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신화(神話)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 시리즈를 시작한 뒤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를 두루 돌아보면서 받은 느낌은 소설가 이병주의 아포리즘(aphorism) 그대로였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褪於日光則爲歷史, 染於月色則爲神話)” 그의 소설 <산하>에 나오는, 그가 가장 자주 쓰던 격언 중의 하나였다.
일광의 역사와 월색의 신화. 추상적으로 구분하면 그렇다. 구체적으로는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이 사실적, 고고학적으로 검증이 되면 역사가 되고, 그냥 묻혀 있으면 신화적 상상력만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다. 즉, 밝혀진 사실을 역사학자들이 역사적으로 팩트(fact)로 확인한 것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다르게 표현해서 승자의 기록은 역사가 되고, 패자의 기록은 신화가 된다는 말도 된다. 좋고 나쁘고의 가치판단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동양학은 다소 신화적 요소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팩트)과 보이지 않은 것(픽션)을 연결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 믿는다. 물론 역사적으로 검증된 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동양학으로 고대문명을 보면 역사학자들이 보지 못한 팩트와 픽션으로 하나의 새로운 문명적 해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것도 한국의 대표적인 동양학자인 조용헌 박사의 시각을 통해서. 20여명의 참가자와 조 박사와 함께 고대문명 발상지인 터키로 향했다. 흔히들 여행을 다닐 때 최종적으로 터키를 다녀오라고 한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고, 터키를 보고나면 다른 지역은 시시해서 못 간다고 할 정도다. 기대를 듬뿍 안고 출발이다.
터키는 지중해와 페르시아만을 두루 아우르는 고대문명 발상지이자 그리스문화권이었다. 아니 그리스와 터키는 동일문화권이었다. 그리스문화권이라는 의미는 터키를 지칭하는 ‘아나톨리아(Anatolia)’라는 개념이 이를 반증한다.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로 ‘태양이 솟는 곳’이란 뜻인 아나톨(Anatole)에서 유래했다. 아나톨리아는 태양이 솟는 곳에 있는 땅이란 뜻이다. 그래서 지중해 너머 유럽에 있는 그리스에서 아나톨리아를 소아시아라고 부르며, 터키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그 역사는 무려 1만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의 단군신화보다 더 오래된 역사다. 지중해와 육상으로 서로 맞대고 있는 그리스와 터키는 둘도 없는 앙숙이다. 피도 섞이고 지명도 섞이고 생활양식도 섞이고 문화도 섞인 두 국가가 앙숙이라니…. 아마 수천년에 걸쳐 서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반복되면서 쌓인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자세히 설명할 부분이기도 하다.
터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 발상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고, 고대 샤머니즘과 기독교․이슬람이 공존하며, 유럽과 아시아가 동시에 있으며,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로서 문명사적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지역이다. 특히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은 성서에 언급된 최초의 강이기도 하며, 두 강 사이에 인간의 첫 거주지인 에덴동산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도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란 뜻이다. 여기에도 그리스신화가 전한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아름다운 여인이다. 메소포타미아에게는 티그리스(Tigris)와 유프라테스(Euphrates)라는 이름의 언니들이 있었다. 그녀는 3자매 중에 가장 추했으나 아프로디테의 축복을 받아 자라면서 미의 여인으로 변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아름다움에 반한 세 명의 젊은이가 동시에 청혼을 하자 고민 끝에 그녀는 공정한 심판자로 보코로스(Bochorus)에게 선택을 맡겼다. 보코로스는 메소포타미아를 선택했다. 하지만 다른 두 자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다투다 결국 모두 죽어버렸다는 신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