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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이방원이 만든 우리 첫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지도의 의미는?

‘지도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모방한다.’ 지도강국 일본에서 회자되는 지도에 관한 아포리즘이다. 독도를 두고 일본이 수십 년째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그 근거는 뭘까. 간단히 보자. 1618년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 어부에게 내준 죽도도해(어업)면허와 1905년 을사조약으로 독도를 정식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장 큰 근거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세와 근대 제작된 거의 모든 지도에 독도가 한반도에 속한 영토라고 나온다. ‘현실이 지도를 모방’한 결정적 근거가 된다. 역설적이지만 일본을 이를 무시한다.

지도는 한 국가의 영토를 표시하는 가장 압축적이고 역사적인 자료가 된다. 특히 유럽의 제국 열강 시절엔 수많은 지도가 제작됐다. 자국의 지도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의 야망을 드러낼 아시아로의 침략 자료로 지도를 제작했다. 지도를 따라 아프리카로, 인도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한반도로 진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왕족과 귀족의 독점물이었고, 제한적 소유가 가능했다. 지도에 나온 지리는 국토의 지형지세․토지․인구 및 물산을 파악하여 국정의 기초자료를 마련하려는 의도였다. 간단히 얘기해서 세금을 걷기 위한 기초자료였던 것이다.

지도는 왕족에서 귀족으로, 이어 서민에게로 일반화 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거친다. 초기의 지도는 통치수단으로 왕족이, 이어 제국주의 시대엔 귀족들 중심으로 옮겨졌다가 현대에 들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계로 진전되어 왔다. 지도의 역사적 흐름이다. 우리도 예외 아니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만든 우리나라 첫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전도.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엔 없고 일본에만 보존돼 있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만든 우리나라 첫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전도.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엔 없고 일본에만 보존돼 있다.

우리는 지도에 있어 전형적 후진국이다. 아직 규제가 일부 남아 있지만 이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단계에 왔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계간 <고지도>가 국내 처음으로 지도 전문잡지로 창간됐다. 초대 편집장을 맡은 최선웅씨는 지도를 한 마디로 하면 “그 시점의 역사”라고 말한다. 지도는 당시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자료라는 의미다. 지도에 담긴 지리정보, 역사적 내용, 지형지물 등 읽어낼 수 있는 수많은 정보를 기호로, 문자로 표시한다. 정복자들도 침략지에 가면 제일 먼저 보는 것이 그 나라의 지도였다. 어찌 보면 침탈과 식민지의 역사만 겪은 우리의 고지도가 일본이나 유럽 등에 많이 나가 있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일지 모른다.

고지도는 원시시대 벽화부터 시작된다. 벽화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그걸 지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읽어낸다.

우리나라에서 그린 첫 세계지도는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 태종 이방원이 왕의 권위를 세우고 통치하기 위한 자료로 1402년 제작했다.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고, 당시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과 일본의 지도와 조선의 이전 지도를 밑바탕으로 그렸다고 한다. 희망봉을 발견하기 전 아프리카 희망봉이 지도에 나올 정도로 상세하게 그려진 훌륭한 지도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소유하지 않고 있다. 임진왜란 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 일본 류코쿠대학 도선관에 소장돼 있다.

<고지도> 창간호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특집으로 다뤘다. 우리 민족이 만든 세계 최초의 지도를 강조하고 있다. 책에는 이 지도의 지도사적 의의와 제작과 내용, 현존 사본 현황, 모사본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 소개하고 있다.

그는 “우리 민족의 혼이 들었고 우리 선조들의 유산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일본으로부터 반환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문화재가 명확한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되물었다. 사실 이 지도를 일본인이 강제로 가져갔다는 사실이 입증만 되면 반환운동을 명확히 벌일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지도 소유자가 국제 경매를 통해 구매해서 가져갔다면 소유권을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다. 언제, 어떻게 일본에 건너갔는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환운동을 벌이면 소유관계가 명확히 들어날 수 있다고 최씨는 주장한다.

