인은 이 땅의 성스러움이 새삼 외경의 마음으로 다가와, 이를 아름답고 순결한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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