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지명이야기… 영호남·충청 경계인 육십령은 왜 육십령일까?

논개의 고향 전북 장수 영취산에서 백두대간 덕유산권에 들어선다. 흔히들 백두대간 덕유산권은 빼째(신풍령 또는 수령)에서 남덕유를 거쳐 백운산~육십령까지 27.4㎞를 말한다. 남북한 산줄기를 이어주는 식생학적으로나 산지체계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높이면에서도 덕유산(德裕山․1,614m)은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네 번째이며, 최고봉은 향적봉이다.

무룡산에서 삿갓재로 내려오는 등산로에서 솜털 같은 하늘이 정취를 더욱 느끼게 한다.

무룡산에서 삿갓재로 내려오는 등산로에서 솜털 같은 하늘이 정취를 더욱 느끼게 한다.

덕유산은 그 산세와 위치로 흔히 북덕유와 남덕유로 구분된다. 북덕유는 이름처럼 넉넉하고 웅장한 육산(肉山)인 반면, 남덕유는 장쾌하고 힘찬 골산(骨山)이다.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원래 덕유산은 현재 무주의 북덕유산을 나타내고, 남덕유산은 봉황봉을 가리킨다. 갈천 임훈(林薰․1500~1584)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와 성해응(成海應․1760~1839)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도 조선시대에는 남덕유산을 황봉(黃峰), 무룡산을 불영봉(佛影峰)이라 했으며, 최고봉인 향적봉과 함께 덕유산의 3대봉이라 불러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덕유의 황봉은 봉황봉으로도 불렸다.

남덕유산의 정상에 있는 비석과 주변 악산의 모습.

남덕유산의 정상에 있는 비석과 주변 악산의 모습.

이중환의 <택리지>에 ‘덕유산은 충청, 전라, 경상 3도가 마주친 곳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덕유산은 한반도에서 삼도의 중점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 위치에 있으며, 행정적 경계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된다. 지정학적 요충지는 고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라, 가야, 백제의 접경지가 바로 덕유산이었다. 그 대표적인 지명이 덕유산 북쪽에 위치한 백제와 신라의 관문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나제통문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영토다툼을 벌였던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다. 지금 구천동 33경 중의 제1경으로 꼽힌다. 삼국통일시기에 김유신 장군이 드나들던 길목에 세워졌다하여 통일문이라고도 한다고 전한다. 

육십령에 있는 육십령 안내문.

육십령에 있는 육십령 안내문.

삼도의 경계는 수계로도 연결된다. 덕유산은 낙동강의 지류가 되는 황강과 남강의 발원지가 될 뿐만 아니라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하천도 여기서 발원한다. 즉 낙동강 수계와 금강 수계의 분수령인 것이다.

명재 윤증(尹拯․1629~1637)이 1652년(효종3) 24세 때 덕유산을 유람한 후 남긴 장편 시문인 ‘유여산행(遊廬山行)’에서 ‘여산은 곧 금산군 안성현에 있는 덕유산의 별명이다. 토산이면서 매우 거대하며, 호남과 영남 지방 사이에 웅거하고 있다. 내가 3일 동안 이 산의 안팎을 두루 돌아보고 돌아와 이를 기록하고, 이 시편을 짓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볼 때 덕유산의 별칭은 여산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여산은 중국 강서성 구강시 남쪽 파양호 근처에 있는 천하 명산을 가리킨다. 일명 광산(匡山), 또는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한다. 덕유산이 그 명산과 견줄 만큼 깊고 신령스럽다는 것이다.

복주머니란

복주머니란

깊고 신령스러운 부분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덕유산으로 피신해 왔다. 신기하게도 왜병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짙은 안개가 드리워 산속에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 안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다. 여산의 신비로움으로 사람들은 덕이 있는 넉넉한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남덕유의 골산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육십령 가는 등산로로 가고 있다.

남덕유의 골산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육십령 가는 등산로로 가고 있다.

또 조선시대 <정감록>에는 십승지(十勝地)의 한 곳으로 꼽고 있다. 정감록에 ‘무주 무풍 북쪽 동굴 옆의 음지이니 덕유산은 난리를 피하지 못할 곳이 없다. 비장처에는 전라도 무주 덕유산 남쪽에 원학동이 있는데, 숨어살 만한 곳이다’고 적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유학자들이 은거하며 살았던 산으로 전한다.

산이 깊으면 식생도 그만큼 뛰어나다. 덕유산의 주요 식물상은 주목, 구상나무, 신갈나무, 철쭉, 서어나무, 졸참나무, 들메나무, 함박꽃나무, 산수국, 백작약, 동자꽃, 난쟁이바위솔, 바위채송화, 관중, 광릉요강꽃, 너도바람꽃, 털진달래 등이 넓게 분포하며 자라고 있다.

광릉요강꽃이 덕유산까지 내려와 있다.

광릉요강꽃이 덕유산까지 내려와 있다.

특히 멸종위기야생식물Ⅰ급인 광릉요강꽃, Ⅱ급인 복주머니란, 특정식물종인 솔나리, 자주솜대, 흰참꽃나무, 모데미풀 등이 다수 분포해 있다. 서봉 일원에 분포하는 덕유산국립공원 깃대종인 구상나무군락지가 있으며, 덕유산이 구상나무의 북방한계선에 해당한다. 현재는 향적봉, 남덕유산, 서봉, 무룡산, 삿갓봉을 중심으로 한 북사면에 주로 자생하고 있다. 그 외 멸종위기 야생생물로는 수달, 붉은박쥐, 하늘다람쥐, 무산쇠족제비, 감돌고기, 검독수리, 잿빛개구리매, 긴꼬리딱새, 꼬마잠자리, 멋조롱박딱정벌레 등이 서식하고 있다.

