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도기념물 1호 環碧堂(환벽당)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 (1동)
시도기념물 제1호

IMG_5202[環碧堂(환벽당)과 醉歌亭(취가정) 안내판]

두를 環(환), 푸를 碧(벽)의 環碧堂(환벽당)은
즉, 푸른 대숲에 둘러싸인 곳이란 뜻인데, 지금은 대나무가 그리 많지않다.

IMG_5203[環碧堂(환벽당) 바로 앞에 세워놓은성산별곡 詩碑(시비)]

환벽당에 들어서기 전 얕은 대문 앞에는
釣臺雙松(조대쌍송) 碑(비)가 있고,
碑(비)뒷쪽에는 釣臺(조대)에 대한 설명도 새겨져 있다.

IMG_5203a[시비에 새겨진 성산벽곡 중에서]

IMG_5234a[詩碑(시비) 뒤쪽에 세겨진 글]

이 낙시터는 옆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와
함께 釣臺雙松(조대쌍송)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 아래 흐르는 창계 물은 소를 이루고
여기서 뱃놀이도 행해졌다고 한다.

조선조 영종 때에 임억령등 성산 의 사선이
釣臺雙松(조대쌍송) 環碧靈湫(환벽영추) 松潭泛舟(송암범주)등의
詩(시)를 짓고 정철이 星山別曲(성산별곡)에서 이 승경을 노래함으로써
조대는 더욱 이름나게 되었다.

IMG_5204[環碧堂(환벽당) 입구]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으며, 1528년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承文校理兼春秋官(승문교리겸춘추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弘文官校理(홍문관교리), 羅州牧使(나주목사)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IMG_5205[環碧堂(환벽당) 오르는 돌계단]

IMG_5206-1[안내판 글 내용]

IMG_5206-2[안내판 영문글 내용]

IMG_5209a[環碧堂(환벽당) 현판]

IMG_5212[環碧堂(환벽당)]

우암 송시열이 쓴 題額(제액)이 걸려 있고,
林億齡(임억령), 趙子以(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IMG_5210[우측에서 담은 環碧堂(환벽당)]

김윤제는 광주광역시 충효리 태생으로, 호는 沙村(사촌)이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鄭徹(정철)과 金成遠(김성원)등이 있다.

IMG_5213[環碧堂(환벽당) 옆모습]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IMG_5219[環碧堂(환벽당) 전체 전경]

환벽당 인근에 취가정, 독수정, 소쇄원이 있다.
환벽당은 정철의 4대손 鄭守環(정수환)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IMG_5217[環碧堂(환벽당)아래 핀 상사초(꽃무릇)]

환벽당은 초여름이면 상사초가 곳곳에 피어
그 아름다움으로 정원을 가득 메운다고 하는데,
우리들이 갔을 때는 꽃무릇이 막 지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몇 송이 남지 않은 상사초꽃
그 중에서 한 송이를 담아 올립니다.

잎이나기전 꽃부터 활짝 피고난 후에야 잎이 올라오기에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슬픈 사연의 간직한 꽃 상사초(꽃무릇)

IMG_5207[環碧堂(환벽당) 위에서 입구쪽을 보고]

저 앞쪽을 보이는 것이 시비와 김윤제와 어린 정철의
아름다운 만남에 대한 전설이 서린 釣臺(조대)와 龍沼(용소)이며,
그리고 釣臺雙松(조대쌍송)의 모습도 보인다.

조부의 묘가 있는 고향 담양에 내려와 살고 있던 당시
14살의 정철이 순천에 사는 형을 만나기 위하여 길을 가던 도중
환벽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때마침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창계천의 용소에서 용 한마리가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깬 후 용소로 내려가 보니 용모가 비범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김윤제는 소년을 데려다가 여러 가지
문답을 하는 사이에 그의 영특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순천에 가는 것을 만류하고 슬하에 두어 학문을 닦게 하였다.

정철은 이 곳에서 金麟厚(김인후), 奇大升(기대승) 등
명현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다.

특히, 정철은 김윤제가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 하고
그가 27세로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는데있어서 모든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한다.

IMG_5208[龍沼(용소)]

오래 묵은 釣臺雙松(조대쌍송)이 옛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불러들이지만, 창계천은 이미 목욕을 하기에는
너무 더러워져 있었다.

釣臺(조대)바로 밑이 龍沼(용소)인 것 같았으나,
온갖 잡동사니가 물위에 떠있어서 바로 옆 이곳을 담아올렸습니다.

좀 더 맑은 용소의 물을 보여드리고 싶었기에…..
星山(성산)의 四仙(사선)이 읊은 詩(시)를 소개합니다.

釣臺雙松(조대의 두 그루 소나무)

鶴髮暎蒼?(학발이 푸른 솔잎에 비치니)
風竿抽素鱗(낚싯대 한들한들 흰 고기 낚는다.)
二松誰對樹(두 소나무가 서로 마주 서서)
烟雨?宜人(사람처럼 비바람에 우뚝 서 있다.)

環碧靈湫(환벽당 아래 용추)

白日喧雷雨(대낮에 우루루 쾅쾅 내리지르는 물)
顚風?釣船(조각배 바람곁에 키놀 듯한다.)
村翁傳怪事(촌 늙은이 괴이한 전설을 듣자니)
石竇老蛟眠(돌구멍에 늙은 용이 졸고 있다네.)

松潭泛舟(송담에 배 띄워라.)

松影低寒樹(잎진 나무에 솔그늘이 낮게 지니)
松根絡古磯(솔뿌리가 너른 바위를 더위 잡았네.)
?蓬載琴鶴(봉창에 거문고 싣고 학을 벗삼으니)
如月小舟飛(달 같은 조각배 나는 듯 빠르구나.)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