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가미정(2층 가미전시관)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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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가미전시관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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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 만난 첫번째의 전시물
‘말하는 꽃 妓生(기생) 이야기’

妓生(기생) : 전통사회에서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 춤 및 풍류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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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 발생과 변천, 기생의 발생과 변천 등
말하는 꽃 기생의 이야기로 벽면을 채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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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기생 ‘鸚鵡(앵무)’ 등 흥미진진한
기생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쉽게 풀어 적어 놓았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대표 인물로 거론되는 이가
광문사 부사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서상돈(1850~1913)이다.
巨商(거상)이었던 그가 낸 성금 액수가 당시 집 한 채 값인 100원이었는데
그와 똑같은 거금을 내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 18세 기생 ‘앵무’ 鸚鵡(앵무) 였다.

예명이 앵무인 이 기생의 본명은 廉嚨山(염농산, 1889~1946)으로
한학과 시, 가무에 능한 관기였다가 달성권번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고 한다.

당차게 100원을 내놓은 때 나이가 18세였고,
30세 때는 성주군 용암면에 홍수방지 제방을 쌓게 거금을 쾌척했으며,
1938년에는 폐교 위기에 몰린 대구 교남학교에 전 재산의 절반인 2만 원을 내놓았다.

당시 매일신보는
‘염농산 여사가 교육사업에 몸을 던져 만장부가 하지 못한
일을 능히 함으로써 수전노 제씨의 심장을 자극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웹에서 자료 발췌)

20170415_164943[옛 요정의 미니어처 전시]

일제시대부터 60년대, 70년대, 80년대까지
대구의 밤을 밝혔던 1300여개의 요정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20170415_165018[사진으로 보는 그 시절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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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_165338[다리미와 인두]

어릴적 전시되어 있는 다리미로 숯불을 얹어놓고 다렸지요.
둘이서 마주보고 빨래감을 잡아 당겨 다리미로 밀면 쭈굴쭈굴했던
옷들이 반듯하게 피어지는게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깜박 실수를 하면은 천에
구멍을 내기도 하고, 발이나 손을 데기도 하였지요.

저도 그때 다친 흉터자국이 오른쪽 발에 남아 있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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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_165405[達磨圖(달마도)]

중국 禪宗(선종)의 창시자.
당시의 불교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했다.

달마도가 집에 걸려있으면, 악귀가 물러가고
액운이 거치며, 흐르는 수맥으로 부터 보호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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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_165040[다시 담아 본 계단 입구쪽 전경]

20170415_165649[가미정 입구에서 담은 우측 고목 전경]

20170415_165655[좌측골목길로 나와서 담은 골목 전경]

좁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해 있기에
찾기가 힘이 들지요.
저도 삼세번만에 찾아갔답니다. ㅎ

대구에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아니라면 들리지 못하였겠지요.

이 자리를 빌어 흔쾌히 허락해주신
가미정 주인님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0월 13일 at 8:00 오전

    경주에 권번이라고 기생학교가 있었어요.
    어릴때 그앞을 지나치다 보면 어찌나 이쁘던지
    그 학교에 넣어달라고 엄마를 졸르기도 했지요.

    가미관이 큰 역할을 하는군요.

    • 초아

      2017년 10월 13일 at 7:59 오후

      어머님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ㅎ
      언니의 어릴적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한번 더 들려보고싶어지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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