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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여개나 되는 한국 산성은 무슨 목적으로 건립했나?… 한․중․일 차이점은?

“한국의 산성은 현재 흔적을 알 수 있는 것만 1,200여개 정도로 추산됩니다. 산성의 주요 기능은 방어용입니다. 전국 대로(大路)의 요지마다, 길목마다 산성을 축성해서 적의 침입을 차례로 저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보존되어 있는 전국의 산성을 하나씩 연결시키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됩니다. 그것이 산성순례길입니다. 산성으로 시작해서 산성으로 끝나는 길인 것입니다. 단순히 등산만 다닐 게 아니라 등산과 산성답사를 겸하는 웰빙과 역사를 배우는 산성순례길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고, 앞으로 그런 길을 많이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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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에는 약 1,200여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고구려와 신라가 영토각축을 벌였고, 그 결과 북한산 사모바위 옆에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사진은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성의 모습.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史>를 쓴 이덕일씨와 김병기씨의 말이다. 책 제목에서 보듯 저자들은 굳이 ‘산성’과 ‘5000년’이란 두 단어를 병행해서 썼다. 실제로 산성은 5000년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한다. 고조선에서부터 시작한 산성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까지 이어진다. 저자들이 ‘5000년 한국사’를 책 제목에 굳이 붙인 이유는 산성이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즉 고조선부터 산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차원도 포함돼 있는 것이다.

“고조선의 통치지역은 만주 일대까지 광활합니다. 주류 사학자들은 고조선을 평양과 개성 일대로 줄이는데, 외국 사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이해를 못합니다. ‘자기 조상들의 통치구역을 왜 줄이는지 알 수가 없다’는 반응입니다. 고조선에서의 산성기록은 내몽골에서 발간한 논문에 그대로 나옵니다. ‘성자산(城子山)에 치(雉)형태의 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1차 사료가 명확한데, 주류사학자들이 이 사실을 부정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마 그 학자들의 스승이 가르친 기존 학설을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라 짐작합니다. 산성은 그 외에도 우리의 반만년 역사와 함께 했던 증거는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해외로, 국내로 답사를 다니게 한 직접 계기가 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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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평론가이자 역사학자인 이덕일씨는 그냥 등산만 다닐 게 아니라 산성을 따라 길을 연결시켜 만든 순례길을 걸으면 웰빙과 역사탐방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산성을 답사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산성뿐만 아니라 만주와 몽골, 심지어 북한까지 일일이 자비로 답사했다. 그동안 주류 사학계에서 제시하지 못한 1차 자료까지 상당수 확인하고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 대가로 신문․잡지 등에 기고한 원고료와 저술로 받은 인세 수입 대부분을 답사비용과 사무실 운영비로 소진했다. 그만큼 사료 확보에 모든 열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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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과 김병기 박사가 우리나라 산성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덕일씨는 애초부터 작정하고 주류 사학계에서 하지 못한 일을 할 목적으로 1997년 연구소를 창립했다. 그게 지금 소장으로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다. “주류 역사학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일제 식민사학에서 벗어난, 역사학계의 흐름을 좀 바꾸고 싶었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가람문화역사연구소의 구체적 설립 목적을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의 패권주의 사학인 동북공정은 기본적으로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는 작업입니다. 이들은 한국사가 서기 4~5세기에 시작됐다고 주장하거나 대륙과 해양을 배제해 한국사를 한반도에 가둬두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 못한 국내 일부 세력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습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이런 역사적 왜곡들을 바로잡음으로써 한국사의 본 모습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고 밝히고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운영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렸다. 그의 수입과 800여명의 진성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800여명의 회원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공부하는 학생에서부터, 기업체 간부․의사․변호사․약사․교수 등 전문직까지 취미로 산성답사와 역사기행을 나서고 있다. 산성에 대한 관심이 최근 부쩍 늘어났다. 이 소장은 “답사 공고가 나면 30분도 못 돼서 정원이 다 찬다”고 했다. 그만큼 산성에, 아니 버려진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버려진 역사현장을 방문해서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답사한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이들은 가지고 있다.

성과를 여기저기서 올렸다. 한․중․일 산성의 차이와 우리 역사의 시대별 축성방법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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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점령당하지 않았던 요새 같은 남한산성이다.

“중국과 일본의 산성은 집권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 내부엔 집권자를 위한 시설이나 공간밖에 없습니다. 반면 한국의 산성은 백성과 함께 하는 보민사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반드시 성 안에 물과 식량이 있어 장기항전의 채비를 갖춘 시설이 있습니다. 강화산성이나 남한산성 등에서 오랫동안 백성과 함께 항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equus

    09.27,2013 at 12:33 오후

    이 글을 찬양하는 댓글을 올린것 같은데 오늘 와보니 없군요. ^^ 빨리 이 책을 구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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