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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풍수 창시자 ‘도선’은 누구인가?… 신라 무열왕 서얼說

한국 자생풍수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선(道詵)은 827년(신라 흥덕왕 2) 영암에서 태어나 898년(효공왕 2) 옥룡사에서 입적한 신라말의 승려이며,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속성은 김씨, 이름은 도선이다. 영암출신으로 왕가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그 세손과 조부는 역사에 기록이 없으며, 혹자는 태종대왕(19대 태종무열왕)의 서얼손이라고도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에서 승려가 된 후 곡성 동리산 태안사의 혜철 문하에서 법을 배운 후 옥룡사에 들어와 후학들을 지도하다 72세의 나이에 입적했다.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제자들이 옥룡사에 증성혜등탑(도선 부도)을 세웠다.

순천 선암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506호인 도선국사 진영.

순천 선암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506호인 도선국사 진영.

도선은 신라하대에 새로 도입되어 당시의 불교계에 신기풍을 일으킨던 선종계통의 승려로서 선종 구산파 가운데 하나인 동리산파의 개조 혜철의 인가를 받아 광양의 옥룡사에서 독자적인 선문을 개설했던 승려다.

도선에 관한 여러 자료 가운데 가장 상세하고 종합적이며,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은 최유청이 쓴 <백계산 옥룡사 증시 선각국사 비명 병서(白鷄山 玉龍寺 贈諡 先覺國師 碑銘 幷序)>, 즉 도선비문이다. 하지만 오늘 날 이 비문은 남아있지 않고 단지 그 비문의 내용만이 <東文選(동문선)>에 수록돼 전한다.

민중에 필사됐던 수많은 풍수가사 중의 하나인 . 도선의 이름을 빌어 적어놓았다. 출처 한국가사문학이미지

민중에 필사됐던 수많은 풍수가사 중의 하나인 <국사 옥룡자답산가>. 도선의 이름을 빌어 적어놓았다. 출처 한국가사문학이미지

비문에 의하면 도선의 생애는 5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도선이 출생하여 15세까지의 유년기다. 어머니는 강(姜)씨이며, 어느 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명주 한 개를 건네 주면서 삼키라고 했다. 이로 인하여 임신하여 만삭이 되도록 오신채(五辛菜, 마늘․부추․파․달래․흥거)와 누린내 나는 육류는 일체 먹지 아니하고 오직 독경과 염불로써 불사에 지극했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유년기에는 불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의 본문 한 부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선답산가>의 본문 한 부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제2기는 15세(841년, 문성왕 3)에 출가하여 20세까지 화엄을 공부한 시기다. 도선은 월유산(지리산으로 추정) 화엄사에 출가하여 대경을 독습하여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미 대의를 통달했다. 도선은 대경 곧 화엄경을 공부하여 문수의 미묘한 지혜와 보현의 그윽한 법문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광양 옥룡사지에 있는 도선 부도전과 탑비의 복원된 모습.

광양 옥룡사지에 있는 도선 부도전과 탑비의 복원된 모습.

제3기는 선종 수학기. 출가하여 6년간 화엄을 공부하다가 20세에 드디어 화엄종의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교학에 의한 해설의 한계를 인식하고 언어나 문자를 거부하는 선종으로 개종하여 동리산파의 개조인 혜철의 문하에서 선을 수업했다. 혜철은 당에 가서 서당지장으로부터 심인을 받고 귀국하여 새로 선문을 열었던 고승이다. 혜철대사가 그의 총명함을 가상하게 여겨 23세까지 4년간 알뜰히 선을 지도했다. 이른바 말이 없는 말(無說之說)과 법이 없는 법(無法之法)을 허중에서 주고받아 도선은 확연히 크게 깨달았고, 혜철대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도선이 평생을 주석하고 생을 마쳤던 광양 백계산 옥룡사지.

도선이 평생을 주석하고 생을 마쳤던 광양 백계산 옥룡사지.

제4기는 은사인 혜철대사로부터 인가를 받은 후 15년간의 방랑수련기다. 구족계를 받은 후 이미 일승요의(一乘了義․모든 가르침의 궁극이며 萬善이 함께 한 가지로 돌아가는 귀착점)를 통달하고 참학(參學)하여 일정한 곳이 없었다. 각처를 유람하고 선지식을 탐방하여 수행하는 것이 당시 수련과정 이었다.

구례 사성암의 도선굴. 도선이 지리산의 이인(異人)을 만났던 곳으로 추정된다.

구례 사성암의 도선굴. 도선이 지리산의 이인(異人)을 만났던 곳으로 추정된다.

제5기는 도선이 광양 옥룡사에서 주석하던 시기다. 37세 때 희양현(광양) 백계산에 있는 옥룡사에 주석하여 35년간 내내 이곳에 머물며 제자들을 양성했다. 도선은 옥룡사에 주석한지 35년이 되는 효공왕 2년(892)에 72세로 입적했다. 이때가 견휜의 후백제가 건국된 지 7년 만이요, 태봉의 궁예가 왕을 자칭하기 3년 전이었다. 결국 도선이 생존한 시기는 흥덕왕 2년(827)부터 효공왕 2년(898)까지의 신라 하대로서 신라 고대사회의 붕괴를 눈으로 확인한 인물이었다.

구례 사성암에서 바라본 섬진강 자락 사도리. 도선이 풍수를 전수받은 현장이다.

구례 사성암에서 바라본 섬진강 자락 사도리. 도선이 풍수를 전수받은 현장이다.

도선은 자생풍수를 그의 인생 제4기인 방랑수련기 중 지리산에 살던 이인(異人)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전한다. 그 장소가 바로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섬진강변이다. 이인은 풍수지리설이 곧 대보살이 세상을 구제하며, 중생을 제도하는 법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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