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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모험의 아이콘’ 한비야와 엄홍길, “여생은 봉사하며 살 거예요.”

한비야와 엄홍길, 엄홍길과 한비야, 두 사람을 딱 보는 순간 뭔가 공통점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한 사람은 세상의 위험하고 헐벗고 못 사는 곳을 찾아 국제구호기금을 전달하는 국제구호팀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의 가장 위험하고 높은 곳을 찾아서 도전했던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한 사람은 오지여행가에서 변신, 국제구호를 운명으로 여기며 세상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른 사람은 도전하며 신세졌던 삶을 봉사의 삶으로 바꿔 네팔과 한국에 휴머니즘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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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모험가와 산악인인 한비야씨와 엄홍길 대장이 북한산 형제봉 자락에서 손을 맞잡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도전과 모험, 봉사로 귀결된다. 이들이 그동안 겪었던 삶을 책으로 낸 제목을 보면 조금 파악할 수 있다. 한비야씨가 쓴 책 제목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전4권 등이다. 도전과 모험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엄홍길 대장이 낸 책 제목도 내용의 본질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불멸의 도전>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작은 도전자> 등이다. 한비야씨 보다 도전을 조금 더 앞세운 제목과 내용이다. 그 외에 한비야씨는 <그건, 사랑이었네>를 냈고, 엄홍길 대장은 <내 가슴에 묻은 별> <히말라야에서 꽃 핀 우정> 등을 발간했다. 두 사람 모두 도전과 모험의 삶을 담은 책을 낸 반면 아직 봉사에 관해서 나오지 않았다. 아마 조만간 발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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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가 엄홍길 대장과 북한산 자락을 오르다 잠시 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아니 같이 산행을 하기 위해 먼저 한비야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원체 바쁜 사람들이라 약속시간 맞추기가 예삿일이 아니었다. 몇 번의 조정 끝에 성사됐다. 한비야씨의 메일 말미에 ‘나 이번에 2년여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어요. 너무 기쁘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맞아, 몇 년 전 만났을 때 백두대간 종주를 꼭 하고 싶다고 했지’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2009년도에 낸 <그건, 사랑이었네>에서도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못 한 일: 백두대간 종주, 각 대륙의 최고봉 등정, 배 타고 지구 세 바퀴 반 돌기,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 100인 파워인터뷰’ 등이다. 하고 싶은 일을 종목별로 리스트를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나이별로 리스트를 만들어 ‘아직 체력이 왕성할 50대에 할 일: 구호 현장 최전선에서 일하기, 백두대간 종주, 각 대륙의 최고봉 등정, 배 타고 지구 세 바퀴 반 돌기’ 등을 적고 있다. 나이 든 척, 늙은 척하는 50대가 들으면 무색할 정도다. 그런 그녀가 50대 중반 접어드는 나이에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으니 기뻐할 만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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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년여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한비야씨가 마지막 진부령 비석 앞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 한비야 제공

엄 대장을 만나자마자 백두대간 종주 얘기부터 꺼낸다. “보통 50회 만에 끝내는 종주를 한 번 가면 1박2일에서 2박3일까지 지내면서 최대한 빨리 마쳤어요.”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이 별장에서 가수 전영록, 영화감독 이장호, 소프라노 주진아 등 몇몇 지인들을 초청한 가운데 축하파티까지 치러줬다고 자랑했다.


2년여 걸쳐 백두대간 종주 마쳐


엄 대장의 질문이 바로 들어간다. “왜 백두대간 종주를 했어요?

“등산하는 사람들의 로망이 백두대간 종주이고,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니예요. 또한 실컷 걸어보고 싶어서요.”

지구를 세 바퀴 반 이상이나 돈 사람이 실컷 걸어보고 싶어서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니…. 개인의 기준이 확실히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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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이 한비야씨에게 북한산 자락의 봉우리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엄 대장은 백두대간을 했습니까?

“아니요.”

“역시 등잔 밑이 어둡다니깐. 히말라야 고봉을 등반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 산은 시시해서 잘 안가죠. 근데 산을 그렇게 다녔으면 무릎은 괜찮으세요?”

“무릎은 전혀 이상 없고, 한창 등반할 때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큰 부상을 당해 지금 걷는데 지장이 좀 있습니다.”


