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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메카’ 꿈꾸는 해창주조장… 첨가물 없고 가스·숙취 없어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 천상병 ‘막걸리’

시인 천상병이 이런 막걸리 말고 해창주조장 막걸리만 마셨다면 세상을 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창주조장 막걸리. 지난 3월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막걸리다. 현재 막걸리를 제조하는 전국의 양조장은 750여 곳 가량 되며, 막걸리와 각종 술을 같이 제조하는 양조장은 전국에 180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농촌진흥청이 공인한 전통주 소믈리에 1호인 오형우가 최고 막걸리로 꼽은 막걸리다. 한 가지 더 있다. 주인장 명함에 뚜렷이 박혀 있는 글귀다. ‘근대 문화유산 지정 주조장’이라고. 이 정도 되면 족보 있는 막걸리라 부를 만하지 않겠나.

 해창주조장 오병인씨가 고두밥을 퍼서 발효통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해창주조장 오병인씨가 고두밥을 퍼서 발효통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해창주조장 주인장은 오병인․박미숙씨, 서울출신 동갑내기 귀농 부부다. 2007년 귀농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는 각오로 이름도 오태원․박리아로 개명했다. 해남에서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여태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멋지게 살아보자는 각오로 바꿨다.

해창주조장은 근대문화유산으로 검토될 만큼 역사가 오래 됐다. 근대문화유산이란 글자에서 알 수 있듯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일본인 시바다 히로헤이가 1923년 정미소와 양조장을 설립, 운영했다. 정미소에는 당연히 쌀이 있으니 조선인이 좋아하는 술을 만들었다. 그게 해창주조장의 막걸리의 시조다. ‘바다 옆에 있는 창고’란 의미의 해창(海倉)이란 이름도 그렇게 나왔다. 당시까지는 매립이 안 돼, 지금 해창주조장 바로 앞이 포구였다고 한다. 일본인 시바다는 출산한 임산부엔 미역국을 끓여주는 등 조선인의 인심을 많이 얻었다고 동네사람들은 전한다.

오병인씨가 고두밥을 발효통에 붓고 있다. 여기서 15~20일 발효시키면 막걸리 원액이 된다.

오병인씨가 고두밥을 발효통에 붓고 있다. 여기서 15~20일 발효시키면 막걸리 원액이 된다.

해창주조장의 집도 일본식으로 잘 보존돼 있다. 술 담는 항아리에 소화(昭和)란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마당에 있는 우물은 지하 150m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로, 막걸리를 만드는 원수(原水)로 쓰인다. 이 우물도 유래가 있다. 해남은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꼽히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고향이다. 고산 윤선도의 고택은 해남 녹우당에 잘 보존돼 있지만, 녹우당에 가기 전 당시 포구였던 해창주조장 자리에 쉬었다 가곤했다고 한다. 그 때 마시던 물이 바로 지금 해창주조장 막걸리 제조하는데 쓰이는 우물이다. 족보가 500여년 된다는 얘기다.

우물 주변은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그 중에 700년 가까이 된 배롱나무가 눈에 띈다. 휘어진 줄기가 수백여 년의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가시나무와 아왜나무는 바로 집 옆에 있다. 연못 옆에는 단풍나무가 빨갛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더욱 고조시킨다. ‘정원이 아름다운 양조장’으로 이름날 만 운치다. 아름다운 정원과 깊은 물에서 나오는 물을 사용하니 자연스레 막걸리는 맛이 깊을 수밖에 없겠다. 

오씨의 부인 박미숙씨가 막걸리가 제대로 발효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오씨의 부인 박미숙씨가 막걸리가 제대로 발효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申先生白波逍遙臺(신선생백파소요대)’라는 빛바랜 비석이 소나무와 함께 있다. 백파(1767~1852)는 조선 후기의 승려다. 평소 교류가 깊었던 추사 김정희가 그를 ‘해동의 달마’라고 부를 정도로 선(禪)의 경지가 높았던 선승이다. 추사가 백파선생을 기려 쓴 비석은 고창 선운사에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유사한 비석이 해창주조장에 있다니….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짐작컨대, 당시 포구가 있던 자리에 백파와 추사(1786~1856)가 함께 노닐다가 비석을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요대’는 무위자연사상의 장자가 절대 자유의 단계가 도와 함께 노니는 ‘소요유(逍遙遊)’라고 지칭한 데에서 유래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경지를 말한다. 바다와 정원이 잘 어울린 뛰어난 경치를 보고 비석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해창주조장 문 앞에 있는 백파신선생소요대 비석.

해창주조장 문 앞에 있는 백파신선생소요대 비석.

