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春花)가 만발하니 춘향(春香)이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 5월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들판에는 새순들이 파릇파릇 상큼한 모습을 드러내고, 산에는 신록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갓 터트린 꽃과 그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 지저귀는 새들이 어우러져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은은한 봄 향기는 여인의 가슴에 스며들고, 화사하고 상큼한 차림으로 나들이에 나선다. 만발한 연보라 철쭉에 흠뻑 빠진다.
팔랑치 정상에서의 철쭉이 활짝 피어 있다. 흔히 바래봉 철쭉이라고 하면 이곳을 말한다. 사진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해 찍은 장면이다.
5월의 꽃은 단연 철쭉이다. 산이나 들녘이나 지금 어느 곳으로 가던지 세상은 온통 울긋불긋 물들어 있다. 만발한 철쭉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몇 년 전 ‘바래봉이 불났다’는 글이 있었다. 다들 정말 바래봉이 불난 줄 알았다. 만개한 철쭉이 산을 뒤덮은 장면을 ‘불’로 표현해서 철쭉으로 설렌 가슴을 다시 한번 더 감탄하게 했다.
팔랑치에서 바래봉 방향으로 본 철쭉 군락. 사진 제일 끝 살짝 솟은 봉우리가 바래봉이다. 사진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해 찍은 장면이다
철쭉이 점점 북상하고 있다. 한라산을 제외한 최남단 철쭉 군락지로 알려진 전남 보성 일림산과 제암산에서 5월4일 시작한 철쭉축제는 지리산 형제봉에 와서 12일, 산청 황매산에서 14일 화려하게 열렸다. 이어 덕유산이 5월 말, 소백산에서는 6월1~2일, 태백산이 6월8~9일, 연인산이 6월초 등으로 예정돼 있다.
정령치 이정표
바래봉 철쭉은 고도에 따라 만개시기가 4단계로 나뉜다. 하단부(해발 500m 부근)인 남원 용산마을은 5월초, 중간부인 700m 지점은 10일 전후, 8부 능선은 5월 중순, 정상 능선은 5월말쯤 활짝 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리산 서북능선에서 제일 높은 고리봉. 길게 뻗은 서북능선의 모습이 보인다
그 바래봉을 지리산 서북능선인 정령치에서 출발해서 고리봉~세걸산~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삼거리를 거쳐 용산마을로 하산했다. 총 14.2㎞에 이르는 거리다. 박기연 지리산 남부사무소 소장은 “지리산 태극종주의 출발지점인 고기리삼거리에서 올라오는 지점이 고리봉이며, 천왕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역시 고리봉을 분기점으로 남덕유로 올라간다”며 “세걸산~바래봉 코스는 등산객이 많지 않아 호젓하고 평이한 코스”라고 소개했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길게 뻗은 모습. 고지대라서 그런지 아직 신록조차 오지 않아 황량하다
출발지인 정령치는 기원 전 84년 마한 왕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을 시켜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방어케 했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한다. 지리산의 오래된 고갯길로서 고도가 1172m에 이른다. 출발 자체가 1000고지가 넘는데다 바래봉도 1,167m라 등산로는 힘들지 않다. 능선 중에 가장 높은 곳이 고리봉으로 1305m가 조금 넘을 뿐이다.
세걸산 이정표 앞에서
높은 지대라 수종은 다양하지 않다. 주로 참나무 군락이다. 간혹 물푸레나무, 소나무도 보이고 관목으로는 진달래와 산죽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파릇파릇한 새순들이 좀 봐달라는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계절을 바꾸는 초목들이다.
팔랑치에서 부운치 방향으로 바로본 철쭉. 사진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해 찍은 장면이다 전북학생교육원에서 서북능선으로 올라오면 세동치 능선으로 합류한다
이윽고 백두대간 갈림길이자 서북능선에서 제일 높은 고리봉에 도착했다. 그 옛날 바다에서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고리로 건 흔적이 있다고 해서 고리봉이라 한다. 서북능선 최고봉답게 사방 조망이 확 트인다.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봉~중봉~삼도봉~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서북능선의 끝인 바래봉도 저만치 보인다. 심산유곡, 첩첩산중, 금수강산 지리산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순간이다.
