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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산림녹화도 이제는 수익창출시대”… 정은조 산림경영인협회 회장 - 마운틴
“산림녹화도 이제는 수익창출시대”… 정은조 산림경영인협회 회장

4월은 식목의 달이고, 4월5일 오늘은 식목의 날이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이 식목의 달과 날로 인해 세계적인 조림국가로 성장했다. 세계에서도 한국을 성공적인 조림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됐고, 땔감으로 민둥산이 된 한국의 산을 최단시간 내 산림녹화에 성공한 국가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조림국가인 독일이나 일본조차 한국의 모범 조림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방문한다. 그 주역이 박정희 전 대통령, 현신규 박사, 김이만 옹, 임종국 선생, 민병갈 전 원장 등이다. 이들 5명은 지난 2001년 새천년 식목일을 맞아 지난 세기에 이룩한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국토녹화 사업의 큰 공을 기리기 위해 국립 광릉수목원에 숲의 명예전당을 세워 헌액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녹화를 국가 정책사업으로 추진했던 공로, 현신규 박사는 현사시나무를 만든 공로, 김이만 옹은 평생 종자채집에 일생에 바친 공로, 임종국 선생은 전남 장성 축령산에 500㏊가 넘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조성한 공로, 민병갈 전 원장은 천리포수목원을 세계적 수목원으로 육성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금은 전부 고인이 됐지만 광릉수목원 내 명예의 전당에 그들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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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조 회장이 인터뷰 후 잠시 포즈를 취했다.

한국과 같은 좁은 국토에서 산림녹화는 단기간에 할 수 있지만 이를 소득창출과 연계시킬 수 있는 목재로 조성하기엔 한반도의 기후나 지형 등 여러 제약조건이 많다. 그러면 단순히 산림녹화로 끝날 것인가? 이젠 그건 아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는 산림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림은 미래의 가장 유력한 제1차 산업 소득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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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조 회장이 대를 이어 조성한 초암산 일대의 편백나무와 삼나무 잣나무숲.

“나무를 심어 수십 년 뒤에 벌목해서 원목을 팔아 돈 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건 일순간 수입이 생길지 몰라도 식목해서 다시 40~50년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적으로 매우 비생산적입니다. 앞으로는 산림도 치유의 숲이나 힐링센터와 같은 경영모델로 개발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산 안에 1, 2, 3차산업이 전부 융합된, 즉, 생산, 제조, 판매서비스까지 한꺼번에 하는 산림경영모델이 필요합니다. 그 모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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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초암산과 주월산 일대의 경영 모델림.

제19대 한국산림경영인협회에 취임한 정은조 새 회장의 취임일성이다. 정 회장은 부친 정상환 선생의 산림녹화사업을 이어받아 보성의 초암산과 주월산 일대를 경영모델림으로 가꾼 대표적인 모범 독림가이기도 하다.

정 회장의 부친은 한국의 조림사업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산림녹화에 뛰어든 1세대 독림가다. 한국의 대표적인 조림숲인 장성 축령산의 임종국 선생과 같이 활동했다. 당시 그의 부친은 술을 만드는 주조장과 극장 운영으로 돈을 모아 1964년부터 전남 보성 수남리 일대 초암산과 주월산 일대 임야를 사들여 산림녹화를 시작했다. 일본을 자주 왕래하던 그의 부친은 “한국의 산은 일본의 산과 너무 다르다”며 조림에 남다른 애정과 각오를 보였다며, 정 회장은 전했다. 황폐화된 민둥산에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주 수종으로 심어 빽빽한 산림을 일궜다. 장성 축령산과 함께 보성 초암산과 주월산이 대표적인 조림 성공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당시 정 회장의 부친과 함께 일했던 동네 아주머니들은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지금은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남았다. 가끔 산에 놀러와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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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의 아버지 정상환 선생이 1970년대 당시 민둥산에서 산림녹화에 매진하고 있다.