엄 대장은 발목을 보여주며 실제 정상인과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한비야씨는 “아니, 그런 발목으로 어떻게 히말라야 고봉들을 차례로 등정했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엄 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말 잘 안 듣는 중고생들을 데리고 2박3일 정도 하면 어떨까요. 엄 대장이 시작하면 적극 지원 할게요. 제 발로 걸어가고 야영하면서 땀 흘리면 청소년들끼리 유대감도 생기면서 자신감과 성취감, 도전의식을 동시에 심어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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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과 한비야씨가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금 일부 지역에서 벌써 하고 있습니다. 강북구청에서 12개 중학교 2년생을 대상으로 각 학교에서 5명씩을 추천받아 총 60명을 데리고 한 달에 한 번 산행을 하고, 스포츠클라이밍도 하는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누구랑 같이 합니까? 지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냥 봉사요원들이랑 해요.”


“60명이면 조금 많은 느낌이고, 10명 전후로 줄여 참가자 전원이 한 마디 이상을 할 수 있게 하면 유대감과 자신감이 더욱 생기지 않을까요. 엄 대장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는 분위기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한비야가 그런 행사 때 ‘몰래온 손님’으로 깜짝 방문하면 청소년들의 호응도도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초청하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그런 기회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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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가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고 있다. 사진 한비야 제공

“1박2일이나 2박3일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백두대간 구간을 계속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3년에 한번씩 한번이라도 참가한 청소년들을 모두 모일 기회를 가지면 그들이 얼마나 뿌듯해 하겠습니까. 백두대간이 청소년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거죠. 엄 대장이 안 하면 내가 하겠습니다. 지금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지만 재능기부도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재능을 어떤 형태로 나눠줄 것인가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 같아요.”


이화여대서 국제구호학 강의


그런 한비야의 재능은 다 알다시피 ‘지도 밖으로’ 나간 ‘바람의 딸’로 규정된다. 그 바람의 딸이 가진 재능과 운명이 마주치거나 타협해간 장면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그녀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만 7년간 지구 세 바퀴 반을 돌며 세상의 오지란 오지는 다 돌아다녔다. 그것도 여자 혼자서. 방문한 국가가 70여 개국 된다. 이를 ㎞로 환산하면 14만여㎞나 된다. 450㎞인 서울~부산을 311번 걸었다는 얘기다. 고산자 김정호도 이 정도 걸었을까 싶다. 그 내용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담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05년 9월 초판을 찍은 이래 2년 만에 70쇄를 훌쩍 넘었다. 아마 지금은 100쇄를 넘지 않았을까 싶다. 100만부 넘게 판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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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이 한비야씨에게 히말라야 16좌 등정 기념 타올을 주며 기념촬영 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녀의 어릴 적 별명은 다름 아닌 ‘여자 김정호’였다. 잦은 이사와 유달리 호기심이 많았던 한비야는 이곳저곳 누비다 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이사 갈 때마다 골목길, 건물 등을 꼼꼼히 표시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나중 그녀는 이를 토대로 아예 동네지도를 만들었다. 물론 그 지도를 따라 다시는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없었다.

한비야는 1999년 지구를 도는 일을 그만 뒀다. 다른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의 거대한 중국을 가보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한다면 하는 여자다. 여태 목표를 세운 뒤 하지 않은 일이 없다. 중국 구석구석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감을 잡았다. 그 결과 중국견문록이란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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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가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화방재 부근의 구상나무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에서 1년간 공부하고 있을 때 그녀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본 월드비전 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처음 ‘월드비전’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무슨 세계안경점 주인인 줄 알았다. 세계안경점 주인이 안경을 ‘지도 밖으로’ 홍보할 사람이 필요한가 라고 여겼다. 그 월드비전이 오지여행가였던 그녀를 국제구호요원으로 화려하게 변신시킬 줄이야 당시로서 알기나 했겠나. 실제로 그녀는 오지여행가 다음의 삶을 국제구호단체에서 일 하는 것을 꿈꾸고 있던 터였다. 어쨌든 그녀는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의 구호요원으로 참가할 것을 승낙한다. 2000년부터 월드비전 구호요원으로 일 하면서 세계 100여 개국을 다니며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아마 지구 열 바퀴 이상은 돌았을 것 같다. 월드비전의 일은 2009년까지 계속된다.

<‘바람의 딸’ 한비야 “내년 초 야영 같이 갈 사람 찾습니다.”>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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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한비야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기념으로 꽃을 받자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한비야 제공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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