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삼남대로 중 가장 원형보존이 잘 된 ‘갈재’… 장성과 정읍의 경계 - 마운틴
삼남대로 중 가장 원형보존이 잘 된 ‘갈재’… 장성과 정읍의 경계

조선시대 한양에서 전국 각 지방으로 가는 ‘10대 대로’가 있었다. 한양~의주까지 가는 의주대로, 한양~함경북도 경흥까지 경흥대로, 한양~강화까지 강화대로, 한양~수원까지 수원별로, 한양~충남 수영까지 수영별로, 한양~통영까지 통영대로, 한양~동래까지 영남대로, 한양~봉화까지 봉화대로, 한양~울진 평해까지 평해대로, 한양~해남까지 삼남대로 등 10대 대로가 국가에서 지정한 간선로(幹線路)였다. 당시는 주로 걷거나 마차 혹은 말을 타고 다녔다. 그 길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철도가 놓이거나 현대 들어서 고속도로의 건설과 택지개발로 무참히 잘려나갔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길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형체를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는 옛길이 몇 안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길이 삼남대로 갈재길이다.

1.JPG

갈재 정상은 암벽을 깎아 만든 길로 정읍과 장성이 연결된다. 왼쪽 벽에 홍 부사가 길을 만들어 영원히 잊지 않고 기리자는 내용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갈재는 노령이라고도 하고 위령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정읍현 산천편에 갈재를 가리켜 ‘위령(葦嶺) 위는 혹 노(蘆)로도 쓴다. 현의 남쪽 30리에 있는데, 장성현의 경계다’라고 돼 있다. 갈재가 장성과 정읍의 경계인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장성현에 따르면 ‘갈재는 위령(葦嶺) 노령(蘆嶺)이라고도 하는데, 현 북쪽 30리에 있으니, 요해(要害)의 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로 위(葦)와 노(蘆), 두 글자 모두 갈대를 가리킨다. 즉 갈재는 갈대가 많아서 불리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옆에 작게.JPG

홍 부사의 업적을 기린 내용의 암각 글씨.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노령보(蘆嶺堡)는 고갯길이 사나워 도적이 떼를 지어 있으면서 대낮에도 살육과 이탈을 하여 길이 통하지 않았는데, 중종 15년에 보를 설치하여 방수(防守)하다가 뒤에 폐지하였다’라고 돼 있다.

입암산과 방장산의 협곡을 잇는 고개길인 갈재는 전남 내륙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요로였다. 반면 도적들도 많아 길손들이 한데 모여 가거나 장성이나 정읍의 원(院)에서 쉬면서 정보를 주고받아 안전하게 길을 건넜다. 특히나 장성이나 정읍에는 극락원(極樂院), 연화원(蓮花院), 미륵원(彌勒院)과 같이 무슨 절 같은 이름의 원이 많았다.

4.JPG

장성 방향의 길재를 넘어 정읍으로 조금 내려가면 꽃무릇 군락이 있다. 8월 말 9월 초에 한창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꽃무릇이다.

그 중 한곳인 미륵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미륵원터 조금 못 미쳐 미륵불상이 하나 우뚝 서 있다. 충주 하늘재 근처에 마의태자가 세웠다는 그 미륵리석불입상과 유사하다. 미륵불상터에서 100m 남짓 가면 길손들이 쉬어가던 미륵원터가 있었다.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고추밭으로 변했고, 자취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이다. 그 사이로 호남선 철로가 지나고 바로 맞은편엔 호남고속도로도 지난다. 또 그 옆엔 국도 1호선이 있고, 지금은 폐로가 된 구 호남고속도로도 방치돼 있다.

8.JPG

장성 방향의 길재로 가는 길에 수령 30~40년은 족히 된 듯한 편백나무가 대형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국도에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국도 1호선 고갯길에 ‘장성갈재’라고 비석을 세워 놓았지만 실제 옛날 도보길은 지금 산길로 가는 길이다. 당시 도보길은 사람 다니는 길과 우마차 다니는 길,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접어든 산길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와 위, 두 개의 길이 나왔다. 위로는 사람이 다녔고, 밑으로 우마차가 다녀 바퀴 흔적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삼남대로 갈재길’이란 리본이 곳곳에 붙어 있다.


갈재길은 많은 풀 만큼이나 나무들도 울창해 숲터널을 이루고 있다. 나무들이 햇빛을 완전히 가린다. 우측 사면엔 쭉쭉 뻗은 편백나무 군락도 보인다. 수평 40~50년은 족히 된 듯하다. 편백나무는 어느 때 봐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길이 조금 가팔라지더니 여기저기 흩어진 돌이 하나씩 보인다. 갈재 정상 부근에 왔다는 흔적이다. 옛날 걸어서 가던 길손들이 자신의 무사귀환과 가족․자식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돌을 하나씩 쌓던 풍습이 돌무덤과 돌탑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 돌들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사이 무너져 내려 흩어져 있다. 거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5.JPG
길 위에는 오래 묵은 낙엽이 썩지 않고 말라 비틀어져 걷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솔가리도 땅을 덮고 있어 푹신푹신하다.

갈재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278m밖에 안된다. 이 길이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대표적인 길, 갈재다. 서쪽으로 국도 1호선으로 넘어가는 길은 장성갈재라고 표시돼 있고, 내장산 방향에서는 장성새재라고도 있다.

갈재는 위험한 길이다 보니 또한 많은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고개의 형태가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날아가는 모습의 명당이라는 설과 장군이 칼을 빼들고 있는 형국의 명당이라는 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 갈대가 많아서 갈재, 노재, 위재라고 부르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갈대는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나중에 승용차로 1번 국도로 장성갈재에 가보니, 그곳엔 갈대가 조금 보이긴 했다.

갈재에서는 동쪽 내장산 방향으로는 입암산과 서쪽으로는 방장산․축령산 등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입암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천혜의 요새다.


정읍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서쪽 입암산 너머는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연결된다. 내장산은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입암산성 봉우리 끝에 있는 갓바위는 어렴풋이 보인다. 우뚝 솟은 갓바위는 천혜의 요새 입암산성의 최고 높은 위치에서 주변을 모두 관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8-1.JPG

우뚝 솟아 숲을 이룬 편백나무는 여름에도 시원한 길을 제공한다.

정읍 갈재길은 지금 한창 풀과 나무를 잘라 원래의 길로 다듬고 있다. 잘려나간 풀 사이로 꽃무릇(상사화)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꽃과 잎이 영원히 같이 피지 않아 서로 보지 못한다는 그 꽃이다. 안타까워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바로 위 언덕에 꽃무릇이 군락을 이뤄 한창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젠 갈재 너머 정읍 첫 마을이 보인다. 군령마을이다. 갈재의 위령군보와 입암산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머문 군대가 주둔한 자리라고 한다.


어느 덧 종착점이 다가온다. 입암면사무소 직전에 갈재를 지나기 전에 많은 원(院) 중에 하나였던 천원역에 다다랐다. 마을 정자나무가 있고, 그 옆에 비석이 하나 있다. 천원역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던 숙박시설 역할을 했던 곳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도 천원역 주변에 주막이 있었다고 전한다.

천원역에서 마지막 목적지인 입암면사무소까지는 불과 200m 남짓.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도적도 우리 선조고, 지키던 군사도 우리 선조다. 우리 선조들이 걷던 옛길을 걸으며, 그들의 소리를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