1970년대 초에는 정부에서 식량부족으로 반강제적으로 밤나무를 식재할 것을 주문했다. 그의 부친은 밤나무를 40㏊ 가량 심었다. 1980년대 초까지 1억50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밤나무는 30~40년 지나 고목이 되면 유실수로서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속성을 지닌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 밤나무를 잘라내고 수종을 갱신했다. 서양에서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오크통 재료가 되는 참나무, 특히 굴참나무를 20㏊ 남짓 식재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나머지는 편백나무․삼나무․육송․고로쇠나무․잣나무와 더불어 주목과 구상나무, 전나무 등 조경수 위주로 산림을 가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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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환 선생이 인부들과 함께 1970년대 당시 산림을 조성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 회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엔 아버지가 너무 고생하셨어요. 매일 새벽 6시에 집에서 나가 밤 8시 전후해서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입고 나간 청바지는 해질 대로 해졌죠. 그 두꺼운 청바지를 뚫고 들어온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다리에 소독약을 바르는 게 저녁 일과였습니다. 어릴 때 심정으로 ‘저렇게 힘든 일을 왜 사서 하시나’ 싶었어요.”

정 회장은 공부도 곧잘 했다. 1969년 서울대에 입학하고, 1976년 졸업하면서 대기업에 입사했다.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대기업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다 관두고 무역업으로 제법 돈도 크게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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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초암산과 주월산 일대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이 우거진 빽빽한 산림을 자랑한다.

부친의 귀촌요청은 그 사이 계속됐고, 산림규모도 날로 커졌다. “산림녹화사업은 당대에 빛을 볼 수 없고, 자식 세대에도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대에 훌륭한 산림녹화와 사업모델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직장생활 5년, 사업 10여년을 청산하고 1989년 드디어 정 회장은 고향 보성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산림녹화사업의 대를 잇기 위해서. 당시 ‘수남농장’으로 불리던 산림을 아버지의 호를 따서 ‘윤제림’으로 이름부터 바꿨다. 아버지가 고생해서 일군 산림을 빛을 내고, 고생한 댓가를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면적도 점차 키워 337㏊(100만평 남짓)되는 규모로 만들었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초암산과 주월산 정상까지 모두 ‘윤제림’으로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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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림경영인협회 정은조 회장이 앞으로 산림의 방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에 이어 50여년 조림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12년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당시 수상공로에 나온 치산녹화 조림실적은 다음과 같다. 1971년 삼나무․편백․해송 61㏊, 72년 삼나무․편백․리기다․해송 70㏊, 74년 밤나무 10㏊, 77년 편백 7㏊, 81년 은사시 2㏊, 89년 이태리포플러 5㏊, 95년 느티나무 4.5㏊, 96년 상수리․고로쇠 3㏊, 97년 상수리․고로쇠 5㏊, 98년 상수리․고로쇠 27㏊, 99년 고로쇠 3㏊, 2000년 상수리․편백․잣나무 16.5㏊, 01년 잣․상수리․고로쇠 15㏊, 02년 고로쇠․상수리․밤나무 8㏊, 03년 백합․상수리․고로쇠 5㏊, 09년 편백나무 5㏊, 10년 소나무․편백 8㏊ 등 실제 산림면적보다 더 많은 339㏊의 경제수와 숲을 가꿨다. 특히 12㏊의 참나무림은 한국의 참나무림의 대표하는 산림으로 인정받아 국가 지정 채종원으로 지정됐다. 이후 15년 간 우량종자를 전국에 공급, ‘상수리 할아버지’로 불리어지게 됐다. 또 매년 120㎥씩 10년간 1,200㎥의 표고자목용 참나무를 인근 장흥․보성 지역 표고재배농가에 공급하여 표고버섯 주산단지로 지정받아 고소득을 올리는데 밑거름이 됐다. 정부에서 인정한 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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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의 아버지 장상환 선생이 참나무 묘목을 심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아버지의 대를 이었지만 생각은 달랐다. ‘지금까지의 산은 녹화였다면 앞으로의 산은 수익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를 심어 벌채해서 원목으로 팔면 일순간 돈을 만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식목해서 원목으로 자랄 때까지 40~50년을 기다려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다. 이래서는 산림의 미래는 없다. 더욱이 한국의 원목은 밀림의 원목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산림의 수익모델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아버지 세대에는 밤나무 등 유실수를 심어 소득을 올렸지만 밤나무 등을 대체할 새로운 모델이 필요했다. 여태까지 100억 원 가까운 자금이 투자됐지만 뚜렷한 수익모델이 생기지 않았다. 일단 하나씩 시행해보기로 했다. 밤나무를 벌채한 자리에 조경수를 빽빽하게 심었다. 밀식한 조경수를 한두 그루씩 벌목해서 내다 팔았다. 굴참나무는 코르크 원료로, 참나무는 버섯 표고목으로 소득을 올려나갔다. 뭔가 아쉬운 마음을 지울 길 없었다. 새로운 산림경영모델에 대한 갈증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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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부들이 1970년대 당시 초암산과 주월산 일대 민둥산을 일구고 있다.

