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는 한국 문화의 전통이 가장 잘 살아 있다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한국 고유의 문화축제다.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됐고, 2005년 11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다.
단오는 음력 5월5일로서, 설․한식․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명절 중의 하나였다. 단(端)은 ‘처음’ ‘시작’이라는 뜻이고, 오(午)는 ‘초닷새’라는 의미다. 조상들은 이 날을 1년 중 양(陽)의 기운이 가장 성한 날로 여겨 으뜸 명절로 여겼다.
강릉단오제 부대행사 중의 하나인 음력 5월5일 단오날,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행사에 외국인도 참여해 머리를 감고 있다.
으뜸 명절인 단오제가 강릉에서 언제부터 개최됐을까? 이를 살펴보기 전에 강릉이라는 지명과 문화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강릉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관동’과 ‘영동’이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관동은 철령 동쪽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영동은 백두대간 대관령 동쪽 지역을 말한다. 관동 지역은 아홉 곳으로 흡곡과 통천․고성․간성․양양과 옛날 (동)예국의 수도인 강릉, 그리고 삼척․울진․평해의 각 군․현을 지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동지역은 ‘통천․고성․양양․강릉․삼척․울진’을 지칭했으나 행정구역 변경으로 지금은 고성군․속초시․양양군․강릉시․동해시․삼척시․태백시를 가리킨다.
강릉단오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됐고 가장 규모가 큰 축제로서 매년 개최되고 있다.
기록에서 보듯 강릉은 삼국시대 이전 동예국의 수도였다. 당시 지명은 명주(溟洲)로서 독자적인 행정체계를 유지했다. 고려시대에는 선종을 받아들여 불교문화를 번성시켰고, 고려 말에는 유교의 양반문화를 형성했다.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민중문화를 발달시켰다. 이러한 문화가 지금의 ‘강릉단오제’로 통합되어 축제로 탄생한 것이다. 동예국은 기원전이니 지금으로부터 2천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강릉단오제에 모실 대관령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됐고 가장 규모가 큰 축제인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열렸는지에 대한 기록은 분명치 않다. 부족국가였던 동예시대부터 있었던 제천행사가 발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 부족국가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동예에서는 해마다 10월에 신께 제사하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이라고 한다’고 돼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최초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대관령에 있는 범일국사를 모신 국사성황사에서 제사를 지낸 후 축제는 본격 시작한다.
이어 <고려사>에 ‘935년 강릉 사람 왕순식이 왕건(태조)을 도와 신검을 토벌하러 가는 길에 대관령에서 산신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처음으로 나온다. 대관령 산신제를 지낸 첫 기록으로, 지금 ‘천 년 단오’라고 말하는 근거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추강 남효온(1454~1492년)이 쓴 문집에 ‘영동에서는 매년 3, 4, 5월 중에 날을 받아 무당들이 산신을 맞아 신에게 제사한다. 부자들은 제물을 말바리에 싣고, 가난한 사람은 이고 지고 대관령에 올라가 제사를 차리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홍길동전>의 작가로 유명한 허균(1569~1618)의 <성소부부고>란 책에도 강릉에 갔다가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국사성황사는 범일국사를 모시고, 바로 옆에 있는 산신은 김유신 장군을 모시고 있다.
10월의 무천은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5월 단오는 곡식의 성장과 결실을 기원하는 파종축제의 성격이 짙다. 따라서 강릉단오제의 기원은 ‘마을의 안녕과 풍농․풍어․풍림’을 신에게 기도드리던 것으로 보인다. 즉 각 마을 주민의 건강과 질병퇴치, 일년 농사의 풍년, 풍성한 고기잡이와 가축번식, 수해와 관련되는 산림의 풍성함, 대관령 산행길의 안전 등을 기원한 것이다.
군웅장수굿을 지내는 무당이 엄청나게 무거운 동으로 만든 컵을 입으로만 들어올리고 있다.
단오절에는 여러 풍속을 즐겼다. 여자들은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몸에 이롭다하여 창포 삶은 물도 먹었다. 단오장이라 하여 창포잎의 이슬을 받아 화장하고 창포물로 세수를 하는 동시에 목욕재계도 했다. 또 창포가 무성한 못가나 물가에 가서 물맞이하는 풍습도 있었다. 크게 자란 고목거수의 옆가지에 그네를 매어 남녀노소가 즐겼으며, 남자들은 씨름을 겨뤘다. 그 외에도 가면극, 민요, 무속제 등 명실공이 종합예술축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릉단오제의 주요 행사 중의 하나인 관노가면극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관노를 따라 같이 덩실덩실 춤 추고 있다.
올해 강릉단오제는 6월9~16일까지 강릉 남대천 일원과 대관령 국사성황당, 산신각 등지에서 열린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리는 명실상부 한국 최고 최대 축제다.
강릉단오제는 단오 한 달 전인 음력 4월5일 ‘신주(神酒)빚기’로부터 시작된다. 술은 신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다. 단오제례에 쓸 술을 만드는 일을 ‘신주빚기’라고 한다. 강릉의 옛 관청이었던 칠사당(七事堂)에서 강릉시장이 내린 쌀과 누룩으로 신주를 담근다. 신주가 잘 익어야 단오제를 무사히 치르고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이 강릉시민들에게 풍요와 안녕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강릉단오제에서 농악대가 시범을 보이고 있다.
‘대관령산신제’와 ‘국사성황제’는 음력 4월 보름날 올려진다. 김유신 장군을 산신으로 모신 산신각에서 ‘대관령산신제’가 올려지고, 범일국사를 모신 국사성황사에서 ‘국사성황제’를 지낸다. 성황제가 끝나고 신목잡이가 신목(神木)을 베면 사람들은 신목에 청홍색의 예단을 걸어 국사성황의 행차를 준비한다. 신목은 단풍나무만 쓴다. 국사성황 행차는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내려와 구산에서 ‘구산서낭제’를 받는다. 구산을 떠난 국사성황 행차는 고향인 학산에 이르러 ‘학산서낭제’를 거친다. 학산은 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의 고향이다. 학산 서낭제 이후 강릉 시내에 돌아온 국사성황 행차는 국사여성황사에서 ‘봉안제’로 받는다.
강릉단오제 그네뛰기 행사에 한 외국인이 그네를 타고 있다.
국사성황 내외를 강릉단오제 가설 굿당으로 모셔가는 ‘영신제(迎神祭)’는 음력 5월3일 저녁에 이루어진다. 대관령국사여성황신에서 ‘영신제’를 마친 국사성황 행차는 ‘정씨가의 제례’를 받고 ‘영신행차’를 맞이하여 남대천 제당으로 향한다. 음력 5월4일부터 7일까지는 아침마다 ‘조전제(朝奠祭)’가 열린다. 이 유교적 제의가 끝나면 밤 늦게까지 단오굿이 뒤따른다. 강릉단오제의 마무리인 ‘송신제(송신제)’는 음력 5월7일 저녁에 올려진다. 이어 다음날인 5월8일에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세계무형유산 목록으로 선정된 강릉단오제를 본 유네스코위원들의 심사평은 ‘인류에게 이런 축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라고 적고 있다.
신 내림을 받은 무녀가 군웅장수굿을 지내고 있다. 한창 무르익으면 잎으로 바로 앞에 있는 그 무거운 동트로피를 입으로 들어올린다.
단오부채 그리기 체험에 참가한 외국인이 부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