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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가슴, 즉 명당인 변산 어수대 등산로 개방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변산.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깊고 푸른 숲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우리나라 유일의 해안과 산지를 동시에 끼고 있는 해안․산악형 국립공원이다.

해안 쪽의 외변산은 수만 권의 책을 쌓은 듯한 채석암과 노을이 아름다운 적벽암, 바다의 여신을 모신 수성단, 하섬의 싱그러운 바닷길, 그리고 격포항까지 바다의 생명력이 넘친다. 내변산은 기암괴석의 절묘한 산봉우리들, 직소폭포와 궁내곶, 낙조대, 천년고찰 내소사와 개암사․월명암 등 은은한 역사의 향기가 흐른다. 외변산과 내변산, 해안절경과 내륙비경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변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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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국립공원 지도.

변산은 그 빼어난 경관으로 예로부터 봉래산(蓬萊山) 또는 능가산(㘄加山)이라 하여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변산에 지난 5월부터 새 등산코스 4구간이 개통됐다. 세봉~인장암까지 1.5㎞, 감불~만석동~개암사까지 10.3㎞, 고사포~죽막까지 2.9㎞, 어수대~쇠뿔바위~청림마을까지 5.9㎞ 등 4개 코스가 등산객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중 1988년 변산반도국립공원 지정 직후 폐쇄된 어수대~쇠뿔바위~청림마을 코스를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 김영배씨의 안내로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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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국립공원 개요

출발지인 어수대에 도착했다. 도착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뭔가 신선이 나올 듯한 포스가 느껴진다. 병풍 같은 암벽에 평평한 바위, 그 옆엔 조그만 호수 등 신선이나 왕이 놀만한 곳이지, 일반 서민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곳 같은 느낌이다. 어수대(御水臺), 임금이 물을 마시는 장소란 이름이다.

분위기만으로 볼 때 충분히 임금이 왔을 만하고, 왔으면 가기 싫어했을 것 같다. 어수대 위에 왕재암과 석재암이란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지>에 ‘신라왕 김부(경순왕)가 서쪽으로 순행하여 이곳에 이르렀다가 즐거워 돌아가기를 잊었다. 그래서 왕재(王在), 석재(釋在), 어수(御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순왕이 이곳에서 3년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믿거나말거나’ 한 얘기지만 기록에 있는 얘기다.

바로 그 옆엔 시비도 하나 있다. ‘천년 옛절에 님은 간 곳 없고 / 어수대 빈터만 남아 있네 / 지난 일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 바람에 학이나 불러볼까나’

시 조차도 예사롭지 않다. 시 끝에 조그만 글씨로 매창이라고 되어 있다. 매창이 누구인가? 조선시대 기생으로서 4대 여류시인에 속한 인물 아닌가. 기류문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38세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당대의 문장가들과 사귀며 주옥같은 시가를 남겼다. 허균 등과 서문을 주고받은 것으로 기록에 전한다. 죽은 뒤엔 고을 현리들이 그녀의 시집 <매창집>을 출간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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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통한 등산코스 중에 있는 인장암. 바위 모양이 꼭 도장같이 생겼다 해서 붙은 명칭이다.

초입부터 감동이 밀려온다. 빼어난 자연에 왕과 최고의 기생, 시대를 거슬러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 남긴 흔적이다. 주변을 죽 훑어보니 영락없는 명당이다. 풍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만한 산세와 지형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왕이 3년이나 놀다갔고, <정감록>에서도 변산 동쪽의 길지로 통하는 바로 그 땅이다.

다시 한 번 두리번거리다 산길로 접어들었다.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인지 아직 등산로가 반들반들 하진 않다. 바닥의 돌들이 투박스럽다. 이정표는 ‘쇠뿔바위 3㎞, 청림마을 5㎞’라고 가리키고 있다. 등산로 고도가 잠시 완만하다 싶더니 이내 가팔라졌다.

