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唐代) 최고의 시인 이(태)백은 중국 최고의 명산 황산에 3번이나 올랐다. 최고의 시인이 최고의 명산에 올랐는데 그냥 있을 리 없다. 시심이 절로 솟는다.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시를 한 수 읊었다.
‘황산 사천 길 높이에(黄山四千仞, 황산사천인) / 서른 두 개의 연꽃봉오리(三十二莲峰, 삼십이천봉) / 빨간 벼랑에 돌기둥들(丹崖夹石柱, 단애협석주) / 도톰한 연꽃과 금빛 연꽃들(菡萏金芙蓉, 함담금부용)’
황산 등산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나거나 절벽 옆에 계단을 놓아 만드는 등 아찔한 구간이 수없이 많다. 그 사이로 한국의 등산객이 지나고 있다.
세 번이나 올랐는데 그의 흔적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몽필생화(夢筆生花)’라는 기이한 이름의 봉우리도 이백과 관련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백이 황산에 왔다가 그 수려한 경관에 취해 큰 소리로 시를 읊었다. 그 소리를 들은 사자림선원의 장로가 이백이 온 것을 알고, 급히 황산의 샘물로 만든 술로 대접했다. 이백은 장로의 성의에 고마움을 느껴 술김에 붓을 들고 시를 한 수 쓴 뒤 붓을 멀리 던졌다. 장로가 이백을 배웅하고 돌아와 보니, 이백이 던진 붓은 산봉우리로 우뚝 솟아있고, 붓끝은 산봉의 소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도 정상 부근의 기묘한 바위 봉우리 끝에 소나무 한 그루가 절묘하게 자라고 있는 ‘몽필생화’에 관한 전설이다.
중국 제일의 명승지로 꼽히는 황산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난간 같이 등산로를 만들어 등산객들이 지나고 있다.
황산, 중국 최고의 명산으로 꼽히며 10대 명승지 중의 한 곳이다. 정상 연화봉(1860m)과 천도봉, 광명정이 3대 주봉이다. 72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마치 동양화에서나 본 듯한 구름에 가린 신선 같은 봉우리들로 우뚝 우뚝 솟아있다. 운해 위로 솟은 봉우리들의 절경이 실제 황산 모습이다. 그래서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고도 불린다. 그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황산의 기송(奇松), 기암(奇岩), 운해(雲海)를 황산삼기(黃山三奇)라 하며, 거기에 온천을 더해 황산사절(黃山四絶)이라고 한다. 유네스코는 황산의 절경과 그와 관련된 문화를 1990년 세계자연유산과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절벽 같은 봉우리 사이로 왼쪽 밑에 조그마한 등산로가 보인다.
명나라 때 유명한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은 1616년에 이어 1618년 두 차례 황산에 오른 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말을 남겼다. ‘중국의 5악인 태산․화산․숭산․형산․항산을 보고나면 중국의 다른 산을 볼 필요가 없고, 황산을 보고나면 오악도 볼 필요가 없다.(五岳歸來不看山․오악귀래불간산, 黃山歸來不看岳․황산귀래불간악)’
황산 등산로는 대부분 계단이거나 돌로 만든 난간으로 인간이 직접 조성했다.
고래로부터 중국 최고의 명산으로 꼽혔던 오악(五嶽)을 볼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면 과연 얼마나 뛰어난 경관을 지닌 산일까? 그러면 왜 오악 중의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까? 황산은 왜 황산이 됐을까? 이런저런 의문을 가지고 황산을 찾았다. 마침 자연등산로를 개척했다는 중국태산트레킹의 황동호 사장이 안내했다.
절벽을 깎아 길을 내고 화강암 바위를 뚫어 만든 등산로로 지나고 있다.
중국의 남쪽 안후이성(安徽省) 남동부에 위치한 황산을 등산하려면 대부분 남쪽과 북쪽에 있는 케이블카와 버스를 이용한다. 그러나 황 사장은 서쪽 교촌~왕대숲~천상계곡~촛대봉까지 이어지는 자연등산로로 이용하고, 이후부터는 계곡 따라 나 있는 계단으로 천해~서해대협곡~광명정~백아령까지 간다. 백아령에서 운곡사까지는 케이블카로 하산한다. 자연등산로와 계단을 이용해서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총 8시간 남짓 된다.
절벽 옆으로 난간 같은 계단으로 만든 등산로를 지나는 한 등산객이 아래를 쳐다보고 있다. 대부분 등산객은 안쪽으로 바싹 붙어 걷고 있다. 실제 아래는 천길만길 낭떠러지다.
교촌마을은 황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한적한 곳이다. 중국의 대부분의 시골이 그렇듯이 스러져가는 집에 가끔 사람들이 눈에 띈다. 1시간쯤 마을을 지나쳐 계곡에 접근했다. 계곡 사이로 황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빨리 와서 보라는 듯 살짝 살짝 모습을 비췄다. 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아나게 한다.
