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상 ‘삼도봉’이 몇 개나 될까?… 백운산 이름은 100여개 달해

덕유산을 지나면서 백두대간 구간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무주와 덕유산은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지역이다. 보통 지역에서는 8경 내지는 10경을 꼽아 소개하지만 무주에서는 무주구천동 33경까지 붙여 널리 알리고 있다. 그 무주구천동 제1경이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나제통문은 알려진 대로 ‘신라와 백제를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백두대간 상에 있는 삼도봉.

백두대간 상에 있는 삼도봉으로 등산객들이 올라가고 있다.

라제통문 앞에 있는 안내문에도 그렇게 써져 있다.

‘통일문으로도 불리는 라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에서 무풍면으로 가는 도중 설천면 두길리 신두마을과 소천리 이남마을 사이를 가로질러 암벽을 뚫은 통문을 말한다. 무주읍에서 동쪽 19㎞의 설천은 옛날 신라와 백제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나라가 국경 병참기지로 삼아 한반도 남부의 동서문화가 교류하던 관문이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풍속과 문물이 판이한 지역이었던 만큼 지금도 언어와 풍습 등 특색을 간직하고 있어, 설천장날에 가보면 사투리만으로 무주와 무풍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이 문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일제시대 때 일제가 자원 수탈용 도로로 사용하기 위해 암벽을 뚫었다. 원래 이 굴의 이름은 기미니굴. 1910년경 일본 사람들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용이하게 옮기고, 그 지역의 농산물과 임산물을 신속히 옮겨가기 위해 뚫은 굴로 당시 김천과 거창을 잇는 신작로였다고 한다. 당시 이 기미니굴을 중심으로 위쪽마을은 ‘기미니마을’로, 아래쪽은 ‘이미리마을’로 불렸다.

무주 나제통문의 앞모습.

무주 나제통문의 앞모습.

이 굴의 명칭이 바뀐 것은 1963년 무주군에서 구천동33경을 만들면서부터다. 이 때 ‘기미니굴’이 아니라 ‘라제통문’으로 둔갑했고, 교과서에도 일제히 실렸다. 이어  삼국시대 유적지로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로 자리 잡게 됐다. 무주군의 행정기록을 적어놓은 무주 군청지인 ‘적성지’에 당시 공사를 한 작업일지가 적혀 있다고 한다. 한 역사단체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문제를 제기한 이후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쩐지 이 동굴을 지나치거나 볼 때마다 ‘어찌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는데…’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천수백년 전으로 돌아가 역사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이 불과 100년 밖에 안 됐다고 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스토리텔링화 된 역사를 전국적으로 알리는데 성공한 당시 무주군 관계자의 상상력은 가히 소설가 이상이다. 아마 그 사람은 소설을 썼어도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됐을 것 같다. 무주를 이 정도 알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속아 넘어간 사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 치고는 너무 센 느낌이다. 스토리텔링과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는 구별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뒤편에서 본 나제통문.

뒤편에서 본 나제통문.

잠시 백두대간에서 빠져나가 외도를 했다. 다시 돌아와 빼재를 지나 북쪽으로 향한다. 덕유 삼봉산(1,254m)이 기다리고 있다. 삼봉산은 거창의 진산이다. 큰 봉우리가 세 개가 우뚝 솟아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얻었다. 향적봉에서 바라봤을 때 이 봉우리가 뚜렷한 ‘山’자 형상을 하고 있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한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산세를 지니고 있어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하는 삼봉산은 정상의 주봉을 중심으로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 신선봉,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 등으로 이름 붙은 자연산경과 금봉암이 어우러져 소금강의 신비경을 연상케 한다. 금봉암은 삼봉산에서 동남쪽으로 약간 비켜서 있다.

백두대간 주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백두대간 주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이어 집집마다 가는 모래가 깔리는 소사마을의 소사고개(680m)를 지나 초점산에 다다른다. 초점산은 삼도봉(1,248m)이라고 한다. 역시 삼도, 즉 전북과 경북, 경남의 도계를 이루는 봉우리다. 행정구역으로는 무주와 김천, 거창이다. 곧 이어 대덕산(1,290m)이 나온다. 대덕산은 이곳에 살러 온 사람들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덕택을 입었다고 해서 대덕산이라 불렸다 한다.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 분기점, 즉 해발 1,248m의 초점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렸다.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한다.