솔체꽃도 보인다.

솔체꽃도 보인다.

영취산에서 육십령까지는 13여㎞에 달한다. 육십령은 백두대간 생태축 연결작업으로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완성됐다. 로드킬이 상당히 줄어 효과를 보고 있다. 백두대간 능선들은 상당부분 일제 때 물자 수탈하기 위한 도로나 철로 개설과 한반도 기운을 단절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끊어졌다. 이제 그 능선들을 연결시키기 위한 작업들을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할미봉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바라보면 서봉(왼쪽)과 남덕유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

할미봉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바라보면 서봉(왼쪽)과 남덕유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

육십령은 옛날에는 육십현(六十峴) 또는 육복치(六卜峙)라고 불렀다. 해발 734m로 고갯길이 높아 그렇게 부른 것으로 짐작된다. 육십령은 남북으로 지리산과 덕유산, 동서로는 호남과 영남을 이어주며, 옛날에는 백제와 신라의 군사 요충지였던 곳이었다. 육십령에 관한 유래는 그 굽이만큼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우선 함양 안의 감영과 장수 감영에서 각각 60리라 해서 붙여졌다는 설,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닿을 수 있다는 설, 옛날 산적이 많아 산 아래 주막에서 60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떼를 지어 넘어야 화(禍)를 면했다는 설, 일제시대엔 재몬당까지의 고개가 60개라 하여 육십령이라 붙여졌다는 설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

남덕유의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을 보이는 서봉(장수덕유산)의 모습. 암벽 사이로 철계단을 놓아 등산로로 조성했다.

남덕유의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을 보이는 서봉(장수덕유산)의 모습. 암벽 사이로 철계단을 놓아 등산로로 조성했다.

육십령에서 할미봉까지 상당히 가파르다. 더욱이 할미봉을 거쳐 장수덕유산(서봉)까지는 거친 암벽과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이 많아 초보자들에게 매우 힘든 코스다. 보통 등산소요 시간의 2배 정도를 잡아야 하는 정도다. 그래서 종주능선을 잡을 때 출발지점을 덕유산에서 잡는 경우가 많다. 할미봉(1,24m)은 할미봉 아래 성터가 있는데, 할미봉은 이 성터에서 유래한다. 옛날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미봉이라 했다고 한다.

솔나리

솔나리

등산 안내 밧줄을 잡고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어느 덧 할미봉을 지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포바위, 일명 남근석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할미봉의 턱밑에 위치해 있다. 임진왜란 때 장수를 치기 위해 육십령을 넘던 왜군들이 대포바위를 조선군의 대포로 착각하여 함양으로 우회해 남원을 쳤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군 일원이 피해를 면했다는 설도 있다. 멀리서 보면 흡사 그 모양이 대포처럼 보이기 때문에 대포바위라 부르지만 실상 가까이서 보면 남자의 성기와 비슷하여 남근석으로 불린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부터 남자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이 바위에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린 채 소원을 빌면 사내아이를 얻게 됐다는 전설도 있다.

덕유산 등산로 주변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식물은 조릿대다. 조릿대가 급속히 그 영역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덕유산 등산로 주변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식물은 조릿대다. 조릿대가 급속히 그 영역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이어 장수 서봉(1,492m)이다.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 했다. 남덕유산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봉이라 불렀다. 서봉 바로 옆에 우뚝 솟은 남덕유산(1,507m)이 자리 잡고 있다. 남덕유는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을 북덕유산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비해서 지칭하는 이름이다. 남덕유산에서는 백두대간 북쪽 능선과 남쪽 능선이 한꺼번에 보인다. 사방이 확 트여 조망도 매우 좋다.

하늘거리는 억새를 옆에 두고 한 등산객이 무룡산으로 오르고 있다.

하늘거리는 억새를 옆에 두고 한 등산객이 무룡산으로 오르고 있다.

월성재와 삿갓봉으로 백두대간은 연결된다. 월성재는 아래 마을이름이 월성리라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월성리는 달이 마을 앞 성삼봉(城三峰)에 비친다 하여 월성(月城)이라 했던 것을 성(城)과 같은 소리가 나는 성(星)으로 바꿔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삿갓봉(1,418m)은 봉우리가 영락없이 삿갓 모양이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오면 삿갓골재가 기다리고 있다. 무룡산과 삿갓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삿갓봉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명칭이다. 삿갓골재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가장 작은 규모의 삿갓재대피소가 있다. 공단에서는 한때 폐쇄도 검토했지만 종주 등산객을 위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삿갓재대피소 입구에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산에 노니는 것이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여기서 이런 문구를 볼 수 있다니…. ‘씩’ 하고 미소가 지어진다.

멸종위기종 자주솜대

멸종위기종 자주솜대

덕유산은 삿갓봉을 기점으로 남덕유와 북덕유가 완전히 다른 산의 형세를 보여준다. 북덕유는 온화한 육산인 반면 지금까지 올라온 삿갓봉까지는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을 띤다. 같은 산줄기이면서 이렇게 다르다.

또 남덕유산 일대에는 철쭉 비슷한 가지를 지닌 관목이 유달리 많이 보인다. 흰참꽃이라는 진달래과의 떨기나무다. 이 식물도 알고 보면 매우 특이하다.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며, 우리나라도 지리산․가야산․남덕유산 정상 일대의 바위지대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이다. 꽃이 흰색으로 매우 작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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