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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기왓장 대거 나온 미륵산, 국보 제11호 미륵자시석탑 바로 뒷산

익산 미륵산에서 백제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이 대거 나왔다. 실제로 백제시대 기왓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륵산 바로 아래 있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 때문만이 아니라 익산의 유적을 보면 대충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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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을 원형 복원(왼쪽) 중이다. 오른쪽에 있는 탑은 조형탑이다.

익산은 고대국가 시절 네 번이나 도읍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다. 그 첫 번째 시기가 고조선 준왕이 기원전 198년경 남하해서 금마에 수도를 세웠을 때다. 두 번째는 마한의 수도였던 금마가 마한 54소국을 총괄하던 도읍지였다. 세 번째는 고구려 왕손 안승이 세운 보덕국의 수도였고, 마지막이 백제의 무왕이 왕궁으로 천도한 곳이다. 금마는 익산의 한 지역이며, 지금도 그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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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올라가는 등산로는 잘 정비돼 있다.

익산은 도시 곳곳이 경주 못지않은 유적지다. 강화도 갯벌이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문화재구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천년 도읍 경주를 따돌리고 문화재 지정구역이 가장 넓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도시를 파면 고대 기와와 불상 등이 나온다. 익산이 여전히 유적 발굴 중인 이유다. 도시뿐만 아니라 이번에 나온 미륵산에서도 기왓장이 발길에 채일 정도로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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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지명법사가 있었던 사자사 가는 갈림길.

익산시는 이들 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고, 문화재청에서도 남한산성과 더불어 세계유산 우선 등재지역으로 지정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도시로는 경주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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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법사가 있었던 사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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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사에 대한 연혁.

서울의 진산이 북한산이라면 익산의 진산은 미륵산(430m)이다. 이 미륵산에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등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유물 발굴하느라 하루 수차례 오르내린 이신효 학예사는 고작 한 두명 만나는 게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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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에서 미륵사지 석탑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미륵산이 익산 사람들의 ‘북한산’이 됐다. 하루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시에서는 평야에서 바로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을 나무계단으로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등산로를 정비했다. 계단 옆으로는 등산객들이 발로 흙길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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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의 두 개의 봉우리 중 하나인 우제봉. 옛날 기우제를 여기서 지냈다고 한다.

미륵산 중간쯤 되는 곳에 사자사라는 절이 있다. 사자사는 익산에 도읍을 정한 백제 무왕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지명법사가 있었던 곳이다. 절벽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조그만 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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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봉에서 다시 등산로를 따라 조금 가면 정상 장군봉이 나온다.

1993~1994년 두 차례에 걸친 사자사의 유물 발굴 조사에 직접 참여한 문화관광과 조상미씨는 “청동불상이 나와 본격 발굴조사를 했으며, 그 와중에 법당을 4차례 중건한 사실을 확인했고, 1332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도 출토됐다”고 밝혔다. 역사로만 따지만 천년이 훨씬 넘는 족보 있는 사찰인 셈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석등과 석탑 등이 그 옛날의 역사를 전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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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봉 올라가는 길은 옛날 산성이 있었던 자리로 지금도 축성에 쓰였던 돌이 그대로 있다.

미륵산에는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나는 우제봉이고, 다른 하나는 장군봉이다. 우제봉은 그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사자사는 우제봉 아래에 있다. 기우제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옛날 기우제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연간 강우량이 1200㎜내외이면서 강우일수가 100여일쯤 되면 아무리 비가 안 와도 기껏 한달 정도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릴 확률은 100%에 가까워진다. 누가 제사장을 맡더라도 비는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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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장군봉이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고 있다.

또 다른 봉우리인 장군봉은 바로 저 옆에 있다. 금방 장군봉으로 왔다. 장군봉은 우제봉보다 훨씬 더 넓고 평평해 많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며 쉬고 있다. 도심도 한눈에 보인다. 왕궁리 왕궁터의 전체 윤곽도 바로 들어왔다.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익산이 평야지대는 평야지대다. 불과 400여m 남짓 되는 산에서 전체 도심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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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성의 흔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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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성에 대한 설명.

정상 부근에는 기왓장이 발길에 채일 정도로 많다. 그것이 이번에 제대로 학계에 고증을 받게 됐다. 기왓장은 산 정상에 세워졌던 산성 또는 봉수대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백제시대 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등산객 출입을 통제한다면 그 많던 등산객이 어디로 갈까? 그들이 불만을 터트릴까, 아니면 사적지로 지정되기를 바라면서 대승적으로 받아들일까. 어떤 반을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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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중인 미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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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문이 있었던 흔적이그대로 남아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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