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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고대 유적도시 ‘에페스’, 도서관과 창녀촌이 마주보는 ‘聖性不二’

터키에서는 그리스신화와 유사한 부분이 너무도 많다. 똑 같은 지명도 수두룩하다. 특히 신전들은 마치 그리스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첫 목적지인 에페스(Efes)도 마찬가지다. 에페스는 아테네의 왕자 안드로클로스가 세운 고대 도시다. 안드로클로스는 아테네에서 새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델피 신전에 신탁(神託)을 한다. 예언자는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면 번성할 것”이라는 신탁을 전한다.

터키 고대 도시 에페스에는 항상 세계 각국에서 온 방문객들로 붐빈다.

터키 고대 도시 에페스에는 항상 세계 각국에서 온 방문객들로 붐빈다.

그는 바다(지중해)를 건너 어느 곳에 도착, 물고기를 잡아 구워먹고 있었다. 마침 그 때 숲에서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죽이게 된다.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딱 맞아 떨어졌다. 안도로클로스는 바로 그곳에 도시를 세운다. 그 때가 B.C. 7C경이고, 그 도시가 바로 에페스다. 라틴어로는 에페수스(Ephesus). 성경에서 에페수스로 나오는 그곳이다.

신전과 도시 구조가 그리스에서 본 도시형태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신전과 도시 구조가 그리스에서 본 도시형태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B.C. 6C경이 에페스의 예술과 과학의 황금기였다. 그 즈음 건축된 아르테미스 신전은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문헌상으로 당시까지 대표적인 세계 7대 불가사의 건물로 전한다.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에페스인들에게는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 받던 대상이었다. 또한 순결과 자애의 처녀신으로도 통했다. 이후 태양신 아폴론에 대비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로 거듭났다.

에페스 신전의 모습. 과거 찬란했던 모습을 얼핏 엿볼 수 있다.

에페스 신전의 모습. 과거 찬란했던 모습을 얼핏 엿볼 수 있다.

고대 도시 에페스로 들어서자 완전한 하나의 고대 도시 하나가 폐허가 된 채로 보존돼 있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하다. 상수도와 하수도, 목욕탕과 공중화장실, 아궁이 등 형체를 그대로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다. 앉아서 볼 일 보면서 그 밑으로는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이 씻어 내려가는 구조로 만들었다. 고대 계획도시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대로 그려졌다.

도시 공동시설로 사용했던 아궁이와 목욕탕 등이 그대로 흔적을 드러낸다.

도시 공동시설로 사용했던 아궁이와 목욕탕 등이 그대로 흔적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 도시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과 물, 그리고 방어진지였다. 에페스는 방어진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 적의 눈에 쉽게 띄지 않은 진지 같았다. 단지 앞쪽으로만 길이 나있어 출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한 멘데레스(Menderes)라는 강은 항구까지 불과 500m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강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시 전체를 공급한 아궁이에서 뗀 나무들의 누적물과 토사 등이 강을 덮어버렸다고 한다. 물이 없어지자 도시는 서서히 기능을 잃었고 결국 망했다고 한다.

고대 터키 에페스 시절 당시 사용했던 공동 화장실. 앉아서 볼일 보던 형태가 그대로 유지돼 있다.

고대 터키 에페스 시절 당시 사용했던 공동 화장실. 앉아서 볼일 보던 형태가 그대로 유지돼 있다.

에페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가 있다. 물론 아르테미스 신전과 그 앞에서 복구하고 있는 아드리안 황제의 궁전도 볼만 했지만 셀수스(Celsus)도서관과 도서관 앞 지하통로로 통하는 유곽(사창가)이다. 유곽 광고도 버젓이 길에서 하고 있다. 광고 표시도 희한하다. 방향을 가리키는 듯한 왼쪽발 모양과 나란히 오른쪽에 여자 얼굴, 그 위에 ‘+’, 그리고 거기서 45도 왼쪽 위로 하트표시와 구멍을 나란히 새기고 있다. 그게 바로 유곽 광고다. 설명을 듣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당신의 상처 난 영혼을 치료해줄 아름다운 여인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창녀촌을 찾아오라는 표시.

창녀촌을 찾아오라는 표시.

도서관과 사창가.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왜 이런 구조를 만들었을까? 그리스 고린도에서도 고대 여성 성직자가 매춘을 통해 교회 운영자금을 조달한 사실이 떠올랐다. 그것과 혹시 관련 있을까? 당시까지는 성직자와 매춘부가 구분이 없었을까. 지금의 기준으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주변 지형만 살피고 있던 조용헌 박사가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에페스 신전의 문은 그나마 원형이 조금 보존돼 있다.

에페스 신전의 문은 그나마 원형이 조금 보존돼 있다.

“당시까지 성(聖)과 성(性)이 구분이 별로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성성불이(聖性不二)’라고나 할까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스트레스 쌓이면 바로 앞에 가서 스트레스도 좀 풀고 했지 않았나 여겨지네요. 고대 서양에서는 성(性), 즉 섹스를 꼭 나쁘다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마에서는 너무 지나쳐서 결국 화(禍)를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은요.”

정말 그랬다. 서양에서는 남녀가 나체로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체촌도 있고, 나체해수욕장도 있듯이. 다 그런 풍습이 지금까지 전승되지 않나 여겨진다.

셀수스 도서관의 전면 모습.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서관 규모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셀수스 도서관의 전면 모습.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서관 규모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B.C. 6C경 건축됐다는 셀수스 도서관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에 1만권의 장서를 자랑했다고 전한다. 당시 세계 3대 도서관에 속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시 파피루스를 수출하던 이집트에서 셀수스 도서관이 너무 커지자 견제하기 위해 아예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했다고 할 정도다. 에페스는 파피루스 수입을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양피질로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양피산업과 양 관련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셀수스 도선관의 책들과 건물은 250년쯤 고트족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에페스의 원형극장. 도시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에페스의 원형극장. 도시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가면 원형극장이 나온다. 피온산 기슭에 있는 에페스 대극장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건축물이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2만4,000여명이 수용가능한 극장이다. 정면 3층의 무대 건물은 무려 18m에 달했으나 1층만 남아 있다. 아직도 활용 가능한 건물로 보인다. 그 옛날 에페스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에페스에 있는 그리스 마을의 모습. 다른 곳에 있는 마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에페스에 있는 그리스 마을의 모습. 다른 곳에 있는 마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에페스에 있는 그리스 마을의 와인카페. 싸고 맛 있는 와인이 즐비하다.

에페스에 있는 그리스 마을의 와인카페. 싸고 맛 있는 와인이 즐비하다.

에페스 마을에 있는 시장의 모습.

에페스 마을에 있는 시장의 모습.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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