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불산(千佛山)에 있으니 좌우의 산등성이에 있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 개이다. 또 석실 둘이 있어, 석불과 서로 등지고 앉았다.’
운주사의 지형은 양쪽에 야트막한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중간에 운주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비에 쌓인 운주사는 절 전체가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엔 운주사에 천불천탑이 분명히 있었다는 기록이다. 하나의 절 안에 천개의 불상과 부처가 있다니,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운주사(雲住寺), 구름이 머물고 있는 절이란 뜻이다. 천불천탑(千佛千塔)이 구름 속에 있는 광경은 가히 상상만 해도 비경일 것 같다. 그만큼 운주사는 비밀에 휩싸여 있다. 연혁도, 창건자도, 천불천탑 건립자도 아직 밝혀진 게 아무 것도 없다.
일주문 앞쪽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산이란뜻으로 ‘靈龜山雲住寺’로 표기돼 있다.
뒷쪽엔 ‘천불천탑도량’이란 현판이 보인다.
운주사 앞에 있는 안내문에도 ‘운주사의 정확한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히지 못해 여전히 신비로운 사찰로 남아 있다’고 돼 있다. 그래서 운주사 일대 전체를 1980년 6월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312호로 지정됐다.
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과 그에 대한 안내문.
운주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한다.
절에서 나눠주는 팜플렛에 ‘운주사의 연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선의 창건설화와 천불천탑으로 알려진 운주사의 불교유적은 전남 화순군에 자리 잡고 있다. 무등산의 한 줄기로 해발 100여m의 야트막한 천불산에 남북 방향으로 뻗은 두 산등성이와 계곡에 현재 100분의 돌부처와 21기의 석탑들이 안치되어 있다. 이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운주사의 와불이 북극성을 상징하고 사찰에 배치된 석탑들이 이를 중심으로 한 별자리와 거의 일치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계곡 같은 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석탑과 불상, 그리고 불상조각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운주사의 불적은 많은 탑과 불상이 한 지역에 빽빽이 들어서 있다는 점에서 경주의 남산과 자주 비교된다. 그러나 운주사의 불상과 탑은 다양한 시기의 불상이어서 구별된다. 100여기의 돌부처와 21기의 석탑이 야외전시장을 방불케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불교미술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희한하고 불가사의한 유적이다.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새벽닭이 울어 공사를 중단했다’는 도선의 설화는 운주사가 미완의 도량으로 영원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보물인 9층 석탑과 그 옆엔 마애불과 석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남아 있는 유물은 그 제작시기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다양하다. 이 불상을 불교미술사적 측면에서 접근해도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작가들도 운주사의 불상만 전문적으로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표정도 모양도 다양하다.
불상 위에 또 불상이 있고, 불상 옆에 또 불상이 있다. 마애불 옆에 또 마애불이 있다. 한 마디로 신비 그 자체다.
불상의 표정, 모양이 전부 다르다. 불교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도 특별난 관심을 가질 만한 절이다. 운주사의 불상에만 관심을 가진 사진작가들도 많다.
운주사의 저녁 풍경이다.
언덕 위에도 석탑과 불상이 이어진다.
마애불과 석탑도 끝이 없다.
기기묘묘한 불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불상 뒤에는 마애불까지 새겨져 있다.
보물 9층석탑 뒤에보물 석조불감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 보물 원형다층석탑이 연이어 나온다.
불상 2기가 등을 맞대고 있는 석조불감. 앞쪽 장면만 담았다.
석조불감에 대한 설명.
석조불감 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