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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양띠 상징 ‘백양의 전설’ 서린 백양산을 백설을 맞으며 걷다 - 마운틴
양띠 상징 ‘백양의 전설’ 서린 백양산을 백설을 맞으며 걷다

양(羊)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일화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꿈이 있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이성계가 양을 잡으려다 양의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성계는 이를 이상히 여겨 무학대사에게 물었다. 무학대사는 “양이라는 한자에서 양의 뿔과 꼬리가 떨어지면 ‘왕(王)’자만 남겨 되니 임금이 되리라”고 해몽했다. 이후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됐고, 양꿈은 길몽으로 지금까지 인식되고 있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약사암 앞에서 전방으로 보이는 능선과 봉우리들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약사암 앞에서 전방으로 보이는 능선과 봉우리들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양은 인간에게 좋은 징조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인식된다. 2015년 올해는 양(羊)의 해다. 얼마나 좋은 일들이 많이 벌어질까? 역술가들은 2015년 을미년 운세를 “국가는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국민 개개인은 사업을 하면 재물이 들어올 운세이고, 6~9월에 다가올 전염병에 대한 건강고비만 잘 넘기면 좋을 전망”이라고 예견한다.

그러면 양이라는 동물은 한반도 지형에 어떻게 녹아서 전해질까? 한반도에는 실제로 양과 관련된 전설이나 지명이 많다. 이성계의 꿈과 같이 길몽과 관련된 설화도 여러 곳에서 전해진다. 양의 해로서 양과 관련된 산을 찾아 그 유래나 지명을 찾아 답사하면서 풀어보자.  

약사암에서 바라본 백양사. 능선이 너울마냥 굽이져 흐르는 듯하다.

약사암에서 바라본 백양사. 능선이 너울마냥 굽이져 흐르는 듯하다.

양과 관련된 산은 장성 백양산(白羊山․722m), 경기 이천 양각산(羊角山․382m), 충남 보령 양각산(羊角山․412) 등이 있다. 경기 이천의 양각산은 산의 모양새가 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렀다는 설과 두 개의 뾰쪽한 산봉우리가 양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양각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전해진다.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여겨 지금도 인근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일행들과 함께 약사암으로 올라가고 있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일행들과 함께 약사암으로 올라가고 있다.

장성 백양산도 양과 관련된 산이다. 백양산은 원래 백암산이었고, 백양사도 백암사, 정토사로 불리다가 백양사로 바뀌었다. 백양산으로 바뀐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명망 높은 스님 한 분이 백암사 약사암에 수행하고 있었다. 약사암 바로 옆에는 영천암이 있다. 그 스님이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면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의 불경소리가 울려 퍼지자 백암산 골짜기에서 백양 한 마리가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내려와 불경이 잘 들리는 계곡 아래 바위에 앉아 고개를 조아리며 들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스님이 불경을 할 때마다 언제나 내려와 듣고 끝나면 돌아가곤 반복했다. 백양이 매번 내려와 불경을 듣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스님에게로 몰려들었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약사암 뒤 학바위를 바라보며 설명하고 있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약사암 뒤 학바위를 바라보며 설명하고 있다.

7일간 계속된 독경과 설법이 끝난 뒤 스님은 수행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게 됐다. 그 때 먼 곳에서 스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의 꿈속에 하얀 의관을 입은 동자 한 명이 나타나 스님을 기다렸다. 그 동자는 스님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 동자가 바로 백양이었다. 동자는 “저는 전생에 죄를 짓고 축생(백양)으로 태어났으나 스님의 불경을 듣고 업장이 소멸하여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됐습니다”고 했다. 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큰 절을 하고는 꿈결같이 사라졌다. 꿈에서 깬 스님은 상좌를 백양이 독경을 듣던 장소로 보냈다. 항상 불법을 듣던 그 백양은 그 자리에 죽어 있었다. 스님은 그제야 꿈에서 본 것이 꿈이 아닌 사실이라고 깨달았다. 그 이후 사람들은 백양이 불경을 듣고 사람으로 환생했다고 해서 절 이름을 백암사가 아닌 백양사로 불렀으며, 백양을 부른다는 뜻으로 그 스님을 환양(喚羊)선사라 부르게 됐다.

조 박사와 일행들이 영천샘터로 올라가고 있다.

조 박사와 일행들이 영천샘터로 올라가고 있다.

내장산과 백양산이 비자나무 북방한계선이다. 운문암 올라가는 길에서 백학봉 방향으로 틀어 약사암 쪽으로 향하자, 비자나무가 대형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원철씨는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비자나무 북방한계선이 북쪽으로 많이 올라간 상태”라고 말한다.

