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 이젠 마지막 달력 한 장 남았다. 이렇게 갑오년도 뒤안길로 사라진다. 한 해를 어디서,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 경건한 마음으로 한 해를 정리하면서 을미년 새해를 맞을 각오를 다지는 순간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장소로 해남 땅끝마을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땅끝이란 말은 끝인 동시에 반대편에서 보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해의 시작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장소다. 땅끝은 또한 일출과 일몰을 같이 볼 수 있다. 일몰의 경건함과 일출의 장엄함을 느끼며 더욱 마음을 다 잡을 수도 있다.
한반도 삼천리라고 할 때 출발점이 되는 곳도 해남 땅끝이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했다’고 쓰여져 있다.
고려시대 명종 때 입만 열면 시가 되고 문장이 되었다는 대문장가 김극기(金克己)는 해남의 기암괴석과 포구가 빚어낸 빼어난 경관을 두고 ‘산은 백 번을 돌고 촉나라 비단을 땅에 비뚜름히 깔았는 듯 물은 천 굽이 굽이치네’라고 노래했다. 한가닥하는 경관은 그 옛날부터 이름을 떨칠 정도였던 것같다.
산은 백 번을 돌아 비단을 깐 듯하고 물은 일천 굽이치는 듯한 그 해남 땅끝마을에서 매년 해넘이․해맞이축제를 12월31~1월1일까지 1박2일간 밤을 새우며 맴섬 일원과 갈두산․사자봉․땅끝전망대 일원에서 개최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일몰의 경건함’과 ‘일출의 장엄함’을 하루밤새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일몰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왠지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일출은 장밋빛같이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더욱 장엄하게 만든다. 바다와 하늘, 흰 구름과 파도의 포말은 마치 태초의 질료(質料․형식을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것으로 되는 재료, 물질의 생성변화에서 여러 가지의 형상을 받아들이는 본바탕)처럼 뒤섞여 있는 듯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경건하게 만드는 이유다.
한 해의 마지막인 이 때를 표현하는 말로 흔히 ‘연말’ 또는 ‘세모(歲暮)’를 많이 쓴다. 세모는 ‘해가 저문다’는 뜻이다. 해가 끝날 무렵이나 설을 앞둔 섣달그믐(음력 12월30일)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부터 세모 풍습에는 한해를 정리하는 수세(守歲)와 납향 등이 있었다. 수세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날을 새는 것이며, 섣달그믐날이면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조상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리며 성스러운 밤을 맞았다. 부엌신인 조상신은 1년 내내 그 집안 사람들의 선악을 지켜보다가 섣달 스무나흘날 승천하여 옥황상제께 고하고 섣달그믐날 밤에 하강한다고 한다. 그래서 연말 1주일은 1년 동안의 처신에 대한 심판을 기다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자숙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납향(臘享)은 1년 동안 일어난 일을 조상에게 고하는 것이다. 묵은세배(舊歲拜)는 1년의 마지막 날에 한 해를 무사히 잘 지냈다는 의미로 어른들께 묵은세배를 드리는 날로서,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날을 까치설, 또는 작은설이라고도 했다. 제석(除夕)은 음력으로 섣달그믐날을 말하며, 제야(除夜)라고도 부른다. 1년 중에 있었던 각종 거래의 종결을 의미한다. 빚이 있는 사람은 해를 넘기지 않고 모두 갚아야 하는 청산의 날이다. 만일에 자정이 넘도록 빚을 받지 못하면 새해 대보름까지는 빚 독촉을 할 수 없었으며, 결국은 빚을 받지 못하게 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언적(李彦迪․1491~1553)은 세모에 자신의 행실 3가지를 반성하는 세모삼성(歲暮三省)을 말했다. 일성(一省)은 연중 남에게 잘못한 일이 무엇인가를 반성하고, 이성(二省)은 가족, 친족, 마을의 일에 이기심으로 한 해 동안 소홀히 한 일이 무엇인가를 반성하며, 삼성(三省)은 자신의 양심에 꺼린 일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것을 요구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는 하루 세 번 반성한다는 ‘일일삼성(一日三省)’과 별로 다르지 않다. 첫째는 남을 위해 일을 꾀하면서 진실 되게 했는가이고, 둘째는 벗과 사귀면서 믿음성 있게 했냐이고, 셋째는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완전하게 익혔는가를 말한다.
이와 같이 한 해를 보내면서 자신의 성찰을 꾀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