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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이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매년 세계 각국서 도보순례객 넘쳐

프랑스 생 자크(Saint. Jacques) 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이르는 820㎞의 순례길.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세계 각국에서 그토록 많은 도보순례객들이 모여들까. 이런 명소만 한 곳 있어도 그 지역은 정말 살만 날 것 같다.

우선 이 길이 어떤 길인지부터 한 번 살펴보자. 산티아고 가는 길은 유럽 대륙에서 출발해서 스페인 북부지역을 가로질러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에 있는 대성당을 향하는 길을 말한다. 중세시대부터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던 가톨릭 순례자의 길로, 지상의 길이면서 동시에 천상의 길이기도 한 곳이다. 산티아고란 이름은 성 야고보에서 유래했다.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영어권에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 불어는 생자크(Saint. Jacques)로 불리며,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로 불린다. 야고보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의 형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레아 출신으로 예수의 부름을 받았을 때도 아버지와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예수의 제자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예수의 제자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이 길에 그의 이름이 어떻게, 언제부터 이 길이 붙게 되었을까? 스페인에 가톨릭이 알려진 것은 성 야고보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한다. 성 야고보는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복음서, 사도행전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 사도였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유대 땅을 떠나 머나먼 서쪽 땅으로 선교를 떠났다. 야고보는 로마 제국의 속주인 이스파니아에서 포교하려고 애썼으나 성과가 없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헤롯왕 아그리파 1세에 의해 목이 잘려 순교했다.

전설에 의하면 헤롯왕에 처형된 야고보는 제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돌로 만든 배에 실려 스페인 북서쪽으로 향해 보내졌다고 한다. 몇 명의 제자들이 그의 유해가 담긴 돌로 만든 널을 해변까지 나르자, 천사가 양 옆을 붙잡고 있는 돌로 만들어진 배가 나타나 그 널을 실었다. 이 돌로 만든 배에는 노와 돛 그리고 선원조차도 없었다. 그 배는 일주일 동안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까지 나아갔다. 배는 풍랑을 만나고 나서 로마 시대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였던 현재의 빠드론 지역인 이리아 플라비아에 이르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순교자의 동상.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순교자의 동상.

이 전설은 역사적 정황에 따라 고려해 재해석 해볼 수 있다. 야고보의 순교 이후 가톨릭의 오래된 전통에 따라 그의 제자들이 참수당한 사도의 시신을 거두어 수의를 입히고 팔레스타인 해안으로 옮겼다. 하파 항구에서 상선 아 바르까 데 뻬드라(A Barca de Pedra)에 사도의 유해를 싣고 지중해와 이베리아 반도의 대서양 해안을 지나 서쪽 끝, 사도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했던 곳까지 왔다. 시신을 팔레스티나의 하파에서 이리아 플라비아까지 돌로 만든 배로 옮겼다는 것은 갈리시아에서 로마 제국 내의 다른 곳으로 광물을 운반했던 배로 유해를 옮겼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바닷길을 항해하던 배는 아로우사 리아, 우야 강으로 들어서서 또레스 데 오에스떼, 뽄떼세수레스같은 로마의 시설물을 지나,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경로로 야고보의 배는 로마인의 도시 이리아 플라비아에 도착했을 것이다.

아스토르가성당 가우디 주교의 사택

아스토르가성당 가우디 주교의 사택

이후 야고보의 무덤은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게서 잊혀 졌고, 스페인의 가톨릭화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8세기쯤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슬람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프랑스로 넘어가는 중에도 소수의 가톨릭 신자가 스페인의 북서쪽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서기 813년 호기심 많은 가톨릭 수도사인 ‘은둔의 빠이요’가 감미로운 음악 소리와 반짝이는 별을 따라 멀리 갈리시아에 있는 구릉지까지 이르게 된다. 그 곳에는 밝게 빛나는 한 무리의 별빛이 어느 곳을 비추고 있었고, 그는 여기에서 유골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곳은 ‘별이 비춘 들판’이라는 이름의 캄푸스 스텔라(Campus Stellae)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재의 꼼뽀스뗄라(Compostela)가 됐다.