지난 5월초에 개통했는데 벌써 많은 산악회가 다녀간 듯 깨끗한 리본이 나무 가지 여기저기 걸려있다. 전국의 각종 산악회 이름이 다 나온다. 원래 나무들이 많아서 그런지 숲도 우거져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어수대에서의 GPS고도가 불과 100m도 안된 상태에서 계속 급경사로 오르고 있다. 겨우 한 능선이 나온다. GPS로 보니 311m다. 200m이상을 줄곧 올라왔다. 등산로는 거의 외길 수준이다. 초반 어수대에서 여러 갈래의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 듯했지만 조금 올라와서는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없다.

길을 안내한 공단 김영배씨는 “어수대에서 왼쪽으로 가는 길에는 묘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묘지 주인들이 자주 벌초를 하기 때문에 길이 나 있는 것이고, 등산로는 아닙니다”고 했다. 조금 더 오르니 능선 한쪽에 묘지 한 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높은 곳에 운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와 있을까 싶다.

이제부터는 조금 완만한 능선이다. 서서히 오르다보니 400m 고지도 어느덧 지나쳤다. 휴일이라 등산객들이 북적거렸다. 서쪽 반도에 있는 산인데도 경상도 말씨가 자주 들렸다. 거제에서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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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은 대부분 악산이지만 참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바위가 나온다. 저 멀리 부안호 뒷자락을 살짝 비쳐준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능선줄기가 의외로 많이 보인다. 지리산 높이의 절반조차 안 되지만 ‘작은 지리산’같이 능선이 겹겹으로 쌓여 있다. <정감록>의 숨어 지낼 만한 곳으로 꼽는 이유를 알만했다.

공단 김영배씨도 거들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의외로 조난당하는 등산객들이 많습니다. 낮다고 쉽게 봤다가 한참을 헤매다 하루 지나서 기진맥진해서 구출되는 등산객이 일 년에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500m도 안 되는 산에서 조난이라, 과연 그럴까 싶기도 했지만 실제 구출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지. 실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슬슬 생겼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또 바로 그 옆에 묘지 2기가 있다. 거의 정상에 다다랐는데 여기까지 묘지를 쓰다니 정말 예사롭지 않다. 웬일 일까? 묘지 주변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능선인데도 나무가 많아 계속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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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바위 정상 봉우리 맞은편에는 내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이 있다.

정상 봉우리에 도착했다. GPS로 485m를 가리켰다. 내변산의 최고봉 의상봉(509m)이 바로 맞은편에 있다. 비슷한 눈높이의 정상에 군부대시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의상봉은 마천대라고도 하며, 신라 고승인 의상대사가 이곳에 절을 세워 의상사라고 해서 의상봉이란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잠시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의상암을 노래한 고려시대 김극기의 시 ‘의상암’을 감상해보자. 그는 입만 열면 바로 문장이 되고 시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민첩 기암은 하늘 높이 비꼈는데 / 구름 밖에 이르니 길이 막히네 / 의상대사 남긴 여운 이리도 좋아서 / 하늘 높이 자란 잣나무 밤바람을 노래하네’

쇠뿔바위도 발아래 보인다. 소의 뿔을 닮았다고 해서 쇠뿔바위라고 한다는데 정상에서는 아무리 쳐다봐도 쇠뿔인지 알 수가 없다. 맞은편 도로에서 마주보고 있으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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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양쪽 뿔을 닮았다고 해서 쇠뿔바위라고 불리는 쇠뿔바위 위를 등산객들이 지나고 있다.

