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게 뭘까? 여자의 옷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면 여자의 옷깃을 여밀게 하는 건 뭘까? 바로 바람이다. 그것도 봄바람이다. 봄바람은 여자의 옷깃을 여밀게 하고 봄을 알린다. 그 봄바람으로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있다. 일종의 봄의 전령. 봄의 전령 중에 대표적인 식물이 너도바람꽃이다. 너도바람꽃의 속명은 ‘Eranthis’. 이는 그리스어로 ‘er(봄)’과 ‘anthos(꽃)’의 합성어다. 이름부터 봄을 알리는 야생화다. 너도바람꽃은 ‘Anemone’라는 속명을 가진 바람꽃과 비슷하여 이름 붙여지게 됐다. 바람꽃 아네모네(Anemone)는 바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에서 유래했고, 아네모네는 ‘바람의 딸’이라는 의미다.
식물 이름에 ‘나도’나 ‘너도’라는 이름을 가진 경우는 완전히 다른 분류군에 속하면서도 모양이 비슷할 때 붙인다. 나도국수나무, 나도냉이, 너도고랭이, 너도골무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너도바람꽃은 ‘봄바람을 몰고 오는 바람꽃 중에 너도 봄바람을 몰고 오는 나무구나’하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 또는 ‘사랑의 비밀’이라 한다. 이에 유래하는 전설이 재미있다.
꽃의 신 플로라에게 미모의 시녀가 있었다. 그녀 이름이 아네모네였다. 플로라의 남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아내의 시녀를 사랑하게 됐다. 화가 난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멀리 쫓아냈다. 하지만 남편은 바람을 타고 쫓아가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질투에 불탄 플로라는 그녀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슬픔에 젖은 제피로스는 언제까지나 아네모네를 잊지못하고 꽃이 필 무렵이면 늘 따뜻한 바람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 봄의 전령 너도바람꽃은 한국에서 자생하는 14종의 바람꽃 중의 하나다.
한국의 대표적인 야생화 사진작가 문순화씨가 너도바람꽃을 처음 렌즈에 담은 건 1979~80년 초 즈음이다. 한국에서 야생화 달력을 처음 내고 야생화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뜰 즈음이었다. 지리산에 갔다가 구례 화엄사 들러 계곡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당시 문씨는 눈에 띄는 야생화는 무엇이든 렌즈에 담았다. 뭔가 새로운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셔터를 눌렀다.
서울 올라와서 항상 그렇듯 고 이영노 박사에게 달려갔다. 별다른 표정 없이 ‘거기에도 이 꽃이 있어?!’하는 식이었다. 너도바람꽃이란 걸 당시에는 몰랐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비슷한 꽃이 있으면 무조건 담았다. 훗날 알기 쉽게 날짜와 장소는 반드시 필름에 표시했다.
그런데 이 꽃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었다. 지리산, 덕유산, 태백산, 대덕산, 설악산, 홍천, 무등산, 주흘산, 천마산, 화양산 등지에서도 렌즈에 담았다.
어떤 꽃인지 궁금해서 <야생화도감>을 뒤졌다. 너도바람꽃이란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도감에는 ‘우리나라 북부 이북과 지리산, 덕유산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고 소개하고 있다. 무등산에서도 담았고, 경남 양산 천성산에서 매년 촬영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한국식물도감을 정리한 학자들이 전국을 누비는 사진작가의 현장감보다 훨씬 떨어지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식물도감>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피 풀이며, 이름 봄 산지의 반그늘에서 자란다. 덩이줄기는 공 모양이고, 수염뿌리는 많이 있다. 줄기는 연약하고 곧게 서며 높이는 15㎝정도다. 뿌리잎은 긴 잎자루가 있고 3갈래로 깊게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줄 모양이다. 줄기 끝에 있는 총포잎은 대가 없다. 꽃은 흰색으로 꽃자루 끝에 한 송이가 피며, 지름은 약 2㎝내외다. 꽃이 필 때는 꽃과 자주빛 잎만 보인다. 꽃이 질 때 녹색으로 바뀐다. 열매는 6~7월경에 달린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인다.’
너도바람꽃은 이른 봄 2월 말에 개화한다. 1경1화, 꽃대 하나에 꽃 하나 피우는 야생화다. 그 가녀린 꽃대가 잔설을 뚫고 솟아나 꽃을 피운다. 봄바람을 마중 나와 스스로 봄을 알린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꽃에는 독성이 있다. 산 속에서 굶주린 짐승들의 먹이로 피해를 입지 않으려는 자연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