부운치로 가는 능선 위에서 지리산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부운마을이 조그맣게 보인다
세걸산을 거쳐 세동치를 지나는 등산로 주변엔 야생화인 얼레지가 보라색 꽃망울을 터뜨려 등산객들의 눈길을 확 끈다. 자세히 보니 현호색과 흰색의 개별꽃, 노란 괭이눈도 부끄러운 듯 낙엽사이로 살짝 모습을 내밀고 있다. 한국에 손 꼽을만한 철쭉 군락에 빠지기 전에 신록과 어우러진 야생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라색 꽃을 활짝 피운 야생화 현호색 군락지도 나온다
부운치를 지나자 사람 키 높이 이상 되는 철쭉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철이 이른 듯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넓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1000m이상 고산지역 최대 군락지라고 한다. 활짝 피면 정말 장관일 것 같다. 박 소장은 “아마 5월17~20일쯤 부운치와 팔랑치로 이어지는 철쭉이 활짝 피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팔랑치를 지나도 철쭉은 끝날 줄 모른다. 푸른 초지와 어울린 철쭉과 신록의 봄은 한 번 다물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했다. 감동의 연속이다.
얼레지 군락지도 있다. 얼레지는 고개를 숙이고 꽃잎을 들고 있다고 해서 마치 미친×이 치마를 뒤짚어 쓴 모습과 같다고 해서 미친×치마꽃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이런 군락이 생겼을까? 팔랑치 이정표에 그 답이 있다.
‘바래봉 지역은 1970년대 초 면양을 방목하기 위해 벌목 후 초지를 조성했다. 산철쭉은 독성이 있어 면양이 섭취하지 않아 우점종으로 성장, 군락지가 형성됐다. 바래봉 산철쭉은 해발 500m부터 정상부까지 시차를 두고 피기 시작하여 5월 내내 장관을 이루며, 진홍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팔랑치 정상 전망대에서 철쭉을 보러온 많은 사람들이 있다
부운치 직전부터 시작된 철쭉 군락은 바래봉삼거리까지 4㎞이상 됐다. 바래봉삼거리에서 바래봉까지는 0.5㎞. 용산마을까지는 3㎞ 남짓. 용산마을로 가는 하산길은 시멘트길이 많아 다소 불편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닌다. 용산마을 입구에 대형 철쭉 군락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등산객이 발길을 멈추고 철쭉꽃 속으로 들어가 추억을 담기에 여념 없다.
바야흐로 봄의 절정기다. 그 중심에 신록과 어울린 철쭉이 산천을 물들이고 있다.
용산마을 하단부에는 철쭉이 활짝 피었다 용산마을 하단부에서는 철쭉이 활짝 피어, 등산객들이 군락 속으로 들어가 사진 찍기에 여념 없다.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 이정표 비석
탐방가이드
5월 한 달 간 용산마을 철쭉군락지를 거쳐 바래봉으로 가는 등산객이 50여만 명 이른다고 한다. 이 등산로가 너무 번잡하고 시멘트길이라 싫다면 전북학생교육원에서 세동치로 올라와서 가는 길도 있다. 불과 1.8㎞밖에 안 된다.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흙길이고 햇빛을 가려주는 숲길이다. 용산마을 철쭉 군락지 입구에는 남원 야시장이 5월 한 달 내내 열린다.
교통편과 별미
서울센트럴시티에서 남원행 고속버스를 탄 뒤 남원에서 인월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 백무동행 고속버스를 타면 남원 인월에서 내린다. 문의 인월버스터미널 063-636-2000. 함양지리산고속 055-963-3745. 인월에서는 정령치나 운봉으로 향하는 택시들이 많다. 정령치까지는 대중교통은 없지만 자동차로 오르내릴 수 있다. 서북능선의 종주 끝지점인 운봉읍에서 정령치까지 택시로 2만5,000~3만원. 남원에 유명한 별미는 추어탕과 어탕이다. 추어탕은 남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어탕은 붕어 등을 갈아서 만든 탕이다. 남원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다.
zmon
08.09,2015 at 8:48 오전
바래봉이 철쭉으로 유명해진 건 박환윤 선생이 찍은 사진때문입니다. 차가 보급되지 않았던 80년대 버스 타고 남원 가서 다시 버스로 운봉 다음 소석리에서 목장 옆길 따라 올라갔죠. 그때는 덕두산에서 바래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근처 풀밭까지 양떼를 몰고 올라와 풀을 멕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