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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개의 산을 오른 사람들 ‘만산회’, 한국에 안 가본 산이 없다


일주일에 한번 산에 가면 평생 얼마나 갈 수 있을까? 20세부터 80세까지 산에 다니고 연간 50주 간다면 3000개의 산을 오르게 된다.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1000개 이상의 산에 오른 사람들의 모임인 만산회(萬山會)가 있다. 2008년 3월 이종훈․최진무․김은남씨가 주동이 되어 만산회를 창립했다. 창립 당시만 하더라도 회원 5명이 등정한 산이 10,000개쯤 된다고 해서 만산회라 이름 붙였다. 지금은 회원도 늘었고, 계속해서 산을 다녀 30,000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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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회 멤버들이 모처럼 같이 산행을 했다. 항상 개별적으로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라 한 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다. 그것도 회원 10명에 6명뿐이다.

현재 회원은 10명으로 창립 주동 역할을 한 이종훈 회장을 비롯, 최진무 부회장, 김은남 총무, 변태건․문정남․심용보․조삼국․김홍국․오상호․박형기씨 등이 회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김홍국씨는 이들 멤버 중 유일한 여자회원이며, 지도제작사인 ‘고산자의 후예들’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유일한 홍일점인 ‘고산자의 후예’ 김홍국씨는 전국의 산이 그의 직장인 셈이다. 결혼과 동시에 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남한의 산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그녀가 바로 ‘현대판 김정호’인 셈이다.


수천 개의 산을 도대체 어떻게 올랐을까? 우선 산의 기준부터 궁금했다. 개인들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산과 봉우리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이름만 있으면 하나의 산으로 취급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위성봉은 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즉 북한산의 위성봉인 족두리봉․인수봉․비봉․원효봉․의상봉 등을 하나의 산으로 계산하는 반면 어떤 회원은 각각 하나의 산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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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끈 회장 이종훈씨. 실질적으로 산을 가장 많이 다닌 사람에 속한다.

산림청은 지난 2007년 12월 1년여의 자연지명 자료를 기초로 현장답사 및 분석결과 우리나라 산의 수는 총 4440개라고 밝혔다. 산의 기준은 높이가 100m는 넘어야 한다는 건설교통부 기준에 따른 것이다. 또 ‘산․봉․재․치(티)․대’ 등 산으로 분류될 만한 자연지명은 8006개였으나 ‘재․치(티)․고개는 제외했다고 덧붙였다. 제주도에는 총 386개의 오름이 있으나, 이중 해발 200m이상인 8개의 오름을 산으로 분류했다.


산으로 규정할 만한 국제적인 기준은 없으며,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영국에서는 300m가 넘어야 산이고, 미국은 600m가 넘어야 산이라 부른다. 산이 아닌 것은 힐(Hill, 언덕)이라고 한다.

만산회 회원들도 기준이 조금 들쭉날쭉했다. 각각의 기준과 산에 다닌 사연과 계기, 몇 개의 산에 올랐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창립을 주도했던 회장 이종훈(76)씨는 1970년대 초반 아들 따라 산에 갔다. 대학 산악회 활동을 했던 아들이 매일 산에서 살다시피 하니, 아들의 안전이 걱정돼 산에 가서 옆에서 지켜보다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들 따라 이산 저산 가다, 아들이 준 ‘1000산악 가이드북’을 하나씩 채웠다. 어느 날 1000산이 가득 차 더 이상 적을 공간이 없었다. ‘어디 한번 제대로 정리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그 때가 1996년쯤 된다. 이후부터는 하나하나씩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게 지금 3550개 정도 이른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이상 산에 간다. 한 번 갈 때 당일로 가는 게 아니라 숙박 할 때도 많다. 모텔에 자는 것도 익숙해졌다. 저체온증 걸려 죽을 고비도 몇 차례 넘겼지만 산에 다니면 으레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 여길 정도가 됐다.


요즘은 만산회 회원 외에는 산에 같이 갈 사람도 없다. 대부분 혼자 다닌다. 웬만한 산악회에서 가는 산은 이미 가봤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오지산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더더욱 혼자 갈 수밖에 없다. 7년 전에 현재의 멤버들을 산에서 만나 개척산악회를 만들어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정기 모임은 각자의 자유로운 산행활동을 감안, 두 달에 한번 하기로 했다. 만산회 창립 당시엔 만산회였지만 새로운 회원들이 늘면 산악회 이름을 억산회로 바꿔야 할 정도로 등정한 산 갯수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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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점 김홍국씨. 지도제작사 고산자의 후예들 대표다. 전국이 곧 그녀의 직장이기도 하다.

“아마 산과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산에 간다고 집에 나왔을 때부터 잡념이 사라지고 산에만 가면 그냥 좋습니다. 특별한 목표는 없습니다. 건강하면 산에 가고, 건강 안 하면 못 가는 거고…. 아마 한 4000개의 산은 오를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부회장인 최진무(71)씨는 산에 다닌 지 약 30년쯤 됐다. 그럭저럭 산에 다니다 1988년부터 월간 산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본격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월간산에 소개된 산은 빠짐없이 다 찾아다녔다. “100% 갔다왔다고 자부한다”고 장담했다.

최 부회장도 일주일에 두 번 산에 간다. 한 번은 당일, 한 번은 숙박을 하는 산행이다. 산행을 하기 위해 차도 아예 처음부터 4륜구동으로 구입했다. 차에는 전기밥솥까지 구비해 뒀다. 언제든지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준비를 한 상태다.


