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 맞아 돌아본 독립정신 기린 연해주 신문들

매년 4월7일은 신문의 날이다. 서재필 박사가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의 기관지로 1896년 4월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순국문 신문이다. 신문의 날은 1957년 정부에서 독립신문의 창간정신을 기려 매년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한 것이다. 이후 여러 지역에서 많은 신문이 창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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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2월26일자로 창간한 연해주 최초의 신문인 ‘해조신문’.

하지만 해외 독립운동의 전진기지였고, 많은 독립투사들이 활동했던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신문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미 살펴봤던 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 최초 한인촌 신한촌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이번엔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신문에 대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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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1월에 창간한 친러시아적 입장에서 민족주의 계몽과 항일운동을 펼친 ‘대동공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는 구한말부터 1920년대 전반기까지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항일운동의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독립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됐다. 무장투쟁을 하고,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 지사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러시아 지역의 항일독립운동을 대표하는 1910년대의 권업회, 권업신문, 대한광복군정부, 한인신보사, 한민학교 등이 블라디보스톡에 근거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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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22일 창간하여 약 2년 반 동안 권업회 기관지로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권업신문.

그 중에서도 독립투사들은 언론, 특히 신문을 통해 한인들에게 계몽사상과 더불어 항일사상을 확산시켜 나갔다. 민족과 독립을 기치로 내걸었던 한인 언론의 첫 장을 연 신문이 구한말 ‘해조신문’과 ‘대동공보’였다. ‘해조신문’은 1908년 2월26일에 창간했다. 연해주 최초의 한인신문으로서 재러 한인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전달되어 민족의식 고취와 계몽에 앞장섰다. 현재 국내는 없고, 샹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아시아‧아프리카 별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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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7월5일 우스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의 기관지로 창간한 청구신보.

‘대동공보’는 해조신문에 이어 1908년 1월20일 창간했다. 이 신문은 친러시아적 입장에서 민족 계몽과 항일 정신 고취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대동공보도 국내엔 없고 샹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선관 아이사‧아프리카 별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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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1일에 창간한 선봉. 창간호엔 ‘3월1일’이라는 제호를 사용했으나 제4호부터 바꿨다.

그리고 1910년대의 ‘권업신문’과 ‘대한인정교보’로 신문은 계속 이어졌다. 이들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신채호, 이상설, 장도빈 등이 활약한 ‘권업신문’은 105인사건, 의병운동 등 항일 이슈를 전달하는데 앞장섰다. 1912년 4월22일 창간해서 1914년 8월까지 약 2년 반 동안 총 126호를 간행한 권업신문은 권업회 기관지로서 독립을 위해 투쟁을 다했다. 샹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아시아‧아프리카 별관에 소장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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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7월13일 블라디보스톡 식량직업회에서 창간한 한글신문인 ‘연해주어부’

1917년 7월5일 창간한 ‘청구신문’은 우스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의 기관지로서 귀화한 한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매주 발행했다. ‘한인신문’도 한인거주지역인 신한촌 민회의 기관지로 1917년 7월8일 창간했다. 매주 1회 한글롤 발행했으며, 재러 한인의 계몽과 간도 및 러시아 한인 사회의 동향을 자세히 기록, 역사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계봉우가 독립신문에 연재한 ‘아령실기’ 1호 칼럼(1920년 2월26일자). 이 글에서 그는 한민족의 고대사와 관련한 연해주 지역과의 연관성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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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2월에 창간해서 매달 2회 발행한 공산주의 사상 선전도구로 활용한 신문.

‘동아공산’ ‘붉은기’ ‘선봉’ ‘연해주어부’ 등 1917년 러시아혁명 전후에는 사회주의 계열 신문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그 중 1923년 3월1일에 창간한 ‘선봉’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 신문이다. 3‧1절을 기념해서 상징적으로 ‘3월1일’이라는 이름으로 창간했다가 제4호부터 ‘선봉’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직전까지 매주 1~2회 발행했다. 이후에도 이 신문은 구소련의 몰락 후 ‘고려일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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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주 한인노동자와 농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2차 5개년 계획의 성공을 독려하기 위해 1933년 1월22일 창간한 한글 신문.

1930년 7월13일 창간한 ‘연해주어부’는 블라디보스톡 식량직업회에서 간행한 한글 신문으로, 어업 노동자를 위해 창간했으나 곧 블라디보스톡 지역 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이 됐다. 이어 1932년 12월에 창간한 ‘당교육’은 매달 2회 발행하며, 당후보자들의 교육을 위한 매체로서 공산주의 사상 선전과 당원으로서 알아야 할 의식 및 행동규범 등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동방꼼무나’라는 신문도 있다. 1933년 1월22일에 창간했다. 아무르주 한인 노동자‧농민‧학생들을 대상으로 2차 5개년 계획의 성공을 독려하기 위해 한글로 창간했다. 볼셰비키 공산당 헤어허시의 당 간부를 발행인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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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의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후 1938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선봉을 제호 변경하여 계속 발행한 레인의 기치.

‘레닌의 기치’는 1938년 5월15일 창간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후 1938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선봉’을 제호 변경하여 발행을 계속했다. 공산당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 적극적으로 한인사회의 관심사를 반영했다. 이후 1991년부터 ‘레닌기치’는 오늘날의 ‘고려일보’로 개칭한다. 과거 ‘선봉’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에 기반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일제시대 때 발간된 선봉이 레닌의기치→고려일보로 한인신문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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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부터 ‘레닌의기치’는 오늘날의 ‘고려일보’로 제호가 변경된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발행되고 있는 신문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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