쇠뿔바위는 소가 앉아 있는 모습의 좌우 두 개의 뿔이다. 그러면 지금 소의 목 위치쯤에 서 있는 셈이다. 김제에서 부안군청을 지나 통정리에서 넘어오는 곳에 ‘우슬재’라는 고개가 있다. 소의 무릎고개라는 말이다. 그곳이 누워있는 소의 무릎이고, 쇠뿔바위가 머리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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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바라본 쇠뿔바위. 소의 뿔 같이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번쩍 떠오르는 게 있다. 그럼 소의 가슴․배에 해당하는 부분은? 바로 어수대와 지금 계속 오르고 있는 능선길이다. 어미 가슴 같이 따뜻하고 전망 좋은 곳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명당’인 것이다. 이제야 묘지가 계속 있었던 이유가 이해됐다. 근처에 묘지 한 기가 또 보인다….

<정감록>에서 명당으로 꼽은 지역인 청림마을도 눈 아래 펼쳐져 있다. 의상봉 반대편으로는 우금암(우금바위)도 보인다. 시인들이 ‘우금암’이란 이름을 바위벽에 새겨놓았다고 한다. 우금암이란 바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바위의 동쪽에 성첩(城堞)과 장대(將臺)가 있다. 옛날 묘연왕이 이 골짜기에 숨어들었는데, 우씨(禹氏)와 김씨(金氏) 두 장수가 묘연왕을 무찔렀다고 해서 우금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백제 멸망 이후엔 그 후손들이 우금암을 중심으로 우금산성을 쌓아 부흥운동을 벌인 본거지였다. 많은 역사가 서린 곳이다.

정상 주변뿐만 아니라 내변산 대부분이 가만히 살펴보니 악산(嶽山)이다. 악산은 기본적으로 기도발이 잘 받는 곳이라고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에 나온다. 하긴 여기도 명당에다가 몇몇 종교의 성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분명 명당은 명당인가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쇠뿔바위에 올라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쇠뿔바위는 출입금지구역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모두들 줄을 넘어갔다. 소의 머리 위에서 다들 기념촬영하고 되돌아왔다. 이정표엔 ‘어수대 3.0㎞ →, 청림마을 2.0㎞ ↑’로 방향과 거리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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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바위 하산길에서 바위 옆으로 난 등산로로 등산객이 지나고 있다

청림마을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갑자기 급경사를 이룬다. 보조 밧줄이 걸려 있지만 대부분 등산객들은 한번씩 미끄러졌다. 밧줄을 잡아도 미끄러질 정도다. 가끔 더덕 캐는 사람들이 있다. 하긴 몇 십 년 동안 잠겨있던 문을 최근 개방했으니 산나물이 천지로 널려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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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다본 쇠뿔바위

새재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도 묘지가 여기저기 있다. 새재에 도착했다. 새가 넘어간다는 조령(鳥嶺)이다. 고개길에 많이 띄는 이름 중의 하나가 새재다. 문경새재는 높아서 새도 쉬어간다고 해서 이름이 붙어졌는데, 이곳은 별로 높지도 않은데 새재란 이름으로 부른다.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청림마을 0.3㎞ ↑, 쇠뿔바위 1.7㎞․ 어수대 4.7㎞ ↓’ 이정표가 붙어 있다. 청림마을에 거의 다 왔다. 등산로는 무난하다. 새재에서 중계교로 가는 등산로도 개통이 됐으나 아직 완전히 정비가 안 됐고, 간혹 위험한 등산로가 나와 아직 권하는 수준이 아니라고 동행한 김영배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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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장암삼거리에서 세봉삼거리로 가는 등산로 중에 만나는 숲은 마치 정원 같다.

마을이 가까워오자 약재로 쓰는 강황과 오가피나무 군락지가 있다. 새순은 쌈으로 먹기도 한다. 마을은 한가하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명당이지만 유난히 화(禍)를 많이 입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마 지리산 같이 높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화를 입고도 가는 곳마다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와 도 지정 문화재가 54종 370여점에 이를 정도다.

변산에 널린 게 역사고 유적이고 문화재인 셈이다. 차분히 다시 한번 돌아보고픈 그런 산이다. 명당과 풍수에 대해서도 이 산을 통해 더더욱 알고 싶어진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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