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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블라디보스톡 ‘피단산’에서 발해의 유적을 보다… - 마운틴
블라디보스톡 ‘피단산’에서 발해의 유적을 보다…

<북위 43° 동토의 땅 블라디보스톡에도 등산할 산과 전설이 있다>서 계속

피단산 계곡은 끝나고 갑자기 길이 가팔라진다. 숲은 더욱 원시림으로 변한다. 편백나무같이 쭉쭉 뻗은 아름드리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간혹 고목은 넘어져 자연상태의 숲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의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산 같다. 고르디브는 아버지로부터 이 산에 호랑이와 곰이 산다고 들었으나 여태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분위기상으로는 어딘가에 살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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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가이드 백선웅씨와 박태길 대표가 계곡 옆 등산로로 내려오고 있다.

나무에 붙은 문구도 자주 보인다.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는 문구도 있다. 눈길을 끄는 문구가 하나 나온다. 왼쪽 방향을 가리키며 우리의 막걸리 파는 것과 같이 ‘보드카 판매’라고 적혀 있다. 왼쪽을 보니 전혀 보드카 파는 분위기가 아닌 단순한 깊은 숲뿐이다. 누군가 장난으로 적어놓은 듯했다. 그래도 ‘보드카 판매’ 이정표가 왠지 매우 친숙해 보인다. 이 깊은 산중에 사람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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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나무에 사람 모형을 새겨놓고 있다. 바로 그 위엔 ‘자연을 사랑하고 존경하자’는 문구가 종이에 써져 있다. 남녀가 야영을 하면서 나무를 잘라 불을 피워 코펠을 내놓고 있다.

가파른 등산로를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능선 위로 올라섰다. 여러 사람이 쉴 수 있는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고목이 넘어져 의자를 대신했다. 젊은 고르디브는 펄펄 나는 반면 백선웅씨는 지쳐서 얼굴이 뻘겋다. 도저히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상황이다. 이렇게 높은 산은 생전 처음이라고 한다. GPS는 해발 991m를 가리키고 있다. 백선웅씨만 이곳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정상을 향해 다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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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단산 능선 한 고개를 올라서자 넓은 평지가 나와, 일행이 쉬고 있다. 왼쪽이 백선웅씨, 중간이 산악가이드 고르디브.

이제부터 완만한 능선이다. 걸을 만하지만 갑자기 구름이 자욱이 드리운다. 주변에 보이는 게 없다. 바람까지 동반한 비도 조금씩 내린다. 멀리 조망은커녕 주변조차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낭패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최적의 상태를 담기 위해 카메라를 이리저리 조절해본다.

희한한 나무가 한 그루 눈에 띈다. 허벅지 높이에서 절묘하게 의자같이 굽이져 다시 곧게 자라고 있다. 고르디브는 “나무 의자”라고 했다. 직접 앉으며 앉아보라는 시늉을 한다. 일행들도 따라 앉아 본다. 의외로 편안하다. 나무 위에는 울긋불긋 리본들이 걸려 있다. 성황당 나무들의 표시란다. 우리와 비슷한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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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같이 생긴 희한한 나무.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거세다. 거친 바람에 가지만 앙상히 드러낸 자작나무들이 바람방향으로 가지를 뻗어 있다. 평소에도 바람이 많이 분다는 얘기다. 동해가 저만치 보일 듯한데 짙은 구름 때문에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가끔씩 나오던 바위가 이제부터는 너덜지대로 변한다. 약간의 비가 내려 미끄럽다. 너덜지대 사이로 울긋불긋한 리본이 달려 있는 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정말 신이 갖다 놓은 듯 유난히 바위가 많다. 젊은 가이드 고르디브는 잘도 올라간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은 간다고 하더니만 정말 날다람쥐 같이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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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가이드 고르디브와 백선웅씨가 가파른 등산로를 내려오고 있다.

앞장서던 고르디브가 멈추더니 뭔가를 가리킨다. 뒤따르던 무아투어 박태길 대표가 발해석관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석관같이 보이기는 한데 안내판이 전혀 없으니 알 수가 없다. 박 대표는 “이전에 이곳 한인회 회장과 같이 와서 발해석관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말 발해석관이라면 이국만리 타국이지만 우리의 유적이 이렇게 방치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우리 역사학자들이 빨리 달려가 고증을 해서 사실이라면 러시아의 양해를 얻어 안내문이라도 설치해놓았으면 좋겠다. 주변엔 성황당에 걸려 있는 리본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돌이라는 사실을 러시안들도 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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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단산 정상 올라가는 길에 발해석관으로 알려진 돌무덤이 한 기 있다.