포르토마린 성당.

포르토마린 성당.

이 소식은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이리아 플라비아의 주교 떼오도미로는 이 소식을 듣고 로마 교황 칼릭스투스 2세에게 보고한다. 교황은 발견된 유골을 성 야고보의 것으로 인증하고 축복했다. 그리고 그는 곧 이 사실을 아스투리아스의 왕인 알폰소 2세(791~842)에게 알린다. 알폰소 2세는 이곳을 찾아와 세 채의 아름다운 성당을 건축한 뒤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며 일종의 종교적 이벤트를 벌인다. 이를 통해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 성자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있는 크루즈 데 페로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있는 크루즈 데 페로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 야고보는 정치적으로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에 주요한 명분이 됐다. 전설 속에서 성 야고보는 로그로뇨 근처 ‘꿀라비호 전투’에서 백마 탄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슬람 군대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이슬람교도의 앞을 막았다. 야고보의 모습을 보고 사기가 오른 가톨릭 군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격하여 승리했다고 한다. 때문에 야고보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진 순례 성인 야고보(Santiago Peregrino)보다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전사 야고보)라고 불린다. 현재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 시청으로 쓰고 있는 라호이 궁전에 성 야고보의 기마상이 놓이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만자린에서도 인증샷.

만자린에서도 인증샷.

9세기부터 가톨릭에서는 이슬람 침략에 대항하는 방법의 하나이자 북부 스페인 사람들이 이교도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티아고까지의 순례를 장려했다. 순례지 홍보는 중세 마케팅의 결정체가 되었으며, 이후 순례자들의 숫자는 수백 년 동안 계속 증가했다. 특히 터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으로의 순례 여행이 위험해지자 수많은 프랑스 신자들이 산티아고 순례에 나섰다. 

아스토르가 광장호텔의 전경.

아스토르가 광장호텔의 전경.

 현재 피레네 산맥의 생장 피드포르에서부터 스페인 북부지역을 관통해 가는 길을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이라고 부르며 가장 일반적인 순례 루트로 알려져 있다.

1189년 마침내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는 교황 알렉산더 3세에 의해 로마, 예루살렘과 같은 가톨릭의 성지로 선언됐다. 또한 교황은 칙령을 발표하여 성스러운 해(산티아고 성인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 동안 지은 죄를 완전히 속죄 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 받는다고 대사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순례자들의 수는 12, 13세기에 가장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에만 약 50만 정도의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었으며, 이때 순례길을 따라 많은 도시와 마을이 생겨났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가톨릭의 수복이 완료된 후 순례자 숫자는 점차 줄어들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순례를 했다.

그 후 1982년에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방문하면서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대중적인 인기가 불붙기 시작했다.

또한 1987년에 EU가 까미노를 유럽의 문화유적으로 지정하고, 1993년 유네스코가 까미노를 세계문화유산에 추가하면서 폭발적으로 순례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1997년 파울로 코엘료가 발표한 <연금술사>가 세계적인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소설의 배경이 된 이 순례자의 길이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레온 산마르코 광장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마친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레온 산마르코 광장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마친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도보로 횡단하면 40일 가량 걸리지만 자전거 라이딩으로 한다면…. 생각만 해도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자전거 라이딩은 12일 만에 820㎞끝낸다. 옛스런 중소도시와 산골마을을 접하며, 중세가 살아 있는 살라망카와 수도 마드리드를 관광하는 일정도 포함해서 총 18일 간의 일정으로 스페인을 가슴으로 느끼는 진정한 힐링여행을 떠난다. 문의 혜초여행사 02-733-3900 또는 02-6263-0900. 홈페이지 www.hyecho.com 참조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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