그동안 산악회도 4개나 창립해서 회장을 했다. 현재도 3개의 산악회에 소속돼 열심히 산에 다닌다. 지금까지 약 3000개의 산에 올랐다. 주변 사람들이 엄동설한에 산에 가면 “미친×아, 이 추운 날씨에 왜 산에 가느냐”고 하면 딱히 대꾸할 말도 없다. ‘밥을 왜 먹나’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키나발루와 안나푸르나․후지산 트레킹을 갔을 때 겪었던 고산증은 잊을 수 없는 산행기억 중의 하나다. 속이 메스꺼워 곧 구역질 할 것 같은 느낌을 수 시간 동안 겪으면서 하산한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국내 산행 중에서도 수십 년 전 날이 어둑해질 즈음 하산하는데 올라가는 등산객을 만나는 순간 ‘간첩인가, 귀신인가’라고 여겨질 정도로 섬뜩했던 기억도 선명하다.


“지금은 그 정도는 못 되지만 한때 한 달에 27일 정도 술을 마셨습니다. 음주의 세계와 등산의 세계는 다릅니다. 술을 덜 마시기 위해서, 술 마신 걸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산에 갔죠. 누구는 ‘술 마시기 위해 산에 간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산에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죠.”


일주일에 최소 2번, 최대 5번 산행


총무를 맡고 있는 김은남(68)씨의 산행 이력은 조금 남다르다. 그는 전직 은행지점장 출신으로 시를 쓰기 위해서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계획된 산행이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항상 책을 끼고 살았다. 그 버릇이 커서는 ‘내 책을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1991년 1월 지점장으로서 시무식을 하는 데 우연히 손의 검버섯이 보였다. 순간 ‘아, 인생길이 부산에서 서울까지라면 부산에서 수원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책을 쓰자’는 다짐을 했다. ‘무엇을 쓸까’ 고민했다. 문학은 오래된 것이 좋았고,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 좋았다. 산이 딱 적격이었다. 그러면 산에 가야한다. 그 길로 바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조도 따로 배웠다. 중고교 시절 교내 백일장에 입상할 만큼 문학적 자질은 있었다.


직장 다니면서 매주 산에 갔다와서 시조를 썼다. 오직 ‘책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 결과물이 산에 본격 다닌 지 불과 1년 만에 나왔다. 첫 시조집 <산음가>를 1992년 발간했다. 산행에 더욱 신바람이 났다. 2년 뒤 두 번째 시조집도 냈다.

산에 다니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직장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웠고 번거로웠다. 더 다닐 수 있었지만 1996년 과감히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구애받을 것 없이 산에 다녔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길게는 5일 정도 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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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 최진무씨.

퇴직할 즈음 본격 산에 다닌 5년 간 400개의 산이 정리됐다. 직장 다니면서 연간 80개의 산을 오른 셈이다. 한마디로 ‘철인’이다. 이종훈 회장도 1991년 무렵 산에서 처음 봤다. 무박산행, 종주산행 등을 열심히 따라 다닐 때였다. 김씨는 “하얀 머리의 이 회장이 산신으로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산에 다녀 현재 약 2200개 정도 된다.


“산에 가는 것은 유언장 작성과 똑 같습니다. 후손들이 나무 밑에서 시원하고 편안하게 노는 것과 같이 후손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산에 관한 책을 남기고 싶습니다. 2004년 마지막 시집을 낸 뒤 아직 후속 책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책 1권에 500산을 묶어 2500산의 전집을 2013년쯤 낼 계획입니다.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등의 지역으로 묶지 않고 산줄기 순서대로 적어내려 갈 것입니다. 분할의 개념을 없애고 통합 개념인 산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데까지 산에 가면 더 빨리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올해 회원으로 가입한 심용보(73)씨는 1990년 군을 전역하면서부터 산에 다녔다. 전역 뒤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자연 산으로 눈이 갔다. 거인산악회를 따라다니며 2002년 1대간 9정맥을 끝냈다.

일주일에 4~5번씩 산에 다니니 집과 주변에서는 “당신은 산에 안 가면 죽는 길밖에 없다”고 해 가기 싫어도 산에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는 나름 독특한 산의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남한에만 총 14,000개의 산이 있다고 한다. 그의 기준은 산과 봉우리의 높낮이 상관없이 이름만 있으면 무조건 ‘산’이라는 것이다. 즉 위성봉도 전부 별개의 하나의 산으로 본다. 그에 기준으로는 북한산도 수십 개의 산이 된다. 2010년 11월 현재 그는 5500여개의 산에 올랐다. 물론 그의 기준으로다. 내년 8~9월까지 ‘6000개의 산 목록’을 발간할 계획이다.

심씨의 기준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등정 개수는 배 이상 올라간다. 이종훈씨는 10,000개 이상 되지 않겠나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산에 다니려면 3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가 건강, 둘째가 돈, 셋째가 시간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마니아의 수준을 넘는 광적인 열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전부 산에 관한 한 광적인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이들은 또 한 개의 산에 갔다 올 때 평균 3만~5만원 사용한다. 김은남씨는 2200개의 산을 타면서 지금까지 총 1억 원 이상이 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새 차만 6대를 바꿨으며, 전부 산에 가기 편한 차인 4륜구동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심씨는 한 달에 드는 등산비용은 평균 70만~8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산에 가겠다는 거다. 산 등정개수는 열심히 걷다보면 늘어나 있을 것이다. 건강 유지하며 오랫동안 산에 다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만산회가 언제쯤 억산회가 될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카스톱

    01.18,2011 at 4:45 오후

    부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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