삼거리에서 약사암까지는 금방이다. 가파르지만 불과 100여m밖에 안 된다. 비자나무림을 지나 약사암이다. 조 박사가 주변을 쭉 한 번 살펴본다. 산세와 지세를 동시에 관망한다.

사실 백양산 운문암은 호남의 3대 명당에 꼽히기도 하고, 대한민국 3대 영지처(靈地處) 중의 하나다. 다른 두 곳은 대둔산 태고사와 변산반도 월명암이다. 풍수에서는 백양산을 선녀직금혈(仙女織錦穴․선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 명당이라 한다.

공단 직원이 약사암 올라가는 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공단 직원이 약사암 올라가는 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명당자리 부근에 선 조 박사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약사암 맞은 편 저 봉우리는 전형적인 옥녀봉형입니다. 뾰쪽한 문필봉보다 조금 완만하면서 둥글죠. 문필봉이 학자나 문호를 많이 배출한다면 옥녀봉(玉女峰․470m)은 부자가 많이 나오는 지형입니다. 노적봉과 조금 비슷합니다. 북한산 노적봉 밑에 노적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삼성 창업자 이병철 생가 주변은 전부 노적봉입니다. 대단한 부자가 나올 지형이죠. 실제로 이병철 같은 부자가 나왔지 않습니까.”

일행들이 약사암과 백학봉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다.

일행들이 약사암과 백학봉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다.

옥녀봉과 마주하는 봉우리는 도집봉(道集峰)이다. 도가 집결된 봉우리란 뜻이다. 약사암 주변은 남한 3대 기운처 중의 하나라는 명성답게 조 박사가 바로 옆에 있는 물외암, 영천암 등을 보더니 “저 곳(영천암)에서 한 일주일 기거하고 싶은데 어느 스님한테 얘기하면 되죠?”라고 공단 직원에게 묻는다. 마침 암자를 지키는 스님이 출타 중이다. 한 일주일 있어보면 그곳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같이 있으면 안 되냐, 같이 경험해보자”라고 제안하자 “그러자”고 응한다. 산세만 봐도 기운은 흐르는 것같이 보인다. 바로 위 봉우리가 백학봉이다.

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백학봉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8호로 지정된 곳이다. 문화재청에 기록된 백양산 백학봉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성 백양사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암벽 및 식생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왔을 만큼 이름난 곳이다. 백양사가 위치한 백양산은 내장산과 함께 단풍이 특히 유명하며,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방한계선을 비롯하여 1,500여종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자원의 보고라 할 만하다. 백양사는 백양사 창건 역사를 전하는 정도전의 <정토사교루기>를 비롯하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면앙정 송순 등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을 탐방하여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문을 남기는 등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명승지다. 특히 백양사 대웅전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백학봉과 쌍계루 앞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의 자태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 지금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갑작스럽게 내린 눈으로 산은 온통 순백의 세상으로 변했다.

갑작스럽게 내린 눈으로 산은 온통 순백의 세상으로 변했다.

백학봉 아래 바위 틈새 자리 잡은 약사봉은 보기만 해도 기운덩어리로 느껴진다. 그 바위틈새에서 나오는 영천샘물도 일품이라고 한다. 원래 영천(靈泉)에서 물이 아닌 쌀이 나왔다고 전한다.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와서 쌀이 더 나오라고 막대기로 쑤셨더니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 한다. 그 물이 지금 영천굴 약수다. 이 약수는 병을 낫게 한다 하여 많은 기도객들이 와서 기도하며 마신다. 그렇다, 약사암은 바로 중생의 병을 낫게 해준다는 약사여래불이 있는 그 절이 아닌가. 약사암 주변에 물외암, 영천암 등의 암자가 몇 개 더 있다.

백학봉 아래 학바위를 배경으로 여러 암자를 거치면서 더 이상 양과 관련된 전설은 없고 오히려 학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공단 직원은 “이곳을 바깥에서 보면 백학이 나는 형상 같다고 합니다. 우리도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렇게 전하는 얘기를 전할 뿐입니다”고 말했다. 약사암을 GPS로 고도를 확인하니 해발 331m가 나온다. 그리 높지는 않다. 옆으로는 바위 암벽 사이로 가파른 등산로가 이어진다.

남한 3대 명당터로 불릴 정도인 백양산 운문암 자락에 인촌 김성수 선생 일가의 묘지가 있다.

남한 3대 명당터로 불릴 정도인 백양산 운문암 자락에 인촌 김성수 선생 일가의 묘지가 있다.

백양과 관련된 산에서 양에 관한 형세는 보이질 않고 전부 백학과 관련한 지형뿐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조 박사가 한 마디 거든다.

