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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다산유배길, 전나무… 야생녹차… 천연 동백림… ‘푸르름의 연속’ - 마운틴
다산유배길, 전나무… 야생녹차… 천연 동백림… ‘푸르름의 연속’

윤선도의 후손 해남 윤씨(다산의 처가)들은 탐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귤동마을의 만덕산 자락에 다산초당을 마련했다. 다산의 형 정약전이 유배 간 흑산도가 맑은 날이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다산은 여기서 유배생활이 끝날 때까지 10여 년간 실학사상을 집대성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많은 저서를 이 때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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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올라가는 초입에서 경관을 살펴보며 감동하고 있다.

불행과 절망의 늪에서도 절대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던 오늘의 ‘위대한 사상가’ 다산이 ‘다산유배길’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가 다니던 길, 강진 다산수련원에서 다산초당~백련사까지 다산의 사상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출발은 다산수련원이다. 강진군에서 다산의 실용주의 사상과 실사구시 정신을 널리 알리고, 배우고 닦을 목적으로 지난 2005년 개관했다. 다산수련원 바로 옆에는 10년 전 조성한 두충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이 다산수련원과 다산초당 가는 길로 연결된다. 껍질을 벗겨 한약재로 쓰는 나무가 바로 두충나무라고 한다. 중국산이 밀려들어와 가격경쟁력이 안돼 그냥 방치한 게 숲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마치 버드나무 같이 죽죽 뻗은 나무들이 아름답게 늘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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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산 등산로와 연결되는 우거진 숲길엔 뿌리들이 땅위로 솟아나와 정호승 시인이 ‘뿌리의 길’이라고 명명한 길을 보고 있다.

길은 다산초당으로 가는 만덕산 등산로와 연결된다. 숲이 우거져 있고, 나무뿌리들이 땅 위에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길이다. 정호승 시인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대나무밭에서나 보던 땅 위로 솟은 뿌리들을 소나무숲에서도 볼 수 있다. 기묘한 모습이다.


다산초당에는 다산의 정취가 묻은 3개의 길이 있다. 그 하나가 지금 걷고 있는 ‘뿌리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다산초당의 동암을 지나 천일각 왼편으로 나 있는 ‘백련사 가는 길’, 나머지가 다산의 제자 윤종진의 묘 앞에 나 있는 ‘오솔길’이다. 오솔길과 뿌리의 길은 바로 연결된다.


뿌리의 길을 지나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산초당이 모습을 보였다. 한국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다산이 10년 동안 지냈던 집이다. 강진에서 4번이나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묶었던 곳이다. 제자들과 학문의 깊이를 더했고, 학문적으로도 집대성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 다산초당은 다산의 외가인 귤동마을 윤취서에 의해 건립된 해남 윤씨의 산정(山亭)이었다. 그러다 다산이 기거하면서 만덕산 기슭에 자생하는 녹차들을 보고‘다산(茶山)’이란 호를 붙였다. 다산은 원래 이곳의 고유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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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인 백련사 동백나무숲으로 들어섰다.

다산초당엔 본채인 다산초당과 다산선생이 거처했던 동암, 제자들이 유숙했던 서암으로 구성돼 있다. 바로 옆엔 천일각이란 정자가 있다. 다산이 그의 형 정약전이 유배 간 흑산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없었던 정자였지만 다산의 당시 심정을 회상하며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건립했다.

이제부터 백련사 가는 길이다. 다산유배길에서 만날 수 있는 세 가지 길 중에서 가장 다산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요,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다산을 이어주던 통로였다. 1㎞가 채 안되는 거리에 야생 녹차군락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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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숲에 동백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동백과 야생녹차,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고가는 길 위의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젖어 두 선인은 분명 선문답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으리라. 그리고 다산 스스로 학문의 깊이를 더했을 그런 산책로였을 것이다. 야생녹차밭을 지나 대나무숲, 사스래나무 등이 등산로 옆을 지키고 있었다. 이 길은 녹차와 대나무 등으로 인해 사철 내내 푸르다. 야생녹차는 이미 관목으로 자리 잡은 숲의 터줏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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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수백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1962년 12월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 3㏊이상 달하는 동백나무는 300~500년 이상 된 것들로, 일일이 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있었다. 일설에는 꽃이 핀 채로 100일, 꽃이 떨어진 채 100일이라고 해서 동백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실제로 100일이 안될지는 몰라도 핀 꽃이나 떨어진 꽃이 상당히 오래가는 건 사실이다. 원래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 꽃을 피우지만 요즘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초겨울에도 동백꽃을 쉽게 볼 수 있다. 꽃을 피우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柏), 추백(秋柏), 동백(冬柏)으로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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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들이 길에 떨어져 더욱 운치를 더하고 있다.

1,500여 그루에 이르는 동백나무들은 갖가지 모양을 띠고 있다. 미끈하게 잘 생긴 동백부터 울퉁불퉁한 동백까지 동백나무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나무는 다섯 개의 가지가 마치 영락없는 손바닥 같다. 동백손바닥나무라 이름 붙였다. 큰 줄기에 울퉁불퉁한 동백은 상처 난 부위를 스스로 아물게 하기 위해 내뿜은 수액이 오랜 세월 굳어져 그렇게 생겼다고 했다. 기묘한 모양이 나름대로 멋을 내고 있다. 주변에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도 함께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했다.


백련사 내려오는 길도 가로수가 동백이다. 낙화한 꽃들로 길은 완전 꽃길로 변했다. 마치 소월의 ‘진달래’와 마찬가지로 동백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길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길인가! 언제 이런 길을 다시 밟아볼 수 있겠나. 정말 감동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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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유배길 초입에 조그만 두충나무 숲속 운치있는 오솔길도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2 Comments

  1. KCC

    04.20,2013 at 8:16 오후

    본문에서 "다산생가 올라가는 초입에서 경관을 살펴보며 감동하고 있다. " 는 다산 생가는 아래
    위키백과에서 인용함

    정약용
    출생 1762년 음력 6월 15일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재 (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사망 1836년 음력 2월 22일

       

  2. 개망초

    04.21,2013 at 3:34 오전

    운명이 내려준 형벌에 단순히 순응 하지만은 않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제자들과 채마밭을 가꾸며 자신의 시간을 채워갔던 다산을 떠올리게 하는 군요.

    온몸을 드러내고 얽혀 있는 소나무뿌리의 처절한 몸짓은
    주인의 발걸음을 기다리다 200여년을 거쳐 온몸을 드러낸듯 아프게 와 닿습니다.
       

개망초 에 응답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