이 아름다운 집, 해창주조장을 인수한 것은 순전히 오병인씨의 여행과 술 덕분이다. 오씨는 전국과 세계 각지로 부인과 함께 여행 다녔다. 당연히 해남에도 왔다. 해남에서 해창주조장 두 번째 주인을 만났다. 애주가인 오씨는 또 당연히 막걸리를 진하게 마셨다. 마시다보니 끝이 없었다. 취하는 줄도 몰랐다. 어느 순간 잠들었다. 다음 날 이전의 상태와 전혀 달랐다. 숙취가 완전히 없었다. 이렇게 좋은 술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서울 올라가는 길에 두 말을 더 마셨다. 가족과 떨어져 집에 도착했지만 마찬가지로 머리 아픈 게 하나도 없었다. 세상에 웬만한 술을 전부 마셔봤지만 정말 이런 술이 있다니…. 당시까지만 해도 술을 마시는 것으로만 여겼지,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너무 매력적인 막걸리라 자주 내려가서 마시고, 택배로 주문해서 마시고 했다. 그렇게 세월은 조금 더 흘렀다. 두 번째 주인이 인수해보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했다. 순간 필이 꽂혔다. 하지만 바로 나서지 않고 시장조사도 하고 주변상황을 알아봤다. 연세가 많은 그 주인 할머니는 자식들이 교수 등으로 훌륭히 자라 주조장을 할 여건이 못 됐다.

해풍 맞고 자란 순 해남쌀을 사용한 고두밥과 누룩이 더해져 발효통에서 거품을 내고 발효하고 있다.

해풍 맞고 자란 순 해남쌀을 사용한 고두밥과 누룩이 더해져 발효통에서 거품을 내고 발효하고 있다.

오․박씨 부부는 ‘인수하자’는 결단을 내렸다. 그게 2004년쯤이다. 결단을 내리는 여러 변수 중의 하나가 집터가 명당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뒷산이 잉어모양이고, 집터는 잉어꼬리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잉어는 꼬리에 모든 힘을 실어 움직인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집은 명당이며, 그곳 사람들은 활력을 얻고 재물이 모인다고 풍수가들은 말한다. 실제로 이전 주인은 아들 4명이 모두 교수 등 사회 저명인사로 성공했다고 한다.

오․박 부부는 인수했다. 인수하기 전 부인이 2년 먼저 내려와 해창주조장 막걸리 제조비법을 전수받고 막걸리 전문학원에도 숱하게 다녔다. 막걸리 제조 7개 과정이나 이수할 정도였다. 2년 동안 부부는 별거생활을 했다. 오씨는 서울에서 자식과 함께 생활하다 2007년 모두 정리하고 귀농했다. 본격 농촌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해창주조장은 90년 만에 3번째 주인을 맞이했다.

일제시대 설립된 해창주조장은 당시 사용하던 항아리에 ‘昭和’란 표시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일제시대 설립된 해창주조장은 당시 사용하던 항아리에 ‘昭和’란 표시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오씨는 제대로 된 막걸리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가 없는, 쌀과 효모 외에는 어떤 불순물이나 첨가물 없는, 편안하게 허리띠 풀고 마실 수 있는 몸에 좋은 술을 만드리라 단단히 각오했다. 많이 팔리고 안 팔리는 건 그 다음 문제였고, 자연히 따라온다고 믿었다. 이 좋은 바다 바람에, 이 좋은 물에, 이 좋은 자연환경에 좋은 술을 만들지 못하면 순전히 자신들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판단했다. 지극정성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한국 막걸리의 메카를 꿈꾸며, 아니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막걸리의 메카를 꿈꾸며….

해창주조장 정원은 일제시대의 모습 그대로 남아 매우 아름답다. 특히 500여년 된 배롱나무가 정원 중간에 자리잡아 더욱 운치를 더한다.

해창주조장 정원은 일제시대의 모습 그대로 남아 매우 아름답다. 특히 500여년 된 배롱나무가 정원 중간에 자리잡아 더욱 운치를 더한다.

부부는 새벽 5시나 6시쯤 일어난다. 옆에 있던 부인이 “시골에서는 해가 뜨면 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일이 끝난다”고 덧붙인다. 해와 함께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 해가 뜨면 시작될 일을 준비한다. 가장 중요한 고두밥 짓는 일은 전날 밤부터 이미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 고두밥이 완성되면 발효실로 일일이 손으로 퍼서 옮긴다. 오씨가 고두밥을 맛보라고 권한다. 약간 입에 넣어본다. 먹는 밥보다 훨씬 된밥이다. 그래서 고두밥이다. 밥은 해풍을 맞고 자란 1등급 순 해남쌀을 사용한다. 물은 수백 년 전부터 있었던 족보 있는 150m 지하수를 정수해서 쓴다. 막걸리 만드는 과정을 차례대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오병인·박미숙씨 부부가 주조장 내에 있는 항아리 옆에서 사이좋게 포즈를 취했다.

오병인·박미숙씨 부부가 주조장 내에 있는 항아리 옆에서 사이좋게 포즈를 취했다.