계곡을 가로질러 왕대숲 사이로 난 임도로 접어들었다. 대나무는 한국에서 보던 것과 똑같다. 황산은 대나무로 유명하다. 기암․기석․운해․온천의 황산사절에 황산 대나무와 황산모차(야생 녹차)도 중국에서 알아준다고 한다.
황산삼기(黃山三奇)에 속하는 절경의 기암 봉우리가 황산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임도 끝나는 지점에 뜻밖의 펜션 같은 숙박업소가 나왔다. 이곳도 등산객이 오가는가 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 정경을 둘러봤다. 펜션 이후부터는 다시 숲속을 헤쳐 나가는 길이다.
숲은 마치 정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가 우거져 있다. 가끔 노목이 넘어져 건너가기도 한다.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펜션까지는 대숲이었으나 지금부터는 참나무숲이다. 참나무는 우리 강산에서 자라는 것과는 조금 달리 보였다. 아열대 기후에 적응한 결과인지 잎이 더 작고 평평했다.
숲이 우거진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숨이 차올랐다. 고도를 보니 600m쯤 됐다. 정상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제법 높다. 600m 고지를 밟고 다시 계곡으로 하산이다. 경사가 50℃이상은 되는 듯한 가파른 산길이다. 주변은 온통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물푸레나무도 언듯언듯 눈에 띈다. 이름 모를 관목들도 숲의 일원인 양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다.
황산 자연등산로인 왕대숲 사이로 한국 등산객이 지나고 있다. 마치 한국의 산을 걷는 듯한 분위기다.
다시 계곡이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한국에서 본 것과 같이 맑다. 중국에서 이렇게 깨끗한 물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다들 앉아서 계곡을 발을 담궜다. 일행들은 “야! 중국에서 탁족 등산을 할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며 다들 감탄이다. 저 멀리로는 황산의 신선 같은 봉우리들이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오는 듯했다.
산길과 계곡을 오르내리는 자연등산로로 3시간 남짓 등산한 뒤 이젠 계단길로 접속했다. 계단 옆으로도 계곡물은 흐르고 있다. 계단을 자세히 보니 전부 원래 있던 화강암 바위에 계단을 깎아 등산로를 만든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황산모차로 유명한 야생녹차를 황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제일의 차로 꼽힌다고 한다.
황산의 등산로는 등소평이 황산에 한 번 올랐다가 절경에 반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케이블카도 설치하고 개발을 지시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국의 10대 명승지 중에서도 한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주등산로는 남쪽과 북쪽이다. 서쪽은 상대적으로 등산객들이 적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등산로는 계속 됐다. 등산로도 정말 절묘하게 만들어 놓았다. 처음엔 단순히 길을 깎아 계단을 만들었지만 올라갈수록 90℃ 되는 절벽에 돌계단을 박아 넣어 등산로로 낸 길이었다. 계단 옆으로는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였다. 도저히 인간이 만든 길이란 게 믿기지 않았다. 아래를 쳐다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등산로를 따라 엉금엉금 기다시피 올라갔다.
그러나 아찔한 등산로만큼이나 황산은 뛰어난 경관을 선사했다. 황산의 옛이름은 이산(移山)이다. 당나라 때 이르러 황산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헌원황제가 이산에서 도를 닦으면서 이산의 기를 받아 신선이 됐다고 전한다. 그 때 황제가 입었던 용포의 색이 황색으로, 그것을 따서 황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고 한다. 신선이 사는 듯한 기암괴석과 운무, 그리고 운치를 더하는 소나무는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동양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의 경관을 만든다. 우리가 흔히 봤던 신선 같은 그림의 배경이 황산에서 보는 것과 똑 같았다.
실제로 중국의 많은 시인묵객들이 글과 그림으로 황산의 경치를 노래했다. 당의 이백 뿐만 아니라 청나라 때는 ‘황산화파’라는 유파가 생겨날 정도였다. 매청, 석도, 홍인이 대표 작가로 꼽힌다. 석도는 황산의 혼령을 얻었고, 매청은 그림자를 터득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승려화가인 홍인은 말년에 황산의 봉우리와 사찰을 다니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요즘도 많은 화가가 황산을 찾아 바위 아래 소나무 등걸에 화첩 등을 펼쳐놓고 황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곤 한다.
황산의 돌계단은 대부분 화강암 바위에 사람이 직접 깎아 만든 길이다.
운무 사이로 난 아찔한 계단등산로를 오르는 기분은 한편으로 오금이 저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대를 넘어 시인묵객들이 보고 싶어 했던 신선 봉우리를 오르는 선계(仙界)의 계단 같이 느껴졌다. ‘구름이 있으면 운무를 즐기고, 운무가 없으면 이상향 같은 풍경을 즐겨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마침 꼭 이날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이 올라가는 등산로는 운무로 자욱했다.
황산은 연간 200일 이상 운무가 낀다고 한다. 그래서 ‘운해의 땅’이라고 한다. 운무는 또 바다를 방불케 해서 황산의 방향을 말할 때는 서해, 북해, 남해 등으로 부른다. 서해대협곡도 그래서 나온 말이다.