“백학과 백양의 공통점은 흰색입니다. 기독교에서도 마리아는 흰색을 입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백의관음이라고 하죠. 정신세계의 고단자는 흰옷을 입습니다. 중생, 일반인과는 다른 차원이죠. 이는 사람이 죽으면 소복을 입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티벳에서는 흰 타올을 걸어주죠. 높은 정신세계로의 축원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약사암․영천암 등 기운 뭉친 암벽에 위치

백학과 백양이 공존하는 다른 차원의 땅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날씨가 어두컴컴해지더니 아니나 다를까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아, 거기에 백설까지…. 백학과 백양의 공존 현장에 백설을 맞으며 걷고 있다. 3백(白)의 세상이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온통 백설의 세상으로 변한 눈 사이를 뚫고 하산하고 있다.

온통 백설의 세상으로 변한 눈 사이를 뚫고 하산하고 있다.

영천암 약수물을 마시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기도발도 잘 받는다고 공단 직원이 말한다. “영천암 안쪽에 바위 안으로 20~30m 들어가는 굴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그곳에 들어가 사람들이 공부했다고 전합니다.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곳이죠.”

이를 듣던 조 박사가 한 마디 거든다. “경상도 절은 배가 불러 윤택해진 반면 전라도 절은 적막강산입니다. 옛말에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했습니다. 배 부르고 따뜻하면 음탕한 욕구를 생각하는 반면 춥고 배 고파야 도 닦는 마음이 생긴다는 이치인거죠. 이런 곳에서 수행공부하기 좋죠. 오히려 도 닦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곳이 복 받은 곳입니다.”

하산길에 쌓인 눈 사이로 조그만 폭포에서 눈을 뚫고 물을 뿌리고 있다.

하산길에 쌓인 눈 사이로 조그만 폭포에서 눈을 뚫고 물을 뿌리고 있다.

약사암 뒤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그칠 줄 모른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워낙 가팔라 미끄러지면 완전 낭패다. 조원철씨는 “이 코스가 백양산 중에서 가장 난코스”라고 설명한다.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800m 올라가면 백학봉이라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800m가 그리 길 줄은 미처 몰랐다. 중간에 학바위가 있다. 조원철씨는 “학이 날아가는 형상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봉우리”라고 설명한다. 학을 쳐다볼 수가 없으니 확인할 수가 없다. 조망은 백학봉보다는 학바위가 훨씬 낫다고 한다. 실제 저 아래 백양사가 둥지 턴 자리도 보이고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여 있다. 앞으로는 옥녀봉(왼쪽)과 도집봉(오른쪽), 그리고 전방으로는 겹겹이 쌓인 봉우리들이 너울처럼 다가오는 듯하다. 조 박사는 “전방이 저 정도 높이에서 겹겹이 쌓인 능선들이 좋습니다. 전방으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줍니다”라며 설명한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

백양사 대웅전 뒤로 명승 제38호인 백학봉 설경이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문화재청

백양사 대웅전 뒤로 명승 제38호인 백학봉 설경이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문화재청

마침내 백학봉이다. 봉우리 하나만 덜렁 있다. 오히려 학바위보다 확실히 못한 듯하다. 눈이 쏟아져서 그런지 시야도 막혀있고, 평범한 봉우리 같다. 눈이 너무 쏟아져 바로 나아간다.

백학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묘지삼거리에서 묘지방향으로 살짝 튼다. 인촌 김성수 선생 어머니묘가 있는 곳이다.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하는데, 그 자리에 쓴 묘가 어떤지 확인해 볼 심산이다. 

마침 인촌 김성수 선생 어머니묘지에 도착했다. 이 높은 곳에 묘지를 쓰느라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겠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고도를 확인하자 ‘역시’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GPS 고도는 정확히 626m를 가리킨다. 인간이 살기 가장 좋은 곳이 고기압과 저기압이 마주쳐 기압이 가장 안정적인 해발 600~700m 높이다. 동서고금 고대 신전이 있는 도시들은 모두 이 높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로 그 높이에 묘가 있다. 그 묘 조금 위에 관련 묘가 또 있다. 지관들이 이런 터를 그냥 둘리 없지. 천하의 명당터에 인간이 가장 살기 좋은 고도에 묘지를 잡았으니 번성하지 않겠나 싶다.

 

명당터의 묘지를 끝으로 보통 등산로를 따라 백양사로 돌아왔다. 백양사 대웅전 앞에서 명승 제38호 학바위를 바라보는 경관도 볼 만하다. 어렴풋이 학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내려와 쌍계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경관이야 명승이니 오죽 하겠냐만 백학의 머리가 어디인지, 그 속에 있는 백양은 또 어떠한지, 한참 상념에 잠겼다. 그것도 백설을 맞으며 백양을 찾아서 간 산행이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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