고두밥을 식힐 때 공기 중에 그대로 노출시킨다. 공기와 순화작용을 잘 하라는 의미다. 해남의 공기는 염분이 많아 세균방지 기능을 하며, 막걸리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작은 과정도 정성이다. 고두밥이 발효통에 들어가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과정도 훤히 들여다본다. 거품을 뽀글뽀글 내며 효모와 섞여 발효하고 있다.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발효통이 따뜻하다.

고두밥이 누룩과 발효되는 시간은 약 15일~20일 가량 소요된다. 다른 막걸리보다 3배 이상 걸린다. 보통 막걸리는 속성 발효제를 첨가해서 발효기간이 5일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빨리 만들어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걸리 메카를 꿈꾸는 해창주조장에서는 첨가물 없이 꼬박 15일 이상 발효과정을 거친다.

오․박씨 부부는 술의 미묘한 맛은 기후와 주변상황에 의해 좌우되는 걸 아미 경험을 통해 습득했다. 고두밥을 찌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다음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술맛이 별로 좋지 않았다. 또 비 오는 날이나 습기 있는 날, 더운 날도 술맛이 오묘하게 변했다. 잔잔한 해풍이 부는 봄․가을 12~15℃ 가량 되는 날씨가 술맛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미 파악했다. 부부싸움 한 뒤에도 술맛은 별로였다. 박씨는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도 별로 간섭을 안 하려고 한다. 오히려 서로 감정 상해 술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병인·박미숙씨 부부가 해창주조장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갓 나온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있다.

오병인·박미숙씨 부부가 해창주조장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갓 나온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있다.

15~20일 가량 발효시킨 술은 청주를 따로 거르지 않고 원액을 그대로 지하수로 순화시킨다. 발효 중간에 나오는 맑은 원액은 청주다. 이 청주를 따로 걸러내지 않고 막걸리로 같이 사용한다. 이 때 술도수는 14~15도 정도 된다. 등록한 술도수가 6도이기 때문에 원액에 물을 섞어 희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해창주조장 막걸리가 탄생한다.

일부 막걸리는 떫은맛을 잡기 위해 인공 감미료 아스파탐을 대량 섞지만 해창주조장에서는 첨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걸리통에 적힌 원료 표시엔 국내산 쌀 100%, 아스파탐 0.00005%라고 표시돼 있다. 600리터 발효통에 커피 한두 스푼 정도의 양이다. 거의 첨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씨는 발효과정에 있는 막걸리 맛을 보라고 권한다. 금방 갓 딴 수박․사과․바나나 등의 신선한 향기가 그대로 코로 들어온다. 신기할 뿐이다. 외부 첨가물을 넣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자신 있게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쌀 한 말로 만든 고두밥은 15~20일 이후 막걸리 500ℓ로 변신한다. 이를 900㎖와 2ℓ 두 종류의 용기에만 담는다. 다른 일반 용기는 750㎖와 1.8ℓ 두 종류다. 오씨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술을 마시다보면 당연히 한 잔 더 하고 싶지 않냐. 그래서 한 잔 더 넣는 용기를 따로 주문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역시 술 마시는 사람이라 술꾼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에서 택배로 주문을 받다보니 보내는 박스가 맞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다른 일반 용기와 같이 750㎖와 1.8ℓ 두 종류로 만들까 고민 중이다.

해창주조장 오병인·박미숙씨 부부가 막걸리 통을 들고 해창주조장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창주조장 오병인·박미숙씨 부부가 막걸리 통을 들고 해창주조장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막걸리,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전통술이다. 전통적으로 탁주, 농주, 가주, 국주 등으로 불린 국민술이니 만큼 이름도 많다. ‘막 걸러내는 술’이란 뜻이 원래 의미다. 막 걸러내서 마시기 때문에 유통기간이 길지 않다. 1964년부터는 쌀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에 밀가루 80%, 옥수수 20% 등으로 만들어 전통맛을 잃어버렸다. 다시 맛을 찾기 위해 많은 불순 첨가물을 섞었다. 마시고 난 뒤 숙취와 냄새가 더했다. 한때 막걸리를 외면한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막걸리 전통 명가와 막걸리 메카를 꿈 꾸는 해창주조장엔 오병인․박미숙씨 부부는 해풍 맞고 자란 순 해남쌀 100%로 첨가물 없이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우리 전통 막걸리의 부활을 꿈꾸며…. 실제로 그들은 “발효 유산균에게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고, 유산균에게 어떤 불순 첨가물을 주지 않고, 마실 때 트림으로 인한 냄새가 나지 않으며, 편안하게 허리띠 풀고 마시며, 마시고 난 다음 날 숙취가 없는 그런 막걸리에 만들어 보급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전국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제대로 된 우리 전통 막걸리를 해창주조장에서 만든다는 이름만 얻어도 저는 귀향에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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