대덕산에서 4㎞쯤 가면 덕산재(644m)가 있다. 예로부터 전북과 경북의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길이었다. 지금은 무주에서 성주를 잇는 30번 국도가 지나간다. 대덕면 덕산마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덕산재라고 한다. 일제 때 발행된 고지도에는 ‘주치령’으로 표기돼 있다.

또 다른 고갯길인 부항령(690m)이 저만치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무주 무풍 금평리 숙뱅이~김천 부항 어전리 가목을 넘나드는 고개다. 백두대간의 오래된 고갯마루인 이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부항현’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개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래로 삼도봉 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부항이란 지명은 마을이 위치한 곳의 형상이 가마솥과 같이 생겼다 해서 가매실이라고 하다가 한자로 부항이라 했다. 우리말로는 가목이라 한다. 이는 가매목에서 중간의 매자를 버리고 가목이라 했기 때문이다.

황악산 못 미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황악산 못 미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이어 한참을 가다보면 또 다른 삼도봉(1,176m)이 나온다. 삼도봉은 이름 그대로 3개의 도(道)에 걸쳐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남한에 삼도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몇 개나 될까? 모두 3개다. 3개 모두 백두대간 줄기에 있다. 조금 전 초점산 정상으로 알려진 삼도봉은 경북, 전남, 전북을 구분 짓는다. 두 번째로는 지리산 서부능선에 위치한 삼도봉이다. 경남 하동군과 전남 구례, 전북의 남원의 경계 지점에 있다. 이 삼도봉의 원래 이름은 낫의 날을 닮아 낫날봉. 발음이 쉽지 않아 날라리봉으로 불리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해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마지막으로 지금 지나는 민주지산 동남쪽에 위치한 삼도봉은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전북 무주의 경계에 있다. 원래는 화전봉이었다. 이 삼도봉 정상에는 3개의 도시 주민들이 1989년 세운 대화합 기념탑이 있다. 삼도를 상징하는 거북과 용, 검은 여의주로 만들었다.

백두대간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삼도봉 서북쪽에 있는 유명한 민주지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민주지산의 원래 이름을 백운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이름은 충청도에서 봤을 때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 불리던 것이, 일제시대 지도를 제작할 때 민두름산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사 한자인 민주지산으로 굳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삼도봉 정상에서 3도의 대표들이 만나 제례를 지내고 있다.

삼도봉 정상에서 3도의 대표들이 만나 제례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에 백운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왜 그렇게 많을까? 백두대간에 있는 함양의 백운산을 비롯해 전국에는 100여개의 백운산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극학회가 발행한 ‘땅이름 사전’에만도 38개에 달한다. 백운산(白雲山)은 보통 산이 높아 흰 구름이 늘 머물러 있는 산이다. 우리나라의 큰 산이나 명산에는 대개 ‘白’이나 ‘朴’이 붙는다. 이는 대부분 ‘밝다’에서 유래했다. 산 이름에 ‘밝다’는 뜻이 많은 것은 옛 사람들이 산을 인간세상에 광명을 주는 신성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도봉(화전봉)에서 지척거리에 삼마골재가 있다. 삼도봉에서 황악산 방면으로 내려가면 삼마골재에 이른다. 이 고갯마루 오른쪽 골짜기를 삼마골, 즉 삼막골(蔘幕谷)이라 한다.

삼마골재에서 다래넝쿨지역을 지나 거칠게 오르면, 앞에 기다리고 있는 봉우리가 화주봉(석교산․1,207m)이다. <여지도서>에 ‘황악산은 추풍령-괘방령에서 와서 서쪽으로 석교봉-삼도봉을 일구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화주봉을 석교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시 하산길이다. 화주봉에서 하산길은 만만치 않다.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한참을 내려가면 우두령(질매재․730m) 고갯길이 맞이한다. 우두령은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질매는 길마의 충청도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우두령)’이라 됐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2 Comments

  1. 이동수

    08.24,2015 at 8:06 오전

    좋은글 늘 감사합니다.
    나제통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류로 밝혀졌습니다…^^
    어느 공무원이 장난친거죠.일제가 만든겁니다.
    확인하시고 정정해주세요…..

  2. 이동수

    08.24,2015 at 8:09 오전

    아!!!!
    죄송합니다.
    앞부분만 읽고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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