전남 보성 초암산은 전국 최고로 꼽히는 철쭉 군락지에다가 빽빽한 편백나무와 삼나무, 구상나무, 전나무 등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산림을 자랑하고 있고, 주월산은 비슷한 수종에 정상부에 있는 패러글라이딩장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는 정 회장이 염두에 두고 있는 산림경영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는 ‘산림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높은 삶의 질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꿔야 한다’는 신념에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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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조 회장이 초암산 일대에 있는 구상나무 밑동을 잡아 보이고 있다.

정 회장은 기본적으로 산림은 6차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산 안에 1․2․3차 산업이 전부 들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숫자를 합하면 6이 된다. 그래서 6차 산업이다. 산에서 트레킹과 등산, 청정 임산물과 함께 웰빙 음식, 그리고 힐링과 이에 따른 교육 등이 총체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복합영농산업으로 산림을 육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역사회와 연계가 필요하다. 보성은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천연 염색이 있고, 전국 최고의 녹차밭에서 나오는 수제 녹차를 제공할 수 있고, 서편제로 대표되는 소리를 즐길 수 있는 문화까지 한 군데서 종합적으로 모을 수 있는 지역상생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게 앞으로 산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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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이 초암산 산림을 보기 위해서 방문, 정 회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엄 대장은 초암산의 우거진 산림에 매우 감탄했다고 정 회장이 전했다.

그는 지난 2월 26일 한국산림경영인협회 제 19대 회장으로 선출됐고, 지난 3월12일 취임식을 가졌다. 한국산림경영인협회 회원은 최소 15㏊ 이상 산지를 소유해야 가입자격이 주어진다. 회원수는 360명. 이들이 소유한 면적만 따지면 전국 최고의 땅부자들이 모인 협회인 셈이다. 1인 평균 100㏊ 정도이며, 최대 1000㏊ 소유한 회원도 있다.


정 회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3가지를 약속했다.

“임업인들의 지위향상을 최우선과제로 삼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엔 한국독림가협회를 만들어 조림가를 독립운동가 비슷하게 대접했습니다. 앞으로 산지에 투자한 사람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산을 소득창출의 원천으로 삼아, 자립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베이비부머들이 귀농․귀촌․귀산하는 현실에 맞춰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는 교육이나, 정책 등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는 지역사회와 융합해서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12.신원섭( 왼쪽 첫번째) 산 림청장  원로 임업 인 간담회.JPG

신원섭 산림청장이 원로 모범 임업인 20여명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 얼굴 가린 사람이 정은조 회장. 사진 산림청 제공

그는 이어 부재산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부동산투기목적이거나 산지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등기만 해둔 상태”라며 “산지 수익모델을 개발해서 널리 보급하면 이들도 자연히 산으로 돌아올 것으로 본다”고 확신했다.

과연 산이, 아니 산림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디이고, 무엇일까? 광릉 수목원에 헌액 된 5명의 인물이 우리 산림을 가꾼 1세대라고 한다면 다음으로 헌액 될 2세대 인물은 과연 누구이고, 어떤 인물일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정 회장과 같이 산림을 경영모델로 활용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인물들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유비

    04.07,2014 at 1:25 오후

    귀농 귀촌 하시는 분들에게 귀한 정보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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