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봉 이정표 바로 밑에는 일월산 산신각이 있다. 일명 황씨부인당으로 불린다. 일월산을 온통 뒤덮고 있는 산신 기도처는 황씨부인과 관련돼 있다. 황씨부인이 일월산 산신격인 셈이다. 황씨부인은 일월산 자락 마을에 살던 처녀였다. 그녀를 사모하던 마을 청년 두 명 중 한명과 결혼한 첫 날 밤에 사건이 발생했다. 신랑은 잠자리에 들기 전 화장실을 갔다 오다 방문에 칼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신랑은 자신의 연적이 죽이러 온 것으로 착각, 그 길로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칼 그림자는 다름 아닌 마당의 대나무 그림자가 방문에 비친 것이었다.
일월산 정상 비석. 뒷면에 이문열씨의 글이 있다.
그 사실을 모른 황씨부인은 원삼과 족두리를 벗지 않은 채 신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깊은 원한을 안고 죽었다. 그녀의 시신은 몇 개월이 지나도 첫날밤 그대로였다. 오랜 시간 뒤 이 사실을 안 신랑은 잘못을 뉘우치고 신부의 넋을 위로하기로 했다. 신부의 시신을 일월산 부인당에 옮긴 후 사당을 지어 그녀의 혼령을 위로했다. 그 뒤로 황씨부인이 일월산 사당의 산령 주인이 된 것이다. 일월산에서 산나물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황씨부인이다. 아마 황씨부인이 일월산 산나물도 관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일자봉 이정표 주변은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5월18~20일까지 열리는 산나물 축제 때는 이곳에까지 차를 가져와서 산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군부대를 둘러싸고 있는 순환등산로를 포함해서 여러 갈래의 등산로도 나 있다. 그 중의 한 곳인 가장 넓은 임도로 접어들었다. 참나무숲길이 바로 이어졌다. 산나물이 자라기 가장 좋은 조건이 조금 습하면서 참나무가 우거진 숲이라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딱 그 숲이다.
일월산 용화계곡의 아름다운 모습.
‘일자봉 1.5㎞’ 이정표도 보인다. 정상을 향해, 아니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 체험장을 향해 걸었다. 나무 가지에 각종 산악회 리본이 걸려 있다. 이곳은 산나물길이 곧 등산로인 것이다. 김씨는 “산나물 축제기간 중 20만~30만 명이나 되는 방문객이 산나물을 캐기 위해 일월산을 찾는다”며 “그 기간 중에는 일월산 자체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고 밝혔다.
등산로 옆으로 멸종위기종인 노랑무늬붓꽃이나 현호색 등 야생화들이 낙엽 사이로 새순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언듯언듯 보인다. 이들을 바라보면 생명의 경외감이 들 정도다.
일월산 쿵쿵목이에 있는 돌탑. 여기도 무속인들이 기도를 올리곤 한다.
숲은 참나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중간 중간에 산나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간벌한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쿵쿵목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해발 1160m를 가리키고 있다. 땅 속이 빈 것 같이 쿵쿵거린다고 해서 쿵쿵목이란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제자리에 서서 점프로 땅을 밟아보니 푹신푹신 하면서 속이 빈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정표 옆에는 돌탑이 있고, 돌탑을 두고 기도하는 조그만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촛불 흔적이 있다. 일월산에는 산나물 자생지 아니면 기도처 같다는 느낌이다.
일월산 산나물 체험장에서 많은 산나물꾼들이 산나물을 채취하고 있다.
쿵쿵목이부터 등산로 옆에 ‘산림자원보호구역’이란 푯말이 등산객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곳이 바로 영양군에서 관리하는 공식 산나물채취구역이다.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잡목들을 전부 제거하고 산나물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 산나물은 아직 시기상조라 새순 찾기도 쉽지 않지만 야생화 바람꽃이 꽃을 피워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복수초도 낙엽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생명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산나물과 야생화가 공생하며 아름다운 초목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일월산 정상 전망대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고도는 GPS로 1130m 된다. 출발지역보다 오히려 해발이 더 낮다. 조금 경사가 있는 산사면 전체를 산림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 등산객의 발길이 닿지 않도록 산나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조성했다. 일월산은 해발이 높기 때문에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자라는 산나물이나 야생화부터 낮은 지역에서 자라는 것까지 종류도 어느 지역보다 다양하고 많은 편이라고 한다.
원추리 군락지가 나왔다. 산나물은 대개 군락을 이뤄 자라기 때문에 한 개체를 발견하면 주변에 여러 개체를 반드시 확인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원추리가 여기저기 새순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 원추리 옆에 각시원추리도 작은 꽃을 피우고 있다.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도 여기저기 보인다. 그 옆으로 말라비틀어진 고사리들이 산재해 있다. 산나물은 어린 새순을 식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크게 자라면 잡풀에 지나지 않는다. 잡풀같이 고사리들이 널브러져 있다. 명이나물도 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천연기념물인 산양 배설물도 흩어져 있다. 동식물이 함께 사는 자연의 공생 흔적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일월산 등산 안내도.
마침내 일월산 정상에 도착했다. 나무 데크로 조성한 널찍한 전망대와 함께 정상 비석도 보인다. 널찍한 전망대엔 산나물꾼들이 나물을 캐다 힘들면 잠시 쉬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모여 도시락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이곳이 연초 해맞이 축제 때 동해의 해맞이 장소로 사용된다. 정상에서 동쪽 방향으로 굽이치는 듯한 능선이 여러 겹으로 펼쳐져 있다. 그 위에 우뚝 솟은 일월산이 제일봉으로 해와 달을 맞이하는 것이다.
일월산 선녀계곡
정상 비석 뒷면엔 소설가 이문열씨가 ‘日月頌辭(일월송사)’라는 멋진 글을 써놓았다. ‘崑崙(곤륜)의 정기가 해 뜨는 곳을 바라 치닫다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으로 흘러 동해 바닷가에 우뚝한 靈山(영산)으로 맺히니, 이름 하여 일월산이다. 해와 달을 아울러 품은 넉넉한 자락은 그윽한 옛 고을 古隱(고은)을 길러내고 삼엄한 기상은 거기 깃들어 사는 이들에게 매운 뜻을 일깨웠다. (중략) 이제 옛 古隱은 文鄕(문향) 英陽(영양)으로 자라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고 섰으니, 아아, 일월산이여. 그 기상 그 자태 바뀌고 다함이 없으라. 우리 영양과 더불어 길이 우뚝하라.’
일월산 정상 전망대에 많은 등산객과 산나물꾼이 쉬고 있다.
산나물 캐는 사람들이 군부대 앞까지 차를 몰고 와서 산나물 캐면서 등산로로 한 바퀴 돌면 등산도 하면서 산나물을 캐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영양군청 김상수씨는 강조했다. 김씨는 “일월산에 참나물, 취나물, 곰취 등이 아마 전국에서 제일 많이 날 것”이라며 “지금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산나물들은 대부분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제대로 된 산나물은 5월 돼야 본격 출하된다고 덧붙였다.
산나물 채취 계절인 5월이다. 산으로 들로 산나물을 찾아 모두 산나물꾼이 되어보자. 만물이 생동하는 5월을 맞아 자연을 만끽하면서 일월산의 정기를 듬뿍 받고 자란 산나물을 채취하는 경험은 분명 이색체험이 될 것이다.
푸르름
05.19,2012 at 7:01 오후
한 번 산나물 채취하러 가 보고 싶은 곳이네요, 그런데 워낙 먹어서리…….
관조자/觀照者
05.30,2012 at 8:47 오후
구경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