절벽 같은 봉우리 옆으로 길을 내지 못하면 화강암 바위에 구멍을 뚫어 동굴로 지나는 등산로를 만들었다.
서해대협곡은 해심정에서부터 북문 입구를 거쳐 서해군봉에 이르는 협곡을 말한다. 가까이 있는 봉우리는 어렴풋이 보이지만 조금 멀리 떨어진 봉우리는 운무 때문에 윤곽만 드러날 뿐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짙은 운무로 방향까지 종잡을 수 없다.
각종 기묘한 바위를 지나 배운정에 도착했다. 배운정(排雲停)은 황산에서 서해의 운무가 가장 많이 집결한다는 장소다. 거의 300일 가량 운무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역설적으로 구름을 밀쳐낸다는 뜻으로 지었다. 배운정은 중화민국 24년인 1935년 서해 입구에 화강암으로 세웠다. 이곳은 날씨가 활짝 갠 날에는 시야가 확 트여 기암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운무가 있으면 신선의 운무를 감상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 부근에는 유달리 소나무가 많다. 기암절벽의 봉우리에도 소나무만 자생하고 있다. 역시 소나무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황산의 기묘한 소나무 50여 그루는 유네스코로부터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국가에서 특별 관리하고 있다.
등산로 중간중간에 정자는 자주 눈에 띈다. 순식간에 운무가 끼는 것도 황산의 주요 특징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지가 축 늘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길옆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나무 옆 이정표에는 ‘단결송’이라고 적혀 있다. 가지가 56개로, 한족을 포함한 중국의 모든 소수민족이 단결하는 소나무라는 뜻이다.
정상 가까이 와서인지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활보하고 있다. 배운루호텔, 백운호텔, 북해호텔 등 정상에만 3개의 호텔이 있다. 등소평 사진도 실물의 두 배 이상 크게 걸려 있다. 호텔 부근에 야영하는 사람들까지 보인다. 장장 8시간 30분 걸려 도착했다. 출발지점에서 정상까지 약 12.5㎞정도 되는 거리다. 많은 계단 때문에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편이다.
황산에는 각 방향마다 1만개씩 총 약 4만 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조금 적고 남쪽으로 더 많다. 말이 1만개의 계단이지, 실제로 오르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힘든 코스다. 계단이 수천 개 이상 넘어가면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평지 걷듯 걸어야 한다. ‘이 많은 계단을 언제 오르나’하는 생각을 가지면 오히려 더 힘들다. 어차피 수천 개 이상 넘어서면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라 생각하고 걸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구름을 밀쳐내고 황산을 조망하는 장소인 배운정. 그러나 이날은 운무가 자욱하다.
이젠 하산하면 된다. 태평케이블은 10분 전에 마지막 케이블이 떠났다고 한다. 다시 운곡사케이블까지 걸어야 한다. 운곡사케이블은 길이가 2803m로 아시아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케이블카 타는 가는 길에 行知停(행지정)이란 정자가 보인다. ‘아는 것을 실천하라’는 정자라고 한다. 그곳에 ‘行動是老子(행동시노자․행동은 어른처럼 행하고), 知誠是兒子(지성시아자․지식은 젊은이처럼 익히고), 創造是孫子(창조시손자․창조는 어린아이처럼 하여라)’는 교훈도 적혀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황산의 명물 비래석(飛來石)이 있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바위다. 높이가 12m, 길이가 7.5m, 넓이가 2m 정도 된다. 중량은 360톤 된다고 한다. 이 바위는 또 멀리서 보면 복숭아 같이 생겼다 해서 선도봉(仙桃峰)이라고도 한다.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가다가 천도봉숭아를 한 입 베어먹고 하늘에서 던진 것이라고 해서 선도봉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전부 신선 같은 내용 일색이다.
백아령에 도착, 10여분 기다린 뒤 아시아에서 가장 긴 하산행 운곡사케이블카를 탔다. 거의 9시간 걸려 올라온 길을 불과 10여분 만에 내려왔다. 케이블카 안에서도 운무가 잔득 낀 주변 절경 봉우리들을 감상했다.
가지가 56개로 알려진 황산 단결송. 한족을 포함 중국의 모든 민족을 하나로 묶는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황산은 태산의 위용과 화산의 험준함에 형산의 안개구름을 더하고 여산의 나는 듯한 폭포와 안탕의 절묘한 바위, 거기에 아미산의 청량함까지 곁들였다”는 중국 가이드의 말에 새삼 고개가 끄떡여졌다. 황산이 왜 중국 제일의 명산인지 수긍이 가는 느낌이었다. 다른 의문은 다 풀렸는데, ‘왜 애당초 오악에는 꼽히지 않았을까’는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다. ‘아마 제천변상(諸天變相)의 선계의 산이라 황제의 산이며 속계에 속하는 오악과 구분하기 위해서 제외하지 않았을까’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하산했다. 운무가 잔뜩 낀 황산을 걷는 기분은 마치 신선이 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