<고지도>2호도 벌써 기획은 끝냈다. 원고를 받고 있다. 2호 특집은 ‘천하도’. 조선 후기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세계지도다. 기존 지도와는 조금 다른 일반인들이 많이 쓰던 지도다. 지리적 정보를 담은 내용보다는 대부분 중국 고대 지리서인 <山海經(산해경)>에 나타나는 지명들이다. 국명도 가상적인 상상으로 이뤄졌다. 사람이 죽지 않는 나라라고 하는 불사국(不死國), 머리가 세 개 달려 있다는 삼수국(三首國), 그리고 삼신국(三身國) 등이 나온다. 천하도의 내용은 대체로 중국 고대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으나, 중국․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세계지도다. 일반인이 쓰던 지도였으니 개인소장본도 많고 규장각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에도 소장돼 있다.

국내 처음으로 지도 전문잡지로 창간된 계간지 의 표지.

국내 처음으로 지도 전문잡지로 창간된 계간지 <고지도>의 표지.

최 씨는 창간호를 내면서 <고지도>라는 제한적이고 전문적 제호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첫 마디가 “그건 <월간산>과 마찬가지다”라고 하며 웃었다. 하지만 소재는 무궁무진하다고 덧붙였다.

“고지도는 규장각에 6,000점, 국립중앙박물관에 5,000점 등 국내에만 소장돼 있는 게 약 2만 여점 가량 됩니다. 앞으로 소개할 자료도 무궁무진합니다. 고지도뿐만 아니라 고지도와 얽힌 스토리․사람․지명까지 소개하면 더욱 풍부한 계간지가 될 것입니다. 면수가 100면 내외로 제한돼 있지만 앞으로 산뜻한 기획과 더불어 더욱 볼거리 있고 안정되고 좋은 잡지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매우 낮은 편이다. 더욱이 고지도에 대한 연구는 더욱 미약하다. 고지도 연구하는 교수와 전문가를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잡지 <고지도>를 통해 고지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대중적 인지도를 얻을 생각이다.

초대 편집장 최씨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고지도 전문잡지를 창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의외의 상황이 발단이 됐다. 한국고지도연구학회에 같은 회원인 고지도․고서․유물 유통회사를 운영하는 티메가코리아(TMECCA KOREA) 김태민 회장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지난 춘계 학술대회에서 마주쳤다. 대뜸 김 회장이 “<고지도> 잡지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반신반의하며 “경기나 광고 등 여러 상황이 좋지 않은데 가능하겠느냐”며 대꾸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미 결심이 굳은 듯했다. 유럽과 서구를 상대로 지도와 고서 유통사업을 계속 해왔으니, 이에 대한 판단이 서 있었다. 유럽에서는 지도전문샵이나 뉴스레터 등이 활발하게 성업 중인 사실을 이미 본 것이었다. 그러면서 최씨에게 “광고도 자신 있다”고 했다. 최씨는 “그러면 한 번 해보자”며 기획서를 심사숙고 작성해서 전달했다.

창간호는 1,500부 발간했다. 두께는 100페이지 내외로 하기로 했다. 기사는 외국 업체를 겨냥해서 내용마다 영문을 따로 덧붙여 실었다. 한국고지도연구학회와 지리학회 등 전문가를 중심으로 일단 배포했다. 대중 독자반응은 살피고 있는 중이다. 차츰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까지 광고는 주로 외국계 지도 관련업종이 주류를 이룬다.

“1차 목표는 정기독자 500부와 시중판매 500부 정도로, 많이 잡지 않았습니다. 외국 고지도나 고서관련 딜러들 반응이 좋습니다. 우리 <고지도> 창간이 소프트랜딩 한 것 같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 고지도에 관해서도 일반의 관심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물론 그러면 우리 잡지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반응도 덩달아 좋아지겠지요.”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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