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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史庫, 왜 산으로 갔을까?… 잡초만 무성한 태백산사고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충주, 성주의 사고(史庫)가 완전히 불타 사라지면서 기록을 보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험준한 산 위에 사고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닌 지방의 4곳에 분산 배치했다. 그 4곳이 강화도의 마니산사고,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사고,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사고,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사고 등이다. 그것이 조선 후기 선조 때인 160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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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태백산사고는 4동의 건물에 꽤나 터가 넓은 곳이었다. 지금은 비록 잡초만 무성하게 남았지만. 그리고 수호사찰이있던 각화사는 수호도 못 하면서 복원도 반대하는 사찰로 변했다.

이후 병자호란으로 마니산사고가 크게 파손돼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묘향산사고도 적상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조선 후기 지방의 4사고는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으로 확정했다. 또한 사고 주변에 승군을 두어 사고를 안전하게 지키게 했다. 이른바 수호사찰을 둔 것이다. 조선시대엔 승려들이 군인의 역할을 상당히 크게 했다. 사명대사 등도 그 일환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해서 전등사는 정족산사고, 안국사는 적상산사고, 각화사는 태백산사고, 월정사는 오대산사고를 지키는 기능을 맡았다.

-각화산 정상 남쪽 중턱에  자리한 잡초만 무성한  태백산사고지.jpg

해방 이후 누군가의 방화에 의해 소실된 태백산사고지엔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길 때까지 존속했다. 태백산사고는 태백산 주봉에서 남쪽으로 약 12㎞ 떨어진 각화산 뒤편 사고지골짜기에 있다. 수호사찰인 각화사로부터 각화산 정상 방향 북쪽 2㎞ 지점이다.

-태백산사고지.jpg

태백산사고지에 대산 안내설명도.

태백산사고는 실록각․선원각․포쇄각․근천각 등 여러 건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 그 터는 소실됐고, 잡초만 무성히 남아 태백산사고지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300여 년 간 보관됐던 조선왕조실록은 1910년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후 규장각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옮겨 보관하다가 1930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됐다. 그 뒤 1985년 부산 정부기록보존소에 옮겨져 보관되다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에 있다.

-해방이후 찾아낸 사고지터.jpg

1988년 겨우 찾아낸 태백산사고지터. 안타까운 현실이다.

조선왕조실록 이관 후 태백산사고는 약 30여 년 간 방치돼 있다가 해방전후 누군가에 의해 방화로 완전 소실되었고, 이후 잊혀진 채로 수십 년이 흘렀다. 1988년 발굴 정비계획으로 건물의 유구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사적 제348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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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2007년엔 경북 봉화군에서 국비 등 78억원을 들여 태백산사고를 원형대로 복원키로 했으나 수호사찰인 각화사의 반대로 무산됐다. 사고지를 지키라고 만든 절이 사고를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형 복원도 반대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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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 입구다. 여기서 각화사 관련 인물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각화사는 복원작업이 이뤄지면 관광객들이 사찰을 지날 수밖에 없어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데다 식수원으로 쓰는 계곡물도 오염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더욱이 “사서 없는 빈 창고에 불과한 어설픈 복원작업보다는 차라리 사고지를 그냥 두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난 7월초에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각화사를 찾았다. 한 관계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가려고 하느냐. 지금 잡초만 우거져 길도 찾을 수 없고 섣불리 가다가 뱀에 물려 죽는 수도 있다”고 협박 아닌 협박성 대꾸를 했다.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수준’만을 확인하고 어이가 없어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3 Comments

  1. 조 사 무

    07.27,2011 at 11:54 오후

    일본이 가끔 얄밉지만…
    그들의 역사보존의식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2. 불타는 노을

    07.28,2011 at 1:41 오후

    염불보다는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3. 聖壽山

    07.28,2011 at 6:11 오후

    나머지 사고들도 현재 상황을 조사하여 알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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