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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우리나라 사적 제1호는 무엇이고 어디일까? - 마운틴
우리나라 사적 제1호는 무엇이고 어디일까?

우리나라에는 많은 유형·무형문화재가 있다. 국보부터 보물·천연기념물·명승 등 유형문화재와 전승되어온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지정된 무형문화재 등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다. 그 많은 문화재 중에 사적 제1호는 무엇일까? 국보 제1호는 다 알다시피 지금 현재 한창 복구 중인 남대문(숭례문)이다. 남대문은 남쪽에 있는 문이고, 그 이름이 숭례문인 것이다. 보물 제1호는 동쪽에 있는 문인 동대문이고, 그 이름은 흥인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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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적 제1호인 포석정에는 정자는 없고 22m의 물이 흐르는 물길만 남아 천수백 년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국보와 보물은 조금 알려졌지만 명승은 조금은 낯설다. 명승 제1호는 강릉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다. 원래 이 산의 이름은 청학산이었는데, 산의 모습과 경치가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율곡 선생이 소금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오대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곳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제1호는 대구 달성의 측백수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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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전체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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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입구에 있는 포석정에 대한 설명.

그러면 사적 제1호는 바로 경주 포석정이다. 1963년 1월 21일 지정됐다.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며, 조성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5) 때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는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였다. 포석정은 이를 본 따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포석정(鮑石亭)은 한문 그대로 읽으면 전복형태의 돌이라는 의미다.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 있다. 전복 모양의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에 이른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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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문화해설사가 방문객들에게 포석정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으나 오늘날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뿐이다.

신라말기 경애왕이 이곳에서 화려한 연회를 벌이던 중 927년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그 기록이 <삼국사기> 권제12에 나온다. ‘임금이 비빈․종척과 더불어 포석정에 가서 잔치하며 즐겁게 놀던 때라 적병이 닥침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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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문객이 포석정 주변을 돌고 있다.

그러나 <화랑세기>필사본에서 포석정을 포석사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1998년 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에 큰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또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제기류도 출토됨에 따라 포석정이 연회를 즐기던 곳이 아니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장소였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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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주변에 수백년은 족히 된 듯한 노거수들이 역사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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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입구엔 기묘한 노송들이 많아 눈에 확 들어온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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