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南興齋舍(남흥재사)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535
경상북도 민속자료 28호

20160606_104941[입구쪽에서 담은 南興齋舍(남흥재사) 전경]

고려말의 문신 南輝珠(남휘주,1326∼1372)
南敏生(남민생, 1348∼1407) 부자의 묘를 보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20160606_104955[南興齋舍(남흥재사) 전경]

20160606_105013-1[안내판 글 내용]

20160606_105013-2[안내판 영문 글 내용]

20160606_105013-3[안내판 중국어 글 내용]

20160606_105013-4[안내판 일본어 글 내용]

20160606_105052a[南興齋舍(남흥재사) 현판]

[南興齋舍(남흥재사)]

1500년대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며,
南興寺(남흥사)의 법당을 개조한 것으로
이곳 지명을 따라 南興齋舍(남흥재사)라 하였다.

남흥재사의 또 하나 볼거리는 2층으로 된 건물이라합니다.
1층은 뒤주와 광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냉장고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름에 음식이나 식량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한다.

20160606_105038[좌측에서 담은 南興齋舍(남흥재사) 전경]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인데
우측에는 6간 규모의 누마루를 형성하여 원모루라 하였다.

이 건물에는 樓上(누상)과 樓下(누하),
큰부엌쪽 3개소에 온돌방을 두었는데 각기의 용도가 다르게 되어 있다.

큰부엌 쪽의 방은 윗방이라 부르는데
묘제 때에는 상장이라 하여 문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머물며,
樓上部(누상부)의 방도 아랫방이라 부르며
묘제 때에는 하장이라 하여 나이어린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또한 누하부의 방은 아랫방이라 부르는데
평상시에는 관리인이 거처하나 묘제시에는
중장이라 하여 장년층이 묵는다고 합니다.

20160606_105209[뒤쪽에서 담은  南興齋舍(남흥재사)]

중수기에 따르면 ‘재사의 舊制(구제)가 5칸,
누가 8칸, 좌우익랑이 10여 칸이니 합 20여 칸의 규모이다.’
라고 적혔으나 현재의 건물은 중수 이후의 모습이다.

20160606_105240[재사 뒷쪽 보호수 수령 200년 소나무)]

20160606_105130[보호수 안내표석]

20160606_104942[돌아오며, 다시 담아 본 南興齋舍(남흥재사) 전경]

임진왜란 이전에 유행하던 조선전기의
건축 기법이 잘 보존된 소중한 재사 건축물이라 합니다.

20160606_105429[재사쪽에서 담은 設壇(설단) 전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닫혀 있어서
내부를 둘러보지 못하여 아쉬운 마음 가득했지만..
담으로 둘러쌓여 가까이 가는 것조차 막은 곳보다는
이나마도 둘러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을 입구쪽에 있는
設壇(설단)과 설단 좌측 뒷 산 중턱쯤에 모셔진 묘소로 향했습니다.

설단과 묘소는 다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3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6월 18일 at 7:50 오전

    암튼 안동을 고루 고루 다 보셨네요.
    운전 하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수술 끝나고 좋아지면 딱 한번이라도 초아님네와 어울려서
    다녀보고 싶어요. 그때 들어주시리라 믿어요. ㅎ

    • 초아

      2016년 6월 18일 at 8:42 오후

      그래도 못 가본 곳이 있다면서..
      또 가자 하네요. ㅎㅎ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전 그려고 싶어요. 남편이 워낙 고집불통이라..

  2. Pingback: 고려말의 문신 남휘주, 남민생 부자 묘 - 草阿(초아)의 삶과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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