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이름도 희한하다. 백부자(白附子). 어떻게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름은 다 그 식물의 특징을 나타낸다. 백부자는 일단 뿌리가 백색이다. 꽃도 황백색이다. 그래서 백자라고 불렀다. 한방에서는 자체 형성한 곁뿌리를 측자(側子)라고 한다. 아직 어려서 자체 뿌리를 갖지 못한 식물엔 부(附)자가 붙는다. 원래는 백자라고도 불렀으나 아직 어려서 자체 뿌리를 갖지 못해 부(附)자가 붙여 ‘백부자’가 됐다.
뿌리는 마늘쪽 같이 생겼다. 뿌리에 맹독성 독을 지니고 있다. 옛날엔 사약의 재료로 사용했을 정도다. 거의 ‘천남성’급으로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독은 한방에서는 약으로 쓴다. 말려서 진통제로 사용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과 중국 일대에만 분포한다는 백부자가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독(毒)으로 말이다. 고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와 트로이센 왕의 딸 아이트라와 사이에서 테세우스가 태어났다. 오랜 방황에서 돌아온 테세우스 왕자를 없애기 위해 마녀 메데이아가 신의 음식이라고 속여 독배를 마시게 했다. 하지만 테세우스 왕자는 이를 미리 알고 마시는 척하며 바닥에 쏟았다. 독이 얼마나 강했던지 대리석 바닥이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그 독이 바로 백부자라고 전해진다.
백부자의 꽃말은 ‘아름답게 빛나다’이다. 왜 이 꽃말이 붙었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실제 꽃은 매우 아름답다. 산골짜기, 산기슭 숲 속에 흰 빛을 띤 연녹색 투구꽃 모양의 꽃이 살짝 고개를 쳐든 듯 숲속의 방문객을 유혹한다. 개체수도 많지 않다. 한국 자생종으로, 2011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Ⅱ급이다.
문순화 사진작가가 백부자를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말쯤으로 기억한다. 한창 젊었을 때였다. 가슴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는 등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야생화 촬영을 위해 전국을 누빌 때다. 명성산에 등산을 갔다. 정상에서 마치 자기를 보란 뒤 연녹색 꽃을 피우며 고개를 쳐든 야생화가 눈에 쏙 들어왔다.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야생화 전문가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전문가마다 제각각이었다. 식물학자 고 이영노 박사를 알기 전이었다.
당시 문 작가는 한국에서 야생화 달력을 첫 출간했던 터라 백부자의 예쁜 꽃 모양은 야생화 달력에 싣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었다. 무명꽃이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이 모두 이름을 모르니 쓸 수가 없었다. 이후 영월, 정선, 평창 등지에서 잇달아 봤다. 아마 주 서식처가 석회암 지역인지 그 쪽 지역에서 잇달아 눈에 띄었다. 개체수는 많지 않았지만 예쁜 꽃 모양은 잊을 수가 없었다.
1990년대 초반 이영노 박사를 알게 된 뒤 바로 백부자라고 가르쳐줬다. 거의 10년 이상을 이름도 모른 채 머리 속에만 맴돈 야생화였다. 그래서 문 작가에게는 더욱 기억이 강렬하다. 이 박사는 이미 알고 있었던지 다른 야생화와 마찬가지로 “어디서 봤느냐”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현진오 박사와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2000년 되기 직전쯤이었다. 환경부 야생화 조사요원에게 전국의 야생화 정보를 안내할 때였다. 영월 습지에 갔다. 한 번 본 백부자를 환경부 요원에게 안내하고 이곳저곳을 헤매다 붉은 산작약을 발견했다. 산작약은 전국적으로 분포했으나 약용으로 널리 채집돼, 일찌감치 멸종위기종Ⅱ급으로 지정된 야생화다. 따라서 당시로서도 흔치 않았다. 백부자와 산작약을 동시에 발견하고 현 박사에게 그날 오후 4시쯤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현 박사는 “거기가 어디냐?”며 “당장 달려갈테니 기다려달라”고 통사정했다. 서울에서 영월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2시간은 걸린다. 현 박사는 그 거리를 과속 위반 카메라에 두 번이나 단속되는 속도로 정말 번개같이 날아왔다. 오후 6시도 안 돼서 도착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백부자나 산작약이나 과거에 봤던 장소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 원색도감에 나온 백부자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산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덩이뿌리가 2~3개 발달한다. 줄기는 곧추서며, 높이 40~130㎝다. 잎은 어긋나며, 길이 4~6.5㎝, 폭 3.5~6.5㎝이다. 꽃은 8~10월에 피며, 투구 모양을 이룬다. 또한 줄기 끝의 총상꽃차례에 달리고 노란색 또는 흰색 바탕에 자줏빛이 돈다. 본종은 투구꽃에 비해 꽃은 황색이고, 종자는 사면체이며, 능각에 날개가 있으나 면에 돌기가 없다. 유독,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한다. 중국에도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