피단산 등산 전날 러시안인 아나톨리 알렉산드로비치와 같이 저녁을 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교 램벨 교수가 학생 20여명과 함께 몇 년 전 이곳 사람들에게 구전되어온 얘기들을 확인하기 위해 피단산에 유적조사를 했다고 한다. 피단산의 전설을 확인하고, 피단산과 주변에 산재한 발해의 유적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당시까지 지명조차 없었던 산이 램벨교수의 조사 이후 피단산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그는 “보통 민족은 수세기 지나면 역사와 언어가 없어지는데, 한국은 고유의 민족과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뿐만 아니라 피단산은 가을엔 단풍으로 매우 아름다워 러시아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라고 덧붙였다. 그도 5번 정도 올랐다고 했다. 이 정도면 그 석관이 발해의 유물일 가능성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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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석관으로 추정되는 돌무덤.

안개와 구름 때문에 주변을 볼 수 없지만 앞길만 보고 간다. 누군가 야영을 한 듯한 평지가 정상 직전에 나온다. 텐트 부러진 것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한국의 야영객이 이곳에 오면 좋아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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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 위에 사람 발톱 모양으로 생긴 바위도 있다.

드디어 피단산 정상에 도착했다. GPS로 해발 1331m다. 현장엔 1339m로 돼 있다. 정상 주변 동판엔 러시아어로 뭔가를 두 군데나 써놓았지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통역가이드인 백선웅씨가 없으니 너무 불편하다. 정상 나무엔 울긋불긋한 리본에 축구화까지 걸려 있다. 신앙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 옆엔 자전거 부러진 것까지 방치돼 있다. 헬기가 추락한 듯 프로펠러까지 있다. 정말 온갖 잡동사니가 정상에 널브러져 있다. 정상도 성황당 분위기라면 조금 엄숙해야할 것이지만 산만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주변 조망까지 안 되니 영 별로다. 그래도 피단산 정상이다. 지금은 남의 나라가 된지 오래지만 그 옛날 우리의 선조인 발해의 태조 대조영이 이 자리에 섰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니 잠시 숙연해진다. 감개가 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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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투어 박태길 대표가 블라디보스토크 피단산 정상에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정상은 축구화까지 걸려 신선한 분위기보다는 산만한 분위기다.

불순한 날씨로 정상에 얼마 있지 못하고 다시 하산이다. 하산길은 왔던 길 그대로 내려간다. 잠시 발길을 옮기다 다시 되돌아본다. 너덜지대 위에 우뚝 솟은 피단산, 고구려 후손이 세운 발해, 그 태조 대조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을 호령했을 장면을 회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동안 그 가슴을 쓸어안고 블라디보스토크 피단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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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부근은 와넌히 돌로 둘러싸여져 있다.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와 ‘인디애나 존스’의 오지탐사대 같은 짚차에 올라탔다. 아무 일이 없었으면 여기서 끝냈을 텐데, 돌아오는 짚차 안에서 희한한 경험을 했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혹시 앞으로 피단산에 갈 등산객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기에. 돌아오는 짚차 안에서도 스릴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좌석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 다시 그 상황을 떠올리는 순간 또 속이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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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너덜지대를 지나야 정상에 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에 눈길을 끌었던 텐트는 하산길에 걷어지고 없었다. 야영을 끝내고 갔구나 싶었다. 근데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이상한(?) 현지 남녀를 만났다. 상의는 런닝 정도의 옷만 입고 하의는 남자는 수영복, 여자는 비키니만 입고 있었다. 눈에 확 들어왔다. 아마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남녀 같았다. 잠시 보고 있는데, 차를 세워달라고 손을 드는 게 아닌가. 가이드 겸 운전수인 고르디브가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속으로는 ‘이게 웬 떡인가’ 싶었지만 겉으로는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다. 수영복과 비키니만 입은 남녀가 좌충우돌 울렁거리는 짚차 뒷좌석에 탔다. 마침 여자가 내 앞에 앉았다. 그래도 남자 체면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손바닥으로 차벽을 밀며 용을 썼다. 비키니의 여자는 내 등산화 위에 앉았다. 마음은 신발을 벗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런 자세로 약 40분을 갔다. 앞에 있지만 마음대로 볼 수도 없고,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고문 중의 고문이었다. 슬쩍 곁눈질로 다리를 보면 호기심만 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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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운항하는 DBS크루즈페리 선상 위에서. 늘씬한 러시아 미녀들이 많다.

한번 상상해보라. 텐트를 단 배낭을 메고 수영복과 비키니 입은 남녀가 산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앞에 앉은 얼굴을 보니 정상이 아닌 것 같지는 않았다. 40분 뒤 이들이 내리고 난 뒤 아쉽기도 했지만 한결 홀가분했다.

혹시나 알 수 있으랴. 앞으로 피단산 등산가는 사람한테 이런 행운인지 불행인지를 겪을 지.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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