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공 대학교수가 걸어서 4번째 국토종단을 했다. 처음도 아니고 벌써 네 번째다. 앞으로도 계속 할 계획이라고 한다. 왜, 어떻게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대학생 때부터 내가 사는 국토를 밟아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대학 땐 아르바이트 하느라 못했고, 40세 들어서야 처음 시작했죠.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실제로 실보다 득이 훨씬 많았고. 그래서 계속하게 됐죠.”
백범영 교수가 나무 밑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다.
용인대 문화예술대학 회화학과 백범영(52) 교수가 그 당사자다. 지난 2000년 새 천년을 맞아 어릴 때 꿈인 국토종단․횡단을 시작하기 위해 지도를 펼쳤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 우선 고향에서 출발해서 그가 대학(홍익대 미대)을 다닌 곳까지 걷자고 지도에 선을 죽 그었다.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게 경남 고성에서 출발해서 진주~합천~함양~무주~대전~천안~용인 거쳐 서울까지다. 총 거리가 400㎞ 남짓 된다.
무모하게 시작한 국토종단은 엄청나게 무거운 배낭에 길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죽도록 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싫지가 않았다. 오직 ‘걸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걷다보니 몸과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지는 느낌이었고, 영육이 정화되는 듯했다.
수염도 자르지 않아 무성하다.
매년 걷기로 했다. 바로 반대에 부딪혔다. 부인이 ‘그 힘든 일을 왜 하느냐’며 막았다. “몇 년째 못했더니 갑갑해서 못 견디겠더라. 그래서 2005년 다시 단행했다.”
이번엔 그가 살고 있는 용인에서 대학원생 2명과 함께 고성 앞바다까지 걷기로 했다. 처음 걸었던 역방향이다. 지도를 갖고 국도로 다녔지만 가끔 산길을 이용하기도 했다. 올라갈 땐 있었던 길이 내려가는 길이 없어 고생도 많이 했다. 새 도로가 뚫리거나 터널이 생겼는데도 그대로 방치된 구 도로를 따라 걷는 게 제일 좋았다.
2006년도에 세 번째로 안면도에서 울진까지 걷기로 결정했다. 첫 횡단이었다. 안면도~홍성~아산~괴산~충주~영주~봉화를 거쳐 울진까지 걸었다. 이 코스는 도시는 별로 없고 산길이 많았다.
그리고 한동안 일에 치여 살다가 올해 네 번째로 강릉에서 부산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435㎞를 완주했다. 종단 2번, 횡단 1번, 해안도로 1번 걸은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걸을 겁니다. 올해 동해안을 따라 걸었으니 서해안과 남해안을 몇 년 내 끝낼 계획입니다. 그 뒤엔 민통선을 횡단할 것입니다. 진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선비들의 과거시험길, 철길 따라 걷는 길, 조선통신사 따라 가는 길, 보부상 다닌 길 등 테마를 정해놓고 전국을 누빌 계획입니다. 지금은 극기의 걷기이지만 최종 목표는 유랑 걷기입니다. 그러면 글을 쓰던지, 그림을 그리던지, 어떤 주제가 명확히 떠오를 것 같습니다. 내가 사는 나라를 걸어서 다녀보겠다는 호기심에다 걷다가 생기는 사유의 깊이를 덤으로 얻게 되죠.”
백 교수는 걷기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자연을 화폭에 담는 작업 일환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실 한국 화단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견 산수화가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제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선하고, 동아미술제에 특선했다. 지금까지 개인전 7회, 단체전 150여회를 연 관록을 가지고 있다. 올 11월쯤엔 소나무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걷기를 통해 얻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느낌, 깊이 있는 사유로 소나무를 화폭에 담을 계획입니다. 서울에 있는 소나무는 잘 생겼지만 강원도 소나무는 야생적입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자연의 흔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죠. 오랜 세월의 고목, 그걸 보며 느끼는 시간과 공간을 소나무로 그립 겁니다.”
걷기의 달인급 한국 중견 산수화